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부부’ 금실 깨지나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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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추미애 행보 엇갈려…신주류측, 추의원에 미심쩍은 눈길
정동영과 추미애, 두 사람은 지난 대선이 배출한 스타 콤비다. 노무현 후보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고 있을 때 소매를 걷고 나선 두 사람은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영남 표밭을 샅샅이 누볐다. 당시 얻은 별명이 ‘돼지 아빠’와 ‘돼지 엄마’. 노후보는 유세 마지막 날 이 돼지 부부를 ‘차기 주자감’으로 치켜세웠다가 정몽준 대표의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그런 두 사람이 4·24 재·보선과 신당 논의 과정에서 매우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 파병안에 공개 찬성하는 것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정동영 의원은 4·24 재·보선 때 개혁당 유시민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추미애 의원은 개혁당과 연합공천을 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정책으로 승부하면서 민주당의 경쟁력을 높여야지, 집권당 후보를 아예 안 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이유였다. 추의원은 개혁당 유세 현장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두 사람의 노선 차이는 신당 논의 과정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정의원은 여러 신주류 모임을 이끌며 신당 흐름을 주도한 반면, 추의원은 그런 신주류측 신당몰이에 찬물을 끼얹었다. “개혁 신당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신당의 정신과 철학이 있는지 들어보지 못했고, 고민하는 사람도 없다. 신당은 민주당의 자존심과 정체성, 혼을 가지고 가야 한다”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정의원의 ‘큰 정치’ 행보는 예상되었던 순서이다. 다만 당초 정의원측이 설정한 시기보다 다소 빨라졌다. 한 측근은 “올 1년은 앞에 나서지 않고 내실을 다지려고 했는데,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현안들이 자꾸 터져 나와 잠행할 수만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특검법과 이라크 파병안이 쟁점으로 떠오른 후 “정동영은 어디 갔나?” “민감한 사안이어서 어디로 피한 것 아니냐?” 하는 냉소적 반응들이 정의원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후문이다.

이에 반해 추의원의 독자 행보는 상당히 의외다. 추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정동영·조순형·신기남 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 발전적 해체’를 주장했다. 또 지난해 개혁당 후원회 날에는 자녀 셋을 모두 데리고 행사장을 찾을 만큼 개혁당에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추의원이 특검법이 공포되자 구주류보다도 더 세게 노대통령과 신주류를 비판했고, 지구당위원장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당 개혁안에 대해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지역구의 특수성 탓이라는 해석이 많다. 추의원 지역구인 ‘광진 을’은 호남 유권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한 민주당 인사는 “15대 총선 때 정치 초년병인 추의원이 너끈히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호남표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특검법과 호남소외론 등으로 신주류에 대한 호남 민심이 악화하는 상황에서는 추의원도 지역구 민심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관측이다. 한 신주류 강경파 의원의 보좌관은 “12월23일 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자며 몇몇 의원이 이 기회에 아예 지구당위원장 자리를 던져 버리자고 했지만, 추의원 등 수도권 의원 대부분이 부담스러워했다”라고 후일담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다음과 같은 ‘송년회 괴담’이 돌기도 한다. 지난 연말 추의원 지역구 송년회에서 한 지구당 간부가 ‘누구 때문에 국회의원이 됐는데, 민주당을 해체하고 말고 한다는 것이냐’라는 요지로 추의원에게 강력히 항의했는데, 행사에 참석했던 당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동조하자 추의원이 ‘충격과 공포’를 느낀 것 같다는 풍문이다.

동교동계 한 의원은 유준상 전 의원이 맹렬히 밭갈이를 하고 있는 것도 자극제가 되었으리라고 말했다. 전남 출신인 유씨가 이 지역 호남 인맥들을 샅샅이 훑고 있으며, 지역 유지도 다수 포섭한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의원은 이런 관측을 모두 강력하게 부인했다. 5월2일 어렵사리 전화 통화가 된 추의원은 광진 을에 호남 유권자 비율이 높다는 가정부터 잘못되었다고 반박했다. 15대 총선 때와 달리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서 유권자가 대폭 물갈이되었다는 것이다.
‘송년회 괴담’에 대해서도 추의원은 누가 그런 얘기를 하느냐며 화를 벌컥 냈다. “내가 지구당 분위기 때문에 할 일 못할 사람으로 보이는가?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바닥일 때도 지구당 사람들은 ‘외국에나 다녀오시라’며 비켜나 있기를 권했지만, 나는 우리 당 후보인데 그럴 수 없다며 선거운동에 나섰다. 호남 민심이 이러니저러니 하는데, 언론도 이제 가만 있는 호남 민심 좀 건드리지 말아 달라.”

그러면서 추의원은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밝혔다. “(신주류가 주장하는) 탈호남은 호남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어서 동의할 수 없다. ‘탈호남’과 ‘호남만으로는 안되겠다’는 전제는 분명 다르다”라고 강조한 그녀는 “선거를 도왔다 안 도왔다 하는 것만으로 국회의원을 내편, 네편 가르는 것은 위험하다. 원칙과 신의를 지키는 않은 정치인은 국민이 심판하게 해야지 내가 심판하겠다고 나서면 안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왜 ‘발전적 당 해체안’에 서명했느냐는 질문에 추의원은 “민주당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몸체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 후 전개된 양상을 보니 몇 사람 밉다고 초가삼간 태우려는 꼴이어서 무작정 동조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나마 최근 ‘통합 신당’ 얘기도 나오고 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런 추의원의 주장에 대해 신주류 의원들은 대체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천정배 의원은 “우리가 언제 민주당 정신을 포기한다고 했는가. 남북화해협력 정책,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 중도개혁 등은 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추의원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 의원은 “큰 꿈을 꾸고 있는 추의원이 전통적 지지 기반을 잘 끌고 가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달리 해석했다. 아무튼 신당이 ‘정치개혁·국민통합’ 쪽으로 물꼬를 트면서 한동안 소원했던 ‘돼지 부부’도 결국 다시 한 배를 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사이 그들이 보인 엇갈린 행보에 대해 국민은 꼼꼼하게 점수를 매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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