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류, 한판 붙자” 몸 푸는 동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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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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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반격 위해 한달 전부터 태스크포스 가동 핵심 인사들 겨냥해 ‘총선 맞대결’도 별러
침묵하던 동교동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주류의 공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천정배·신기남 의원은 물론 안희정·염동연·이강철 등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까지 대놓고 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교동계는 신주류 인사들이 민주당을 탈당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은밀한 대비 작업에 들어갔다. 당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선수인 동교동 인사들이 사람을 모으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에서 사무부총장을 지낸 박양수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가능성은 20% 정도지만 (신주류가) 뛰쳐나간다면 대체할 만한 경쟁력 있는 사람이 많다. 예상을 하고 있고, 대처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조재환 의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미 이런 상황에 대비해 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앞으로는 신주류의 공격에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반격하겠다는 것이다.

한 달 전쯤 만들어진 태스크포스의 면면은 정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동교동계 국회의원·당직자가 주축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그동안 1주일에 한두 번씩 집중적으로 회의를 하는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왔다. 지난 3월21일 민주당 실·국장 10여 명이 ‘후안무치’ 등의 용어를 써가며 동교동계를 비판한 안희정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비난하는 성명을 낸 것도 이 팀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조의원은 “앞으로 사람을 모아 우리에게 도전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확실하게 각을 세워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지역 별로 조직책을 맡을 만한 사람을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이들 두 사람 외에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는 동교동계 인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 전문가인 박·조 두 의원의 움직임은 어떤 식이든 동교동계 전체의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이들이 동교동계 전반에 깔려 있는 신주류 인사들에 대한 불만을 무기 삼아 전위대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행여 정면으로 목소리를 냈다가 반개혁 세력의 대표 격으로 낙인 찍힐까 봐 적극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사실 동교동계 인사들의 불만은 목구멍에까지 차 있다. 김옥두 의원은 “일부 인사들이 대꾸할 가치도 없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말들을 하고 있다. 지금은 지켜보고 있지만 때가 되면 할 말을 할 것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이들은 현재 삼삼오오 동교동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울분을 토로하고 있다. 박의원도 얼마 전 한광옥 최고위원과 함께 김대중씨를 찾았다.

동교동계의 격앙된 감정은 정치권의 흐름을 보여주는 한 지표인 증권가 정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최근 두 가지 사례가 오르내렸다. 하나는 ‘동교동계, 신주류 비리 조사설’이라는 제목인데, 동교동 강경파 의원들이 신주류 인사들의 비리 의혹을 폭로해 이들의 도덕성에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이 한 호텔에 자주 모여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또 하나는 ‘민주당 신주류의 약점’이라는 제목. 관련된 신주류 인사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이들이 대선 전에 한 이익 단체로부터 상당한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신주류 인사가 재벌 건설업체로부터 아파트를 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물론 동교동계 인사들도 곤욕을 치른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한화갑 의원은 최근까지도 ‘최태원 회장 관련설’에 시달렸다. 그와 최회장이 한 빌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마치 무슨 큰 의혹이 있는 것처럼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의원은 이 빌라에 3억원 근저당 설정을 하고 전세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의 측근은 소문의 진원지를 추적해 본 결과 한 신주류 인사가 이런 말을 퍼뜨리고 다녔다고 말했다.

신주류 인사들에게 돈을 주었다는 이익 단체는 있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되는 등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도는 이런 소문은 상당 부분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하나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이처럼 적절한 소재도 없다. 신주류와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구주류가 물밑에서 벌이고 있는 치열한 정보전과 흠집 내기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들인 것이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신주류 인사들과 달리 호남인과 호남 정치인, 특히 동교동계를 일체화하는 경향이 있다. 박양수 의원은 서울의 47개 지역구 가운데 호남 인구의 비율이 24.6%를 넘는 지역이 무려 22곳이나 된다며 신주류 인사들이 민주당을 탈당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설 땅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판단 아래 아직까지 동교동계 인사 다수는 과연 신주류 인사들이 당을 깨고 나가 신당을 창당하는 ‘모험’을 할 것인가에 의문을 갖고 있다. 수백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수도권 선거의 특성상 민주당이 쪼개진다면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데 그런 일을 왜 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내년 총선에서 동교동계 인사들이 입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위기 의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재승 윤철상 조재환 박양수 등 전국구 의원이 많은 데다가 지역구 의원들도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듯 김홍일 의원은 1주일에 3일은 지역구에서 살고 있고, 거의 지역구에 내려가지 않던 한화갑 의원도 요즘은 1주일에 한 번꼴로 내려가 부지런히 지역구를 챙기고 있다.

또 일부 동교동계 전국구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신주류 핵심 인사들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환 의원은 신주류 핵심인 신기남 의원(서울 강서 갑)에게, 윤철상 의원은 신주류 좌장인 김원기 고문(전북 정읍)에게 도전한다는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박석무 전 의원(전남 무안·신안), 신중식 전 국정홍보처장(전남 고흥), 장세환 전 전라북도 정무부지사(전북 고창) 등 신주류 호남 인사들도 한화갑·박상천·정균환 의원 등 구주류 거물들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나왔다. 신주류의 공격과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구주류의 반격이 내년 총선을 앞둔 ‘지역구 쟁탈전’으로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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