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가혹 행위 시비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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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마약 사범 수사 때 빈발…외국인 노동자·청소년도 자주 당해
조천호씨와 박 아무개씨(28) 등 ‘부천 스포츠파’ 조직원들이 개입한 살인 사건 2건은 서울지검 강력부 홍경령 검사(사진)가 4년 전부터 수사해 왔다. 강력부의 한 검사는 “홍검사가 의정부지청 검사로 있을 때부터 끌고온 사건이다. 자백을 받겠다는 의욕이 너무 앞선 탓에 불상사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부천 스포츠파 조직원으로 알려진 조씨는 살인 공모 용의자로 붙잡힌 뒤 자백을 강요당했다. 수사관들은 조씨가 살인 공모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는 데다 함께 붙잡힌 공범이 도주하자 조씨에게 감정 섞인 분풀이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붙잡힌 조씨는 조사에 고분고분하게 응하지 않았고, 조직 폭력배를 전문으로 수사해온 검찰 직원과 복싱으로 단련된 경찰관은 여러 차례 조씨를 구타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조씨가 광범위한 타박상에 의한 속발성 쇼크(2차적 쇼크)와 뇌출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감정서를 11월2일 오후 검찰에 제출했다. 조씨의 양쪽 허벅지와 왼쪽 무릎, 장딴지 등 하체에 타박상 흔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 가혹 행위를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기관이 가혹 행위 시비를 불러온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인권운동사랑방(회장 서준식)이 발행하는 <인권 하루소식>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강원도 원주지검이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던 고등학생 3명은 “경찰이 각목으로 위협했고, 커터 날을 목에 대고 자백을 강요했다”라고 주장했다.
2000년 10월에는 경기도 수원 남부경찰서 소속 경찰이 외국인 살인 용의자로 조사하던 인도네시아인 4명을 구둣발로 짓이기거나 주먹과 발로 때린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해 7월에도 경기도 안산경찰서 경찰관이 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인 중국인 노동자를 조사하면서 고문 수사 논란이 벌어졌다.


가혹 행위나 고문 수사 시비는 특히 불법 체류라는 약점이 있는 외국인이나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주 발생했다. 조직폭력배나 마약사범 등 이른바 ‘질 나쁜’ 용의자들에 대한 수사 때 검·경이 관행적으로 강압 수사를 한다는 것은 수사기관 주변에서는 이미 오래된 비밀이다. 조천호씨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직권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가 오래된 관행인 ‘인권 유린’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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