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대북 정책 밑그림’ 나왔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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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직접 대화 밝혀…부시 행정부 ‘북핵 실책’도 맹공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격돌할 민주당의 대선 후보 존 케리가 외교·안보 정책 팔기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클린턴 정부 시절 안보담당 보좌관을 지낸 새뮤얼 버거가 케리 진영을 대표해 지난 5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에 ‘민주당의 외교 정책’을 밝힌 데 이어, 최근에는 케리 후보 자신이 워싱턴 포스트·뉴욕 타임스 등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사와 잇달아 회견을 갖고 자신의 정견을 소상하게 밝힌 것이다.

지난 5월25일(미국 현지 시각) 있었던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케리 후보는 외교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미국의 안보’를 내세웠다. 자유·인권 확대 등 민주주의의 진전은 여전히 미국 외교 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지만, 현재 미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외교 과제는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케리가 밝힌 외교 정책 방향 가운데에는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도 들어 있다. 케리는 먼저 부시 정부가 북한 핵에 대해 어떤 뚜렷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음을 질타했다. 현재 진행 중인 6자 회담에 대해서는 대북 정책의 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은폐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케리는 대안으로 ‘평양과 직접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단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북한과의 직접 대화(협상)를 기존 6자 회담과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일본·중국 등 이해 당사국의 민감한 반응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케리는 그러나 대북 문제를 언급하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그런 북한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한반도 통일을 위해 기존 정전 협정을 종식하고 군사력을 축소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기꺼이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와 회견한 같은 날, 케리 후보는 다시 뉴욕 타임스와 회견했다. 이 자리에서도 부시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은 이어졌다. 케리 후보는 “부시 정부가 이라크 문제에 너무 근시안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북한과 이란이 핵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오히려 시간과 기회를 주어 미국을 더 불안에 빠뜨렸다”라고 몰아붙였다.

북한 문제에 대한 언급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즉 “3년 반 전, 또는 4년 전 우리(미국)는 평양에 텔레비전 카메라와 핵 사찰 인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3년 반 전 우리는 (최소한) 북한에 핵 연료봉이 어디 있었는지를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른다”라며 부시 정부의 북핵 문제 실책을 꼬집었다.

주한미군 감축에는 구체적 언급 없어

케리 후보 진영의 외교·안보 담당 고문으로는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와, 안보 담당 보좌관을 지낸 새뮤얼 버거 등 클린턴 행정부 시절 고위 각료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들 중 페리 전 국방장관은 2기 클린턴 정부 시절, 대북 특사로서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라는 대북 정책 보고서를 제출한 인물로, 특히 냉전 이후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예방 전략’을 주창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버거는 지난 5월 <포린 어페어즈>에 차기 민주당 정권의 외교 정책 방향을 포괄적으로 제시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은 케리 후보가 최근 워싱턴 포스트·뉴욕 타임스와 가진 회견 내용과 겹친다.

가령 ‘부시 독트린’의 골자인 ‘선제공격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이나, 대서양동맹 등 동맹 관계 복원 공약이 대표적이다. 한편 한·미 간에 최대 현안으로 등장한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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