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 게이트 '악의 씨앗' YS 때 뿌려졌다
  • 권은중·나권일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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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문민 정부의 '꼼수 정책' 활용해 사기 종자돈 마련
한나라당은 이용호 게이트를 현정권이 연루된 권력 비리라고 강조해 왔다. G&G그룹 이용호 회장이 현정권에서 주가 조작 등을 통해 천억원대 거부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나라당도 결코 이용호 비리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이용호 비리는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이 집권하고 있던 YS 정권에서 싹텄기 때문이다.




이용호 회장은 1997년 10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일대 9천5백80평을 신안그룹 박순석 회장으로부터 사들였다. 거래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공시지가는 약 1백40억원에 이른다. 이씨는 1997년 11월1일 ㅎ개발에 근저당 3백60억원을 설정해주고 2백98억원을 빌렸다. 이씨가 이 돈을 갚지 않자 1998년 8월 소유권은 ㅎ개발로 넘어갔다.


이회장은 이 돈을 밑천으로 삼아 주식 투자를 하다 1999년 세종투자개발(G&G의 전신)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IMF 때 기업을 헐값에 사서 비싸게 파는 기업 사냥을 시작했다. IMF를 앞두고 시중에 돈이 바짝 마르기 시작하던 1997년 10월 그는 어떤 자금으로 박순석씨의 땅을 샀을까?


1977년 광주상고를 고학으로 졸업하고 광주에서 사업 수완을 발휘하던 이씨는 1993년 지방의 한 언론사와 공동 투자한 반도종합건설 대표를 맡았다. 토건과 포장 면허를 가지고 있는 반도종합건설은 관급 공사를 주로 해오다 1995년 한신공영과 함께 광주 남구 진월동에 아파트를 분양·시공했다. 1994년 부채비율 1268%에 이르는 부실 기업인 반도종합건설은 1995년 주택사업공제조합(공제조합·현 대한주택보증)의 보증으로 한미은행 등에서 1백36억원을 대출받았다. 특히 이씨는 회사가 부도 난 1995년 11월 이후에 100억원을 대출받았다.


"거액 대출받고 고의 부도"


당시 업계에서는 이씨가 거액을 대출받고 고의로 부도를 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씨와 비슷하게 공제조합에서 대출을 받고 부도를 낸 건설회사가 호남 지역에 여러 곳 있었기 때문이다. 부도 후 공제조합은 반도종합건설을 대신해 이자를 포함해 1백46억원을 갚아 주었고 반도종합건설측은 31억원만 변제했다. 대한주택보증 광주지부 관계자는 "우리는 이씨의 채권을 추심할 방법이 없다. 이씨는 소송에 걸리면 마지못해 조금씩 돈을 갚고 있다"라고 말했다.


1996년 1월 최종 부도 후 이씨는 광양으로 도피해 수백억원대 자금을 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1996년 초 부인 최씨 명의로 세종산업개발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그 해 6월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가 기소중지 처리되자 대박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결국 공제조합은 이씨가 금융 사기를 저지를 종자돈을 마련해준 셈이다.


주택건설촉진법에 의거해 1993년 4월 만들어진 공제조합은 원래 건설회사가 부도를 냈을 때 입주자의 피해를 막으려고 설립되었다. 공제조합은 회원사에 신용으로 은행권 대출 보증을 해주기도 했는데 여기서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담보가 필요 없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재산상 손해가 없었고, 공제조합 돈이어서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1998년 국감 자료에 따르면, 창립 후 그 해 9월까지 공제조합이 건설회사 대신 은행권에 갚아준 돈은 무려 1조8천억원, 갚아야 할 금액도 1조4백억원에 달했다. 결국 1999년 3월 부실에 신음하던 공제조합은 해체되었다.


YS 정권 시절 감사원은 거듭 공제조합의 대출 보증 심사를 강화하라고 권고했지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공제조합이 이렇게 비리의 온상이 되었는데도 YS 정권이 공제조합을 손대지 않은 까닭은 부산판 수서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 다대·만덕 택지개발 사업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공제조합은 YS 정권의 사금고?




원래 다대·만덕 지구는 녹지였으나 동방주택이라는 건설회사가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 1995년 주거지로 용도 변경되었다. 동방주택은 용도 변경으로 시세 차익을 약 천억원 얻었다. 그런데 1996년 2월 공제조합은 아파트사업을 할 수 없다는 정관을 어기고 택지사업부를 신설했다. 그 후 공제조합은 동방주택과 함께 다대·만덕 지구에 6천6백억원 규모의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하고 동방주택에 6백93억원을 지급했다. 1996년 말 동방주택 부채 비율은 무려 77000%에 이르러 사업 파트너로는 부적격이었다.


감사원은 공제조합에 여러 차례 택지사업부를 폐지하고 투자비를 회수하라고 경고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정관을 거스르며 부실 기업에 돈을 퍼주는 공제조합을 감독 기관인 건교부는 수수방관하다가 정권이 바뀐 1998년 5월 공제조합에 기관경고를 내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동방주택이 공제조합에서 토지대금을 받던 시기는 1996년 4·11 총선, 1997년 대선 기간과 겹친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는 공제조합이 여권의 정치 자금 창구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공제조합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이자 주택건설사업협회 회장이던 허진석씨는 공제조합 간부들과 함께 공제조합에 8백억원 손해를 끼친 혐의로 1999년 12월 구속되었다. 비리의 주역이었던 허씨와 동방주택 이영복 사장은 신한국당 부산시지부 후원회원이었다. 또 이사장은 해운대 민주산악회 회장을 지냈고, 한나라당 ㅂ의원과 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긴 ㄱ 전 의원의 후원회원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사장이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잠적해 다대·만덕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영남쪽 건설업체가 공제조합의 눈먼 돈을 자기 주머니 돈처럼 쓰고 있을 때 호남의 건설업체는 공제조합 돈 때문에 철퇴를 맞고 있었다. 당연히 업계에서는 '영남은 봐주고 호남만 잡는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공제조합 전주·광주 지점은 1995년과 1996년 계속 감사를 받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대출을 받은 건설회사 사장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당시 반도종합건설 이용호 대표도 공제조합 광주지점장에게 3천4백만원을 주고 편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당연히 수사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씨는 잠적했고 사법 처리되지 않았다. 대신 깃털 격인 총무부장 채 아무개씨만 배임중재 혐의로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1993년 반도종합건설 사장을 맡은 이후 건설업법 위반·업무 방해·배임·횡령·사문서 위조·부정수표단속법 위반·사기·근로기준법 위반 등 다양한 범죄 혐의로 고발·입건되었지만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씨는 이미 광주에서 사업을 할 때 검찰 수사를 피해 가는 방법을 확실하게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김옥두 의원은 10월10일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이씨가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것은 YS정권 시절 신한국당 실세 정치인과 커넥션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광주에서 종자돈을 챙겨 상경하기까지 이씨가 누구에게 보험을 들었는지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 정권의 공제조합 제도를 활용해 금융 비리의 밑거름으로 삼은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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