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깨지면 참여정부 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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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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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 갑 재선, 한국 정치 미래 좌우할 수도 민주당, 조직 약하고 호남 출신 반발 거세 고심
"유시민 낙승(樂勝)이요? 절대로 낙관할 수 없습니다. 쉽지 않아요.” 한나라당의 선거용 호언장담이 아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요즘 심심치 않게 나도는 얘기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시민씨(43·개혁국민정당 전 대표)를 경기 고양시 덕양 갑 후보로 연합 공천할 때만 해도 민주당 분위기는 낙관적이었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과 개혁당이 각각 후보를 내면 둘 다 한나라당 이국헌 후보(67)에게 패하지만, 유시민씨를 연합 후보로 내세우면 이후보를 가볍게 따돌린다는 것이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였다.

사실 겉으로 따져볼 때 이 지역에서 유후보가 유리한 점은 많다. 일단 유후보측은 자기네 지지 기반을 친노(親盧) 성향 유권자, 다시 말해 개혁 성향의 젊은 유권자층으로 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 지역 유권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회창씨보다 5% 포인트 이상 많은 표를 몰아주었다.

그런데도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뜻밖에 부정적인 전망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첫째, 무엇보다 이번 선거가 재선거이기 때문이다. 이국헌 후보와 유시민 후보, 두 사람의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다 보면 색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한 사람은 부장검사 출신이요, 다른 한 사람은 운동권 학생 출신이라거나, 한 사람은 호남(전북 순창) 출신 한나라당 후보요, 다른 한 사람은 영남(대구) 출신 민주·개혁당 연합 후보라는 대조적인 이력 때문만이 아니다.

일단 이후보는 소형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에 최소한의 방송 도구를 싣고 다니며 조용히 덕양 일대를 누비고 다닌다. 이후보의 연설은 1분 미만. 그것도 끝날 때면 ‘소음으로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인사말을 빼놓지 않는다. 이에 반해 유후보의 유세 현장은 떠들썩하기 그지없다. MBC <100분 토론> 사회자 시절, 개혁당 창당대회 등 유후보가 살아온 역정을 빠른 호흡으로 편집한 동영상이 LED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동안 운동원과 자원봉사자 10여 명은 그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며, 월드컵 당시의 ‘대∼한민국’ 리듬에 맞추어 “기∼호 3번/ 유∼시민과”를 연호한다.

이는 결국 선거 분위기를 띄우려는 쪽과 아닌 쪽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총선에는 ‘바람’이 통할지 몰라도 재·보선에는 안 통한다. 재·보선은 철저하게 조직으로 승부가 난다”라는 것이 이국헌 후보 선대위 관계자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덕양 갑의 이번 선거 투표율은 25∼30% 선이 될 전망이며, 그렇다면 이후보측은 기존 당원(1만5천 명)만 제대로 동원해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유후보측은 과거형 정치 조직이 아닌 미래형 네트워크 조직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며, 인터넷을 통한 ‘덕양 갑 연고자 찾기 운동’으로 4월12일 현재 4천여 명을 끌어모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 숫자만으로는 당선권에 턱없이 부족할 뿐더러, 이들이 투표장에 반드시 나갈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유후보가 지지 기반이라고 생각하는 신흥 아파트촌 주민들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아 오전 6시30분께면 이미 집을 나선다. 투표장을 들렸다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유후보의 승리를 쉽게 점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인은 호남 표심이다. 이 지역 유권자의 지역별 분포는 어림잡아 호남 28%, 충청 18%, 영남 10%, 토박이 25% 가량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대선까지만 해도 이 28%의 호남 표심은 일치단결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상치가 않다. 일단 특검법·인사 파동 따위로 호남 민심 전반이 출렁이는 데다, 중앙당이 지구당 의사를 무시하고 연합 공천을 밀어붙인 데 대한 지역 호남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최근에는 호남 향우회 간부 중 일부가 한나라당 사람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얘기도 지역에 나돌고 있다(이국헌 후보는 호남 향우회원이다). “옛날 같으면 기권을 했으면 했지 한나라당은 안 찍는다는 것이 호남 정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이 깊어지면서 ‘당이 무슨 필요가 있나. 차라리 우리 지역 사람을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라는 것이 향우회 간부 ㅈ씨의 말이다. 그는 또 “(동교동계를 공격했던) 민주당 신주류가 유후보 지원 유세에 대거 나서면서 호남인들의 반감이 더 커지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동영 천정배 신기남 등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은 이번 선거가 참여정부의 운명과 정치 개혁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유후보에 대한 총력 지원 태세를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지역 유권자들이 이들의 호소대로 ‘유시민 일병 구하기’에 호응해 참여정부에 힘을 실어줄지, 아니면 이국헌 후보의 호소대로 ‘위태롭고 불안한’ 현정권에 견제구를 먹일지, 결과는 1주일 뒤 밝혀진다.

고양·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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