대만 핵쓰레기, 북한 못간다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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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북한의 반입 신청서 반려… 규격 맞는 운반선 없어 ‘9월 선적’ 불가능
대만 핵쓰레기는 과연 북한으로 가는 것일까.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대만 핵쓰레기에 관한 보도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지난 7월23일자 <ㅈ일보>는 환경운동연합의 자료를 인용해 북한은 이미 대만 핵쓰레기를 저장할 처분장을 착공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7월11일 각 언론은 북한이 핵쓰레기 반입에 관한 서류를 대만 정부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또 7월14일에는 대만 <연합보>를 인용해, 대만 정부가 핵쓰레기의 북한행을 곧 승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대로라면 대만 핵쓰레기의 북한행은 곧 이루어질 것처럼 보인다.

환경운동연합이 북한이 핵쓰레기 처분장을 착공했다고 본 것은, 지난 5월 대만전력공사가 배포한 설명서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 설명서를 번역·요약한 것이 7월23일자 보도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이 설명서를 읽어 보면, 북한은 핵쓰레기 처분장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네 폐기물을 처분하고 있는 시설을 일부 개조해 대만 핵쓰레기도 유치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0개 항목 중 3개 불합격

황해북도 평산군에 위치한 북한의 핵쓰레기 처분장은 폐탄광을 이용한 것이다. 이 지역은 인가로부터 5㎞쯤 떨어져 있으며, 과거 지진이 일어난 기록이 없고, 상수원 보호 구역과 떨어져 있어 처분장으로 적합하다고 설명서는 적고 있다. 여러 개의 갱도 중 북한은 2개를 대만전력에 제공하는데, 이 갱도는 6만 드럼(2백ℓ)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고 3개와 연결된다(그러나 <ㅈ일보>는 6만 드럼이 아닌 6만t을 저장한다고 잘못 보도했다).

이후 북한은 대만 핵쓰레기를 반입하는 데 필요한 서류를 대만전력에 제출했다. 지난 6월28일 대만전력은 이 서류를 대만 행정원 원자력위원회(장관급 조직)에 보내 심사를 요청했다. 북한이 제출한 서류 중에는 오는 9월 초까지 핵쓰레기 처분장 개조 공사를 완료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7월13일자 대만 <연합보>는 이 부분만을 보도했다. 다음날 국내 언론은 <연합보>를 인용해, 처분장이 완공되는 9월 초 대만 핵쓰레기가 선적될 것이라고 ‘과장’ 보도했다.

‘개조 공사 완공’을 ‘선적 가능’으로 바꾼 것이 왜 과장인지는 대만 원자력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살펴보면 명쾌해진다. 대만 원자력위원회는 북한이 제출한 서류를 ‘저준위 핵폐기물 수출신청절차 준칙’에 의거해 10개 항목에 걸쳐 심사했다. 그 결과 7개 항목은 통과시켰으나 3개 항목은 불합격 판정했다. 이 판정 결과의 전문은 대만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았으나, <시사저널>은 그 내용을 단독 열람할 수 있었다.

불합격한 3개 항목의 내용은 ‘△북한이 제출한 반입 신청서는 대만 외교부로부터 중국어로 정확히 번역됐음을 공증받아야 하는데, 공증을 받지 않았다 △북한은 핵쓰레기를 가져갈 수송 선박에 관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안전감독위원회는 갱도 2개의 개조 공사가 완공된 후 이 시설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아직 준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반면 <연합보>에 보도된 대로 9월 초까지 갱도 개조 공사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합격 판정을 내렸다.
“서류 심사에만도 상당 기간 걸릴 듯”

결국 대만은 북한의 신청서를 반려했다. 3개 불합격 항목에 대해 서류를 보완한 후 다시 제출하라고 한 것이다. 이들 항목에 대해서도 합격해야만, 대만은 핵쓰레기를 북한으로 수출하는 쪽으로 한 단계 전진할 수 있다. 북한이 서류 심사에 합격하면, 대만은 평산처분장으로 사람을 보내 과연 서류 내용과 일치하는지 실질 심사한다. 실질 심사에서도 합격해야 비로소 북한은 핵쓰레기를 반입할 수 있다. 이러한 두 차례 심사를 통과하는 데도 상당한 기일이 걸리므로 대만 핵쓰레기를 9월 중에 선적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대만은 중국에 밀려 국제 무대에서 자꾸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대만은 유엔 재가입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만큼 대만은 국제 사회로부터 지탄받을 일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다. 북한으로 핵쓰레기를 수출하는 데 대해서도 대만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의 규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등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 핵쓰레기 운반선의 규격에 대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대만과의 계약에 따라 이 배를 준비해야 하는 쪽은 북한인데, 현재 북한은 규격에 맞는 운반선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북한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현재 북한이 이런 배를 만들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때문에 오는 9월 선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북한의 조선 능력과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차라리 다른 나라에서 핵쓰레기 운반선을 빌리는 편이 북한으로서는 훨씬 더 수월하다.

그러나 핵쓰레기 운반선을 보유한 나라는 선진 몇 나라뿐인데(한국도 미보유), 미국의 눈총을 받아가면서까지 테러 지원 국가로 분류된 북한에 이 배를 빌려줄 나라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오는 9월은커녕 상당 기간이 지나도 북한은 대만의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 외교 전문가는 대만 핵쓰레기가 북한에 간다고 보도해 대만을 자극하기보다는, 악화한 대만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 때는 물론이고 이후 복구 과정에서도 장개석 총통은 적잖게 우리를 도와주었다. 이 전문가는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외무부장관을 대만에 보낼 수 없다면, 환경부장관이라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파견해 단교 때의 감정을 풀도록 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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