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내는 ‘고 건 대안론’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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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회, 대선 출정식 방불…정몽준과 연대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7월10일 오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축구 경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강영훈·서영훈 전 총리를 비롯해, 종교계에서는 강원룡 목사, 정대·월주 스님, 조정근 전 원불교 교정원장, 김몽은 신부가 모습을 보였고, 박권상 KBS 사장, 최학래 한겨레신문 사장, 김정국 문화일보 사장, 장 상 이대 총장, 이경숙 숙대 총장, 송 복 전 연세대 교수, 이세중·한승헌 변호사,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최 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이어령 전 장관, 탤런트 고두심, 가수 장사익·신형원 씨도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이상주 교육 부총리와 신중식 국정홍보처장,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김덕규·이재정 의원,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만이 모습을 나타냈다. 각계 인사 2백여 명의 발걸음이 향한 경기장 안 리셉션 홀에는 ‘고 건 시장님 참 잘하셨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한 참석자는 이 행사가 고 건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비공식 송별회라고 말했다. 6월 말로 임기를 마친 고 건 전 서울시장을 위해 지인들이 마련한 자리라는 얘기다. 서영훈 전 총리가 준비위원장이 되어 추진한 이 행사에는 평소 고씨와 가까운 인사들만 초청되었고, 참가자들은 회비 3만원씩을 내고 입장했다.



방송인 정은아씨의 사회로 강영훈 전 총리의 인사말, 장 상 총장(학계 대표)과 송 복 교수(친구 대표)의 축사, 강원룡 목사의 건배 제의로 이어진 이날 행사는 고씨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 다음날 국무총리에 임명된 장총장이 “클린 고건, 그린 고건, 고시장은 최고의 범생이”라고 치켜세운 것을 시작으로 “고시장을 계속 키워나가자” “이게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라는 찬사가 잇달았다. 강원룡 목사는 “그런 의미에서 건배 구호를 ‘출발’로 하자”라고 제의하기도 했다. 가수 신형원·장사익 씨의 여흥으로 끝맺은 이날 행사를 지켜본 한 참석자는 마치 대선 출정식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물론 고씨측은 단순한 송별회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박원순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고 전시장이 지금까지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으면 한다”라고 말해 대선 출마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때가 때인지라 이런 행사가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정가에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무현 후보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한동 전 총리와 함께 고 건씨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서지는 않겠지만…”



동교동계 한 의원은 “이한동 전 총리보다 고씨가 더 경쟁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깨끗한 이미지, 검증된 행정력, 안정감이 다 강점이라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가 독점하고 있는 경기고·서울대 표는 물론 보수층 표도 분산시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고씨도 상황 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그의 한 측근은 “지역 화합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을 음미하라”면서, 고씨 스스로 나서지는 않겠지만 추대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몽준-고 건 연대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정의원이 외교·국방을 담당하고 고씨가 내치를 책임지는 권력 분산형 집권 모델을 제시할 경우 상당한 지지를 얻으리라는 것이다. 고 건씨는 학계(명지대 석좌교수)로 돌아갔지만, 당분간 정치권에서 더 많이 그 이름을 듣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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