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뇌물도 ‘달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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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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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뇌물’ 하면 사과 상자를 연상하던 때가 있었다. 사과 상자에 현금을 꽉 채워 전달하는 것이 뇌물을 전달하는 은밀한 방법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김영삼 정권 때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런 방법이 널리 쓰였다. 골프 가방이나 쇼핑백도 현금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이런 뇌물 전달 방법이 DJ 정권 들어서 더욱 지능적으로 진화한 사실이 최근 검찰의 나라종금 수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외화가 새로운 뇌물 전달 수단으로 각광받은 것이다. 최근에 드러난 사례만 해도 몇 가지가 있다. 나라종금측으로부터 4천8백여만원을 받은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은 이 가운데 약 1천8백만원을 달러(1만5천 달러)로 받았다. 손영래 전 국세청장도 SK측으로부터 해외출장비 명목으로 1만 달러를 받은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나라종금 안상태 전 사장과 라인원건설 윤일정 사장이 정학모씨에게 준 5천4백만원과 9천4백만원도 달러였다. 한 동교동계 의원은 DJ 정권 초기 한 정부기관장이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권력 실세를 찾아가 엔화가 꽉 차 있는 작은 상자를 놓고 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왜 외화일까. 우선 현금처럼 추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해외 여행 경비로 쉽게 둔갑시킬 수 있어 받는 사람도 뇌물이라는 부담감을 크게 갖지 않는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작은 부피로 큰 액수를 전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편지 봉투 하나에 들어갈 정도의 두께인 100달러짜리 지폐 100장이면 천만원이 넘는 현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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