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띠보다 무서운 유처리제
  • 전남 여천·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5.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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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만5천2백 리터 살포해 ‘2차 오염’ 심각…다도해 주민들 10년 이상 살길 막막
전남 여수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여를 달리면 유조선 시프린스호 사고 현장인 여천군 남면 연도(일명 소리도)에 이른다. 소리도 주민들은 태풍 페이에 지붕이 날아가는 등 가옥이 파손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어장을 뒤덮어 이번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해마다 1억5천여만 원씩 수익을 가져다 주던 마을앞 자연산 조개어장은 조류에 휩쓸려온 검은 기름에 시커멓게 죽어버렸고, 고운 모래를 자랑하던 덕포 해변은 속수무책의 기름밭으로 변했다. 바지락·전복·소라·톳·파래 등 조개와 해조류를 채취하던 소리도 앞바다는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과 다량 살포된 유처리제 때문에 언제 다시 어장이 될지 알 수 없게 됐다.

3백27가구 1천5백여 주민이 사는 소리도는 천혜의 어족 자원으로 가구당 월 소득이 2백만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제 기름 유출로 어장이 황폐해져 살길이 막막한 상태다. 연도리 이장 김본준씨(50)는 앞으로 몇년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며 “정부가 소리도를 포함한 남면 지역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하고 10년 이상에 해당하는 피해를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도리’와 ‘서고지리’ 주민들도 이번 기름 유출로 50여 가구의 양식 어장이 황폐해지는 큰 해를 입었다. 안도 이야포 마을 앞바다에서 우럭과 돔을 가두리 양식하는 정정태씨(36)는 “2년 동안 고생해 12월이면 다 자란 고기를 팔 수 있었는데 이제 다 틀렸다”고 말했다.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가 몰고온 상처는 너무 깊다. 사고 지점인 소리도 등대 부근 해상에서 남북으로 30㎞, 동서로 15㎞ 범위 내에 있는 여천군 남면 연도·안도·금오도 연안 해상과 돌산읍 성두·임포 연안까지 기름이 유출됐고, 양식장 밀집 지역인 경남 남해 앵강만과 고흥 가막만 일대까지 기름띠가 퍼졌다. 유출된 벙커C유 7백여t은 4천2백여㏊(중앙재해대책본부 추산)의 어장을 기름띠로 뒤덮었다. 7월31일 현재까지 방제 작업에 쓰인 흡착포는 25만3천여㎏에 달한다.

시프린스호에 담긴 원유는 8만 3천여t 정도인데, 선체 인양과 원유 이적 작업은 빨라야 8월 중순에나 끝날 예정이다. 호유해운에 따르면, 해수와 압축 공기를 투입해 인양한 뒤 인근 바다로 예인해 원유를 옮길 계획이다. 그러나 태풍 등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작업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적재된 원유 8만여t은 ‘시한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처리제의 과다 살포로 인한 2차 오염도 심각한 실정이다. 환경부는 7월25일 조사반을 현지에 파견한 뒤 28일에야 사고대책본부에 유처리제 사용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벌써 사고 해역에는 12만5천2백여ℓ가 뿌려졌다. 유처리제는 특히 바다 속에 서식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죽이고 물고기의 호흡을 차단해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어민들의 걱정은 태산이다.

피해 보상 제대로 될지 의문

기름 유출에 따른 피해 보상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여천군·호유해운·여수 수협·남해수산연구소로 구성된 피해조사반은 7월29일부터 한달 예정으로 사고 피해 조사에 착수했다. 93년 광양만을 오염시킨 사고 때는 7백50t의 벙커C유가 유출돼 4천5백㏊의 어장에 피해를 주었지만 아직도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당시 어민들은 천억원대의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 감정을 맡은 ‘한국해사감정사’는 피해액을 35억원으로 산정했다. 이 회사가 이번 사고의 방제작업 감정을 또 맡았다.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고는 초기 방제 작업의 실패로 피해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가 발생한 지 사흘 뒤에야 대책본부가 꾸려졌고, 전문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싱가포르에서 공수해온 C130 수송기로 유화제를 살포하고, 일본 셀비지사에 구난을 요청하는 등 우리나라 해난 사고 대처의 원시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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