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권 재선거 출마 '3대 의문'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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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을 승부' 강행 이유는?…
청와대는 왜 반대할까?…파워 게임 벌어졌나?


민주당 김중권 대표의 서울 구로 을 재선거 출마를 놓고 여권 내부가 혼란스럽다. 당 쪽은 '김대표가 필승 카드'라며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데 반해, 청와대측은 '김대표로는 무리'라며 제동을 거는 분위기다. 급기야 김대표는 지난 8월27일 '몸이 불편하다'며 당무를 거부했다.




10월25일 치러지는 구로 을 재선거는 김대중 정권의 마지막 1년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선거다. 현재 여야 의석 분포는 136(민주·자민·민국) 대 132(한나라) 대 3(무소속)으로 공동 여당이 겨우 과반수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만약 이 선거에서 여당이 패한다면 여대야소 구도가 깨져 김대중 대통령의 하반기 국정 운영이 마비될 것이 뻔하다. 이런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여권 내부가 갈팡질팡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김대표 출마설에 얽힌 궁금증 세 가지를 풀어본다.


김대표는 출마와 불출마의 갈림길에서 오랫동안 갈등해 왔다. 당 대표를 맡고 있는데도 답보 상태인 대중 지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승부처인 데다, 성공하면 현역 의원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낙선할 경우 김대표는 대표 자리는 물론 대선 주자 대열에서 낙오하는 것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김대표는 한때 불출마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8월23일 상황이 급변했다. 이 날 박상규 민주당 사무총장은 "현지 여론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원한다. 조사 결과 김대표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라고 말해 김대표 출마 분위기를 띄웠다.


발단은 FGI(Focus Group Interview·집단 심층 면접 조사)였다. 당이 구로 을 지역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 외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 집단심층면접조사에서 '지역 발전에 유리한 후보'가 가장 많이 거론되자, 박총장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힘있는 후보=김중권'이라는 결론을 낸 것이다. 김대표는 여권 전체가 나서서 밀어주면 당선이 어렵지 않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가 김대표 출마에 부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김대표가 당선할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무조건 이기는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 그런데 각종 여론조사 결과 명망 있는 정치인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집단심층면접조사는 선거운동 방법을 선택할 때 유용하지 공천자를 결정할 때는 맞지 않는 기법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 관계자는 "지역 개발을 위해 힘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농어촌에서는 몰라도 서울에선 맞지 않는다. 서울은 15대 총선 이후 중진 대신 신인을 택하는 '바꿔 바꿔' 흐름이 뚜렷하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측이 김대표 출마에 반대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금권·관권 선거 시비에 대한 우려다. 김대표가 출마하면 구로 을 재선거는 단순한 의석 다툼을 넘어서 정권에 대한 신임 투표 성격을 띠게 된다. 이 경우 여권은 이기기 위해 총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이기더라도 금권·관권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야당이 눈에 불을 켜고 공격거리를 찾으려고 할 텐데, 만에 하나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 그것은 김대통령의 레임 덕을 부추기는 최대 악재가 될 것이다"라고 경계했다.


김대표 출마는 당·정 개편과 맞물려 있어 민주당 내 각 계파와 차기 주자군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대표와 동교동 구파 간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김대표는 지난 8월8일 청와대 단독 주례보고 때 구로 을 후보로 한광옥 실장을 천거했다고 한다. "한실장은 국가를 위해 호출당한 것 아니냐. 이제 지역 발전을 위해 돌아가겠다고 하면 지역 주민들도 받아들일 것이다"라는 것이 김대표의 논리였다는 후문이다.


이런 사실은 김대통령으로부터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얘기를 듣고 정중하게 거절한 한실장이 곧바로 누가 그런 보고를 했느냐고 당의 고위 인사들을 집중 추궁하는 과정에서 밖으로 알려졌다. 한실장을 차기 당 대표로 내세우려는 동교동 구파 진영이 보자면 김대표의 '역공'이라고 여길 법했다.


이에 대한 반격일까. 당초 '이수성 연합 후보설' 등을 띄우던 동교동 구파 진영에서 김대표 출마를 지지하는 발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신 당에 부담이 되니 대표 직을 내놓고 나가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동교동 구파의 김중권 밀어내기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집단심층면접조사가 동교동 구파의 '김중권 밀어내기 작전'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현재 외유 중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지난 8월19일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인천공항에 잠시 머물렀을 때 유일하게 동교동계와 가까운 한 고위 당직자를 불렀고, 그 후 이 당직자의 주장에 따라 갑자기 집단심층면접조사가 추진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여론조사를 놓고 김대표는 나가서 승리하는 쪽에, 동교동 구파는 김대표를 밀어내는 쪽에 무게를 둔 셈이다.


이렇듯 복잡 미묘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구로 을 공천은 김대통령이 "공천심사위원회에서 논의해 당선 가능한 후보를 추천해 달라"고 지시하면서 공이 공천심사위원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김대통령의 이 발언을 놓고도 '김대표가 OK사인을 받았다' '대통령이 김대표 출마를 반대한 것이다' 등 의견이 갈려 여권 내부의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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