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5·18 암매장 장소, 찾을 길 없다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6.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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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현장 조사 ‘집단 암매장’ 의혹 못밝혀…검찰, 수사·발굴 포기
‘왜찔렀지 왜 쏘았지/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광주 민중항쟁을 추모하는 <오월의 노래> 중 일부분이다. 광주 시민들은 이 노랫말대로 5·18 항쟁 당시 야산과 들판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죄없는 사람들의 시체가 계엄군의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지는 걸 보았을 뿐 계엄군이 이 주검들을 어디에 얼마만큼 매장했는지 알지 못한다.

80년 5월 항쟁부터 지금까지 계엄군이 학살한 시민들을 특정 지역에 집단 암매장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아 왔지만 황룡강변 등 거론된 장소에 대한 발굴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검찰이 ‘참고인들의 증언에 구체적 장소와 증거가 부족해 신빙성이 없다’며 사실상 암매장 수사와 발굴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번 5·18 현장 조사에서도 계엄군이 즉결 처분해 가매장한 시체를 보았거나 발굴했다는 사례는 많았지만 집단 암매장 현장을 목격했다는 제보는 없었다.

정수만씨(5·18 광주민중항쟁유족회장)는 “당시 정황으로 보아 행방 불명된 사망자들이 다수 암매장됐거나 유기됐다고 확신한다. 검찰이 국방부가 보관하고 있는 80년 당시 자료들을 입수해 광주에 투입된 3·7·11 공수단과 20사단 소속 중대장·대대장 등 지휘관급 군인들에 대해 정확한 수사를 벌여야 암매장 장소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계엄군이 무차별 학살한 시민들을 가매장했다가 일괄적으로 시신을 수습해 트럭이나 헬기로 운반한 다음 한군데 집단 매장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의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의 행불자·사망자 밝힐 의지가 문제

암매장 의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사망자 숫자이다. 정부의 발표는 그동안 1백44명(80년 6월 발표된 계엄사령부 자료 ‘광주사태’)부터 1백63명(88년 13대 국회 대정부 질문에 대한 오자복 국방부장관의 답변)까지 널뛰기를 계속해 왔다. 민간에서도 8백32명(아널드 피터슨 목사)에서부터 1천4백58명(윤영규 5·18 당시 시민수습위원)에 이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정부 공식 통계로 5·18 관련 사망자는 민간인 1백66명, 경찰 4명, 군인 23명 등 총 1백93명이다. 그러나 정부가 공식 인정해 보상금까지 지급한 행방불명자가 47명이나 되며, 광주시에 신고된 행불자만도 1백8명이다. 정부가 스스로 인정한 행방불명자의 존재는 시체가 암매장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그와 관련해 현재까지 제보자들의 입을 통해 암매장 지역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장소는 광주교도소 부근과 광주비행장 뒤편 황룡강 제방 등 열군데에 달한다(12쪽 지도 및 도표 참조). 특히 광주비행장 뒤편의 황룡강 송정교 부근은 ‘5·18 광주 민중항쟁 행불자 가족회’가 줄곧 발굴하라고 요구해온 지역이다. 89년 이곳에서 유골이 9구 발견됐기 때문이다. 당시 발견된 유골은 80년 이전의 행려병자들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을 뿐 정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귀복 5·18 행불자가족회장은 “유골 9구가 발굴된 황룡강변 주변에 5·18 직후 아카시아 나무 수십 그루가 심어져 무성하게 자랐다. 이 주변에 더 많은 시신이 묻혀 있다는 주민들의 제보가 있는 만큼 반드시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 화정동 잿등과 육군 통합병원 부근, 쌍촌동 상무대 인근 야산도 꾸준히 집단 암매장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다.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송선태씨(48·광주시의회 전문위원)는 이와 관련해 지난 11일 검찰 조사에서 “계엄군이 육군 통합병원 근처에 굴삭기로 큰 웅덩이를 파고 시체 수십 구를 매장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들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밖에 유력한 암매장지로 거론되는 곳은 계엄군이 양민을 집단 학살한 광주 외곽 지역이다. 계엄군이 광주시를 완전히 봉쇄한 80년 5월22~23일을 전후해 화순 등 외곽 지역에서 무차별 양민 학살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7월 검찰 발표를 통해 알려진 광주­화순간 주남 마을 버스 피격 사건(5월23일 오후 17명 사망, 증언자 홍금숙)에 이어 이번 현장 조사에서 인근 녹동 마을에서도 같은 날 오전 버스 총격 사건으로 10명이 사망했다는 마을 주민의 구체적인 제보(증언자 김종화씨·48)가 접수되었다. 두 사건 사망자 27명 가운데 당시 광주지검 검시 조서를 통해 신원이 밝혀진 시체는 10구뿐이다. 따라서 나머지 사망자들이 주변 야산에 암매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광주­담양간 접경 구간인 광주교도소 부근과 광주시 송암동 광주­목포간 도로 주변도 암매장 의혹이 제기되는 곳이다. 광주교도소 부근은 검찰이 지난해 발표에서 시체 12구가 가매장된 것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교도소에 구금된 강길조씨(54)는 시민 52명이 교도소 내에서 희생되었다고 증언해 교도소 인근 암매장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송암동의 경우 주민 김복동씨(75)가 검찰 조사에서 “5월22일 오전 시체 12구가 송암동 구 분뇨처리장 부근에 널려 있었으나 오후에 계엄군이 9구를 트럭에 싣고 나주 남평 방면으로 사라졌다”고 진술해 다른 곳에 집단 암매장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상률씨(63)는 분뇨처리장 속 인분통에 매장한 시체들을 보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밖에 해남-영암 접경인 해남 우슬재 고개에 유골 2구를 가매장했다는 증언이 있었으나 1구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암매장 수사에서 결정적 증거나 목격자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제보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바로 이곳’이라고 장소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상 규명을 위해 검찰이 행방불명자와 정확한 사망 인원을 밝혀 내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5·18 관련 단체들은 결정적 증언이 없다 하더라도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암매장 의혹이 짙다면 검찰이 발굴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5·18 직후 광주에서 사라져버린 구두닦이·넝마주이 등 갱생원 수용자 2백여 명과 행려병자들의 행방은 여전히 광범위한 집단 암매장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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