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 ‘노동 미사일 회담’ 열리나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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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 주요 의제로 ‘안보협의’ 문제 다뤄
지난 5월22일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북한의 노동 미사일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하는 ‘안보협의’ 개최 문제를 주요 의제로 협의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시사저널>이 서울과 도쿄의 복수 소식통을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가 주로 안보협의 개최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의중을 타진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고, 김위원장은 이에 대해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자신이 했던 발언을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화답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고이즈미 총리가 먼저 (앞으로 열릴) 북·일간 수교 예비회담에서 가장 큰 현안이 북한의 노동 미사일 문제라며 이에 대한 김위원장의 생각을 타진했다”라고 밝혔다. 김위원장이 “그 문제는 지난번에 다 얘기했다.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하자, 고이즈미 총리는 재차 “그렇다면 안보협의(미사일 회담)가 진전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거듭된 타진에 김위원장은 또다시 “지난번 얘기와 똑같다”라고 응수했다는 것이다.

2002년 제1차 정상회담에서도 고이즈미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제기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배포한 정상간 대화록에 따르면 고이즈미 총리는 “미사일 문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안정에 중요한 문제다. 대포동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 배치를 강력히 우려한다”라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김위원장은 “미사일 문제에 대한 총리의 문제 인식을 충분히 이해한다. 북·일 관계가 순조롭게 회복되면 미사일 문제는 없어진다”라고 대답했다. 김위원장은 이번에도 북·일 관계 개선과 노동 미사일 문제가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환기하며, 고이즈미 총리가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 주기를 역으로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버금가는 성과

이처럼 북한의 노동 미사일 문제와 이를 다룰 안보협의 개최는 2002년 1차 정상회담에서 최대 현안이었던 만큼 이번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다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 5월22일 오후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 밝힌 두 정상간 대화록에서는 이 점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지난 5월23일자 <중앙일보> 전문가 대담 코너에 등장한 이즈미 하지메 일본 시즈오카 현립대학 교수는 “이번 회담에서 안보협의까지 논의됐다면 꽤 성과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정상회담 당일인 5월22일 저녁 일본 정부 소식에 정통한 서울의 취재원으로부터 전해들은 두 정상간 대화 기록에는 분명 고이즈미 총리가 안보협의 개최를 김위원장에게 제기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 후 이같은 내용을 토대로 도쿄와 서울의 전문가들이 탐문하는 과정에서 더 상세한 대화 내용을 확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한은 현재 일본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노동 미사일 100~2백 기를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거리가 1300km에 달해 중거리 미사일로 분류되는 노동 미사일은 유사시 생물 화학 무기를 탄두에 장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최대 안보 위협으로 여겨져 왔다. 일본은 2002년 1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동 미사일 문제를 북·미 대화 채널에서 분리해 북·일 협상 의제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인해 더 진전을 이루지 못해 왔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가 이번에 김위원장으로부터 이 문제를 2002년 평양선언 당시로 돌아가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답변을 끌어낸 것은 납치 문제 해결에 버금가는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앞으로 북·일 회담 진전과 연계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안보협의 발표의 타이밍을 조정하고 있다”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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