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성·김종필에 박근혜까지…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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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공동 후보론·후보감' 놓고 설왕설래


"지금 이 구도대로는 안 갈 것이다." 민주당 동교동계의 한 인사가 차기 대선 구도와 관련해서 던진 말이다. 현재의 틀을 뛰어넘는 큰 그림, 즉 DJP 공조와 3당 연합의 연장선상에서 대선 구도를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핵심이 바로 3당 공동 후보론이다. 그 바탕에는 후보 개인의 대중적 인기에 의존해서 차기 대선을 돌파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단순 경선만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범여권의 이해 관계를 고루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도 중요한 논거다.




최근 3당 공동 후보론이 떠오르면서 이수성 전 총리(오른쪽)가 다시 총리로 기용되리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여권 실세인 민주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맨 오른쪽)과의 회동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3당 공동 후보론은 김윤환 민국당 대표의 오래된 지론. 그러나 최근 들어 여권 핵심 인사들이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8월10일 김종호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은 "합당 여부와 관계없이 3당 공동 후보는 정석이자 상식이다"라고 못박았고, 이틀 후 박상규 민주당 사무총장이 "3당이 따로 후보를 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며 가세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명분 때문에 반대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내심 긴장하는 기색이 뚜렷하다.


명분은 그럴싸하지만 관건은 인물. 기존 구도를 뒤흔들 만한 3당 공동 후보감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여권 실세인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권씨는 지난 7월31일 하와이로 출국하기에 앞서 이수성 전 총리와 오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인사는 권씨가 이씨를 차기 총리로 밀어 왔는데, 이 날 회동에서 그 얘기가 오갔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수성 총리·한화갑 대표 임명설


동교동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 역시 권씨가 최근 이수성 총리·한화갑 대표·박지원 비서실장으로 짜인 당·정 개편 구상을 DJ에게 건의했다고 전했다. 그 건의에는 김근태·정동영 의원 등 당내 개혁파와 YS 측근 인사 몇몇을 입각시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수성 전 총리가 각료 제청권 등 실질적 권한을 요구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시기는 8월설과 12월설 두 가지.


문제는 이수성 총리설이 단순한 당·정 쇄신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수성 총리 카드가 현실화할 경우 3당 공동 후보 만들기의 일환이라고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실 이씨는 지난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대선 주자 명단에서 빠졌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 평이었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이씨가 JP와 함께 우리 사회 주류 세력에게 설득력이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라면서 "JP와 달리 이 전 총리는 아직 만들어 볼 여지가 있다"라고 진단했다.


'이수성 카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 여권 인사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그가 이회창 대세론을 흔들 수 있는 적임자라는 점. 대중적 지지도는 낮지만 영남 지역의 여론 주도층에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여권 일각의 분석이다. 최근 우리 사회 보수 주류층의 이회창 쏠림 현상을 차단하는 데도 '이수성 카드'가 유효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DJ와 JP는 물론이고 최근까지 YS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의 강점으로 거론된다.




"나야 나" : 보수층을 견인할 수 있고 범여권의 복잡한 이해 관계를 고루 충족할 인사들이 3당 공동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맨 왼쪽부터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이한동 국무총리.


3당 공동 후보론의 또 다른 주인공은 JP. 자민련은 공공연히 'JP대망론'을 제기하면서 민주당에 '부채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를 단순한 연막 차원이 아니라고 본다. 대선 주자로서 깃발을 들지 않으면 내년 지방 선거에서 표를 모으기 어렵다는 것이 자민련의 절박한 상황 인식이다. 더 나아가 자민련 인사들은 내년 대선 때 보수 분위기가 강화될 것이므로 JP야말로 3당 공동 후보로 최적임이라고 주장한다.


김윤환 대표가 밀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도 3당 공동 후보 명단에 포함된다. 영남 출신이면서 전국적으로 고르게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고, 세대교체형 후보이면서도 박정희 후광으로 보수층에 소구력이 있다는 것이 박부총재 특유의 강점이다.


이한동 총리는 보수성과 안정감, 3김과의 우호적 관계 때문에 3당 공동 후보감으로 거론되고 있다.


인물난에 여론 나빠 '난산' 불보듯


정치권에서 3당 공동 후보론이 내년 초 대선 구도를 뒤흔들 최대 변수라는 점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3당 공동 후보론의 앞길은 지뢰밭이다. 이런저런 인물들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3당의 이해를 모두 만족시킬 공통 분모를 찾기가 쉽지 않다. 찾는다 하더라도 대중적 지지를 얼마나 얻을 수 있느냐는 점도 불투명하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여론의 역풍.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현재 여권에 대한 민심 이반이 너무 심해 어떤 일을 도모하더라도 불신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3당 공동 후보론도 밀실 정략이라는 비난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잘 쓰면 보약이지만 잘못 되면 독약'이 바로 3당 공동 후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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