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나가노에서 7년 만의 만남
  • 나가노·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8.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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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년 만에 참가…91년 탁구 단일팀 응원했던 나가노 교포들 ‘따로 응원’에 안타까움
제17회 겨울 올림픽이 지난 2월7일 개막되어 16일 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7경기 68종목에 세계 72개국 2천3백여 선수가 참가한 이 대회에는 한국이 63명, 북한이 20명을 파견했다.

북한이 겨울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6년 만의 일이다. 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황옥실 선수가 쇼트 트랙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이후 북한 선수단은 94년 릴레함메르 대회에 결장했다. 그런 북한이 식량난과 외환 부족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20명이라는 대규모 선수단을 나가노 대회에 파견한 것은, 한마디로 조총련 조직의 후원을 기대한 때문이다. 나가노 시내의 한 스포츠 용품 전문점 관계자에 따르면, 조총련은 지난해 말 쇼트 트랙용과 스피드 스케이트용 구두를 사들여 북한 선수단에게 선물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막 2일 전인 2월5일 밤에는 나가노 시내에서 조총련계 동포 2백여 명이 성대한 환영회를 열고, 북한 선수들에게 기필코 이번 대회에서 겨울 올림픽 사상 세 번째 메달을 획득하자고 격려했다.

이에 비해 민단은 작년 가을 중앙본부와 나가노 현 본부가 공동으로 ‘한국 선수단 재일 한국인 후원회’를 결성하고 한국 선수단 응원을 준비해 왔으나, IMF 한파로 한국 선수단과 보도진 규모가 대폭 축소되자 응원에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마이니치 신문>의 사와다 가쓰미(澤田克己)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여유있는 북, 자숙하는 남’ 현상이다.

돌이켜 보면 7년 전 남북은 사상 처음으로 탁구 통일팀 ‘코리아’를 결성하고, 이곳 나가노 시 종합운동체육관에서 첫 합숙 훈련에 들어갔었다. 기자도 합숙 훈련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7년 전 3월 나가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서울 말씨와 평양 말씨가 뒤범벅되어 남북 선수 22명이 함께 비지땀을 흘린 곳이 바로 이곳 나가노 시인 것이다.

민단과 조총련도 남북 통일팀 ‘코리아’를 공동으로 응원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응원과 환영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했었다. 합동 훈련지인 나가노 지역 동포들도 민단과 조총련에 관계 없이 김치·떡 등을 정성껏 마련하여 ‘코리아 팀’ 연습을 열렬히 성원했다.

남북 쇼트 트랙 대결에 큰 관심

그러나 지바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가 끝남과 동시에 체육 경기를 통한 남북 화해 무드는 급속도로 냉각했다. 아시아 탁구 선수권대회를 남북이 공동 개최한다는 계획도 무산되었고, 축구 단일팀 구성 합의도 말잔치로 끝났다.

민단 나가노 현 본부의 한 관계자는 “코리아 팀 합동 연습을 뒷바라지할 때는 남북이 금방 통일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이곳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남북 따지지 않고 모두 한마음이 되어 코리아 팀을 응원했었다. 이 지역 동포들은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겨울 올림픽 선수단을 남북 따로따로 맞아들인 이 지역 동포들의 마음은 매우 착잡하다. 개회식날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던 50대 교포는 “7년 전처럼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앞으로 벌어질 경기에서 남북 선수들을 두루 응원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 동포는 남북 대결이 벌어질 17일부터의 쇼트 트랙 경기가 이 지역 동포 사회에서 화제라고 말했다. 쇼트 트랙 경기는 남녀 500·1000m, 남자 5000m 이어달리기, 여자 3000m 이어달리기 등 금메달이 6개 걸려 있는 종목이다.

북한 팀에서 주목되는 선수는 단연 알베르빌 대회 500m 쇼트 트랙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황옥실 선수이다. 지난 1일 연습하다가 펜스와 충돌하면서 엉덩이와 팔꿈치를 다쳤으나 시합에는 큰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황옥실 선수는 일본 언론들과 인터뷰할 때 금메달 획득을 자신해 그가 출전하는 500·1000m 경기와 3000m 이어달리기에서 남북 대결이 재일 동포 사회의 큰 관심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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