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라, 옛날에 먹던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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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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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청와대 음식은 싱거워”…직원들은 구내 식당·값싼 한정식집 주로 찾아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1일, 경제계 인사들을 청와대 근처 한 삼계탕집으로 초대한 것이 화제다. 대통령이 청와대 밖 식당으로 손님을 초대한 것도 흔치 않은 일인 데다, 돈 많은 재계 총수들을 ‘모신’장소가 평범한 삼계탕집이었기 때문이다.

효자동에 있는 이 삼계탕집의 이름은 토속촌이다.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종로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인연을 맺은 이 집은 이후 대통령이 1주일에 한 번꼴로 찾을 만큼 단골집이 되었다. 노대통령은 밥 먹을 곳을 찾을 때 새로운 식당을 발굴하기보다 자기 입맛에 맞는 ‘검증’된 곳을 고집하는 편이다. 후보 때도 복은 ○○복집, 일식은 ××, 보신탕은 △△ 식으로 늘 가던 집이 있었다.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토속촌 삼계탕 맛을 그리워하던 노대통령은 청와대 주방장에게 ‘비법’을 배워오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하지만 토속촌을 찾아간 청와대 주방장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토속촌의 주인 박금남씨(여·51)는 “안 가르쳐 주려는 게 아니라 가르쳐줘도 어차피 제맛을 못 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맛 내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아직까지 제맛을 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노대통령이 경제 총수들을 토속촌으로 초대한 데는 겸사겸사 먹고 싶던 삼계탕 맛도 즐기려는 속내가 있었던 셈이다.

재계 인사들과의 ‘삼계탕 회동’에 숨은 사연하지만 대통령은 외식을 자주 할 수 없다. 경호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 일간지가 미리 이 삼계탕집을 공개하는 바람에 청와대 안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결국 장소를 바꾸는 대신 외곽 경비를 강화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한 참모는 “대통령의 음식 관리는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철두철미하다.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할 때에도 단상에 놓는 물과 컵은 청와대에서 가지고 가고, 그 물을 단상으로 운반하는 사람의 신원까지도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오찬·만찬이 대부분 청와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이런 경호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한동안 청와대 요리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청와대 음식이 호텔식으로 다소 싱거웠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는 한 참모는 “아~ 옛날 먹던 된장찌개 맛이 아니야” 하는 대통령의 음식 타박을 듣고 웃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식사 자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 수석·보좌관 들과의 만찬이다. 배석자 없이 정예 멤버 15~16명만이 참석하는 이 자리에서는 국정에 대한 토론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실제로 여러 가지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청와대 조직 개편 같은 문제도 이 자리에서 가닥이 잡혔다. 이 만찬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반주가 바로 복분자주다. 노대통령은 예고 없이 불쑥 직원 식당에 나타나 주변 사람을 놀래키기도 한다. 한번은 청와대 경비를 맡는 101 경비단 식당을 찾아가 단원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대통령이 단원들과 ‘짬밥’을 같이 먹은 것은 1963년 경비단이 창설된 이래 처음이다. 그 며칠 후에는 직원 식당에서 배식을 받던 대통령이 떨어진 콩나물을 집어 먹으며 주방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진도 구내 식당을 애용하는 편이다. 정찬용 보좌관·권오규 정책 수석·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이 대표적인 구내 식당파. 청와대에는 구내 식당이 모두 다섯 군데다. 대통령 관저에 딸린 관저 식당과, 비서동에 있는 신관 식당, 101경비단 식당, 경호실 식당, 그리고 기자들이 사용하는 춘추관 식당이다.
경호실 식당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한끼 식사가 2천원이다. 1식 3찬(밥·국·반찬 세 가지)이 기본으로, 취임 초에 1천5백원이던 것을 최근 유기농 재료로 바꾼다며 5백원을 올렸다. 비서관급 이상만 이용할 수 있는 경호실 식당은 반찬이 더 다양한 대신 5백원 비싼 2천5백원이다. 오후 4시30분에서 5시까지는 간식으로 라면(천원)이 나온다.

관저 식당은 한달 전까지 공짜였다. 대통령과 식사 약속을 한 손님 외에 수행원들이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최근 유료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예기치 않은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5월30일 언론사 보도국장·편집국장을 태우고 온 운전기사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보도국장·편집국장 들이 오찬장에 들어간 후 관저 식당으로 안내된 운전기사 28명은 밥값 2천원씩을 요구받고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후 이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개인 일 보려고 청와대에 갔느냐’ ‘청와대가 5만6천원에 인심을 다 잃었다’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물론 일각에서는 ‘그만큼 국민 세금을 절약하겠다는 뜻 아니냐’는 옹호론이 나오기도 했다.

밖에서 점심 약속을 하는 청와대 비서들은 주로 삼청동과 효자동 근처의 식당을 찾는다. 삼청동수제비집이나 북촌칼국수, 쌈밥집, 솥밥집 등 단품 요리 전문점이 인기다.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유인태 수석은 삼청동수제비집 앞 ‘동성각’이라는 허름한 중국집에서 나오는 모습이 가끔 목격된다. 멀리 광화문까지 나가는 직원들도 있는데, 이들을 위해서는 매일 오전 11시50분 본관 앞에서 셔틀버스가 출발한다.

술자리를 겸하게 되는 저녁 식사는 주로 한정식집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문민정부나 국민의정부 때 이름을 날리던 신문로의 ‘향원’ ‘미당’ ‘수정’ 같은 고급 한정식집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런 고급 한정식집의 한끼 식사는 1인당 최하 6만원. 게다가 음식 나누어주고, 생선 발라주는 도우미들 팁도 1인당 5만~6만원씩 지불해야 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노무현 정권 인사들에게는 벅찬 가격이다.

지난 5월 공무원 윤리 강령이 발효된 후 이들 고급 식당가에도 2만원대 메뉴 바람이 불고 있다. 공무원 한 사람당 한끼 식사값이 3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국민의정부 때부터 청와대에 근무하고 있는 한 인사는 “예전에 잘 가던 한정식집에서 ‘비즈니스 메뉴를 개발했다’ ‘우리도 50세주 판다’는 전화가 가끔 온다. 그래도 왠지 선뜻 가게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여파인지 동교동계 인사들이 단골로 찾던 한 한정식집은 얼마 전 가게를 내놓았다는 소문이다.

대신 노무현 정권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은 인사동의 ‘사천’ ‘동루골’같은 중·저가 한정식집이다. 샐러드·전·낚지볶음·갈비·달걀찜 같은 대여섯 가지 요리에 밥과 국이 주된 메뉴다. 최근 정독도서관 앞 ‘달개비’라는 밥집을 새로 개발했는데, 이해성 수석 등이 애용하고 있다. 밤늦게까지 일이 있는 날은 김밥이나 도시락, 피자 등을 주문해 먹기도 한다. 원래 청와대 안에는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되는데, 경비실까지 배달되면 직원들이 인수해 가는 편법을 쓴다. ‘권력 문화’를 바꾸겠다는 노대통령의 소신보다 청와대 음식 문화의 변화가 훨씬 빨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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