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구제역 파동
  • 安殷周 기자 ()
  • 승인 2000.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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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 당국 열흘 뒤 대응 나서… 입증 못할 황사 탓만
‘가축의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구제역(口蹄疫)이 방역·행정 당국이 ‘어 어’하는 사이에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당국은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 대한 국지적인 대응에만 주력하다가 홍성·보령 지역에서까지 발병하자 부랴부랴 전국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실정이다.

지난 3월20일 파주 권수목장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이후 방역·행정 당국은 방역반을 급파해 발병 지역의 전염을 차단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김성훈 농림부장관이 3월30일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철저한 초동 방역 조처로 발병 지역인 파주 인근 반경 20㎞ 내 가축에 대한 임상, 혈청 검사 결과 30일 현재 추가 발병은 없다”라고 호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홍보나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다음날인 31일 홍성에서 의사 구제역이 발생하는 사태를 맞았다.

홍성 이후에는 경기도 파주(법원리)·화성, 강원도 영월 등지에서 잇달아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증세가 계속 나타나, 전국으로 확산되는 기미를 보였다. 그제서야 정부는 4월 3일 부랴부랴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국적인 방역 및 피해 보상 대책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모든 지역에서 방역을 실시하고, 감염 우려가 있는 가축에 대한 예방 접종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의 돼지·한우·젖소 등 1천1백만 마리에 모두 예방 접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대응은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구제역의 확산 속도를 뒤따라가는 수준에 머물러 구제역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홍성 지역의 경우 파주와 비슷한 시점인 3월 19~20일께 발생했지만 열흘이나 지난 3월31일에 사태를 파악하는 등 방역 체계의 허점을 드러내 방역·행정 당국이 질책을 면하기는 어렵다. 3월24일에 농장주가 홍성 축협 동물병원에 연락해 진료를 의뢰했지만 단순 호흡기질환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초동 대응할 시간을 1주일이나 날려버린 것이다. 수의사와 농가에 대한 교육 및 홍보 부족으로 수의사가 오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4월3일 새로 신고된 보령시 주산면 신구리 이 아무개씨 농가 등 7건의 발생을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게다가 신고를 받고도 재빨리 조처하지 않아 홍성 지역 축산업자들이 4월2일 새벽 돼지 4백60여 마리를 서울·인천 등으로 반출했다. 외부로 출하된 돼지 가운데 일부가 감염되었을 경우 수포성 질병이 전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축산 농가에 충분히 보상해야

이런 상황에서 방역·행정 당국은 이번 구제역이 황사를 통해 전염되었다고 주장해 눈총을 받고 있다. 면피용 발언이 아니냐는 것이다. 농림부 가축위생과 이상진 사무관은 “중국 여행객, 수입 건초, 야생 동물 등 다른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황사가 가장 유력한 전염 경로인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주장했다. 올해 황사가 예년에 비해 심했던 데다 구제역이 주로 서해안 지역에서 나타나고, 파주와 홍성에서 발생할 당시 비가 내려 습도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중국은 전역에서 1년 내내 구제역이 발생하기 때문에 황사를 통해 우리나라로 전염될 소지가 크고,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결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 발생한 구제역과 같은 유형인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립환경연구원 박철진 연구관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반론을 편다. 그는 “중국의 구제역 바이러스가 한국까지 날아오려면 대기가 매우 건조해야 한다. 하지만 구제역 바이러스는 습기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고, 공기 중에 습기가 많으면 바이러스가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중국의 바이러스가 한반도까지 날아올 확률은 낮다. 또 황사가 전국을 급습한 데다 하루 만에 한반도를 빠져나갔기 때문에 그 사이에 특정한 지역의 소만 황사로 인해 감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쪽의 주장도 실험과 분석을 통해 입증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3월 중순에 발생한 황사 시료가 없어 분석할 수 없고, 설사 시료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보름이나 지난 시점에서 성분을 분석해 바이러스를 검출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구제역의 원인이 황사에 있다는 주장이 사고를 예방하고 재빨리 수습하지 못한 검역·행정 당국의 면피용 발언이라는 여론이 제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997년 3월 구제역이 발발한 타이완의 경우 초동 방역에 실패함으로써 40조원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당시 타이완 정부는 초기에 발생 농장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에 방역대를 설정하는 국지적인 대책을 시도하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발생 4개월 후인 7월에야 겨우 수습했으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7년 12월에 재발생해 1999년 2월까지 간헐적으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우리 정부가 타이완의 실패 사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 구제역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구제역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66년 전에 마지막으로 발생했던 전염병이어서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농림부가 의사 구제역과 관련한 전반적인 사항을 직접 주관하기 때문에 농가가 행정 당국에 신고하지 않는 한 발병 사실을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시스템도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이다. 황우석 교수(서울대·수의학)는 “대책위를 범부처 범위로 확대해 신속하게 대응하고, 정부가 발표한 대로 한시바삐 전국 모든 지역을 검역하는 등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또 가축을 도살한 축산 농가에는 시가 보상을 하고 경영 손실분에 대해 생계 보조를 해줘야 우리 축산 농가가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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