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의 화려한 탈선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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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업 사생활 추적/청와대 민정실, 알면서도 못 막아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52)가 구속된 뒤에도 황태자 못지 않았던 그의 사생활에 대한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홍업씨 측근 유진걸씨가 홍업씨 부인에게 2천7백만원짜리 다이아 반지를 선물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여론이 들끓었다.



유씨는 1999년 성원건설 화의 청탁을 해결해 주고 전윤수 회장으로부터 받은 10억원을 김성환씨와 각각 5억원씩 나누어 가졌다. 유씨는 그 돈으로 홍업씨에게 명절 떡값으로 5천만원, 유학 중인 홍업씨 아들에게는 2만 달러를 송금했고, 평소 친하게 지낸 홍업씨 부인에게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값비싼 반지를 사주었다.



부인은 연봉 2억의 커리어 우먼



홍업씨 가정의 씀씀이를 들여다보면 이 정도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검찰이 파악한 홍업씨의 재산은 45억5천만원이다. 현대와 삼성 등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기도 했지만 원래부터 ‘먹고 사는 데 걱정 없을 만큼’ 재산이 넉넉했다. 1997년 당시 신한국당이 파악한 홍업씨와 홍업씨 부인 명의의 예금만 20억원에 가까웠다.



홍업씨 부인 신선련씨(48)는 현재 미국 메릴린치증권 한국지사의 임원으로 1년 연봉이 2억원이다. 홍업씨의 도움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커리어 우먼으로 알려져 있다. 영남 출신인 홍업씨 처가는 얼마 전 소유했던 목장을 처분한 금액만 수십억원에 달할 정도로 부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 초까지 아태재단 행정실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홍업씨가 이권에 개입해서 재산을 불린 것으로만 몰고가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문제다. 그 정도 재산을 모을 만한 조건은 갖추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홍업씨를 가까이서 지켜보아 왔다는 청와대의 한 인사는 “홍일씨와 달리 홍업씨는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희석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모던하고 여유 있고, 포용력 있는 서울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를 좋아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장농에 있던 금붙이까지 팔아 IMF를 극복하자고 호소하던 그 순간에도 홍업씨가 호화 생활을 즐겼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업씨는 술로 몸을 망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주일에 두세 차례 최고급 룸살롱에서 하루 5백만원어치 가량을 마셨다. 홍업씨가 술값을 내는 일은 드물었고 대부분 이권을 청탁하는 측이 술을 샀다. 홍업씨 측근들은 대한종금이 보유한 부도 어음을 헐값에 매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이 쉽게 먹혀들지 않자 당시 예보 직원이던 대한종금 청산인 이 아무개씨를 단골 술집으로 불러들여 수백만원짜리 향응을 제공해 청탁을 성사시켰다. 1993년부터 스물한 차례에 걸쳐 서울 강남의 최고급 유흥주점 ‘지안’에서 검은돈 15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YS의 차남 김현철씨에게 뒤지지 않는다.





김현철씨가 출입했던 지안은 정권 교체 뒤 김홍업씨의 놀이터로 바뀌었다. 술자리에서 ‘회장님’ 또는 ‘왕회장’(김성환씨는 홍업씨를 왕회장이라고 불렀다. 자신이 서울음악방송 회장이었기 때문이다)으로 통한 홍업씨는 ‘지안 궁전’에서도 잘 나가는 고객이었다.



지안은 ‘전통 한정식 지안’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제는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고급 룸살롱이다. 2∼3층 여섯 룸에서 연예인 지망생이나 미스코리아 출전 경험이 있는 종업원 10여 명이 시중을 드는 호화로운 술집이다. 마담인 정 아무개씨가 고객들에게 여종업원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너는 몇년도 출신이냐”고 물어 미스코리아 출전 경험을 은근히 과시한다는 ‘물 좋은 곳’으로 소문 나 있다.



홍업씨는 연예계 인사들과도 가까웠다. 진도희·김윤진·류미오 씨 등을 발굴한 에로 영화 감독 한지일씨(52)는 홍업씨 대학 동기로, 지금도 영부인 이희호 여사를 ‘어머니’라 부르며 따르는데, 홍업씨와의 술자리에도 곧잘 어울렸다. 홍업씨는 1970년대에 ‘김아라’ 라는 이름으로 <맹물로 가는 자동차>라는 영화에 출연했던 무기중개상 린다 김씨(49)와 20대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이로 알려졌다.



홍업씨의 도덕 불감증 때문에 아태재단 직원들은 괴로웠다. 홍업씨는 아태재단에 근무하던 여직원을 갑자기 역삼동 개인 사무실에 근무하도록 조처했다. 사무실 관리비 24만원도 김병호 아태재단 행정실장이 매달 부담해야 했다. 개인 사무실의 여직원 임금과 사무실 관리비가 매달 아태재단 예산에서 빠져나갔다. 홍업씨가 거주하던 홍은동 벽산아파트 11층 베란다에는 10만원권 수표와 현금 다발이 쌓여 있었는데도.



16억짜리 아파트 상납받았다?



홍업씨의 서초동 아파트 구입 과정은 의혹투성이다. 홍업씨는 삼성물산이 분양한 시가 16억원짜리 ‘서초가든 스위트’ 1동 2301호 아파트를 원 소유자인 삼성카드 이경우 사장(56)으로부터 2001년 3월 14억원에 매입했다. 매입 전인 2000년 7월 아파트 입주 시기에는 7억원을 주고 임대차 계약을 맺었지만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14억원을 주고 구매한 아파트를 2년 동안 단 하루도 살지 않고 비워 두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삼성물산이 로비를 위해 제공했는지, 실제 제값을 주고 구매했는지 검찰의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인 신씨 이름으로 1999년 7월 1억5천만원에 분양받은 홍업씨의 역삼동 오피스텔(24평형) 역시 삼성물산이 분양한 건물이어서 의혹이 더욱 짙다.



김홍업씨의 이같은 일탈은 청와대 비서실의 경보 시스템이 정상 작동되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다. 1998년 초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3형제를 일산 자택으로 불러 근신하라고 신신당부했다. 현철씨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말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홍업씨가 현철씨와 그대로 닮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막지 못했다. 홍업씨가 아버지를 대신해 아태재단을 관리하는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홍업씨는 때때로 재야 인사나 민주당의 비판적 지지층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형편이 어려운 인사들에게는 다달이 생활비나 활동비를 송금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홍일씨는 매사를 아버지 입장에서 고민하는 등 공인 의식이 확고했지만, 홍업씨는 호방한 티를 내느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부류들과도 술자리를 즐겨 비서실도 두통을 앓았다”라고 말했다. 비서실이 3형제 중 가장 염려했던 인물이 홍업씨였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아 결국 화를 부르고 만 것이다. 청와대는 지금도 ‘대통령 친인척 관리법안’ 제정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7월19일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 측근의 비리를 막지 못한 보좌진과 사정기관 책임자들은 국민과 대통령, 역사 앞에 석고대죄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동교동계 가신 출신인 한대표의 발언은 홍업씨와 홍업씨를 감싸온 사람들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도 동정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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