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앞둔 ‘김대중 도서관’ 미리 가보니...
  • 이숙이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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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종이 편지와 오래된 책들… DJ 일생이 ‘빼곡’
오는 11월3일 ‘김대중 도서관’이 정식 개관한다. 올해 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로 지은 아태재단 건물과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각종 자료를 연세대학교에 기증하기로 하면서 한국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개관식을 열흘 앞두고 찾은 김대중도서관은 마무리 단장이 한창이었다.

김 전대통령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저 옆에 있는 김대중도서관은 지상 5층, 지하 3층 규모. 지상 1층과 2층에 각종 서적과 문서, 비디오·오디오 자료를 전시하고, 3층에는 연세대 통일연구원이, 4층에는 객원 연구원들을 위한 연구실과 사무국이 입주해 있다. 5층은 김대중씨 전용 공간인데, 그는 앞으로 연구실에 자주 나와 책을 읽고, 집필을 하고, 젊은이들과 대화도 나눌 예정이다.

신동천 통일연구원장 겸 도서관장(경제학 교수)은 미국의 여러 대통령 연구소 가운데서도 후버연구소가 김대중도서관의 모델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전직 대통령의 자료를 모아놓은 곳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연구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본격적인 통일 전문 연구기관이라는 것이다.

통일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를 위해 석좌교수와 객원 연구원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통일 문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연세대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가 강사로 나서는 통일학 협동 과정을 개설해 석·박사를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석사 과정은 내년 3월부터, 박사 과정은 내후년부터 시작되는데, 박선숙 전 청와대 공보수석과 이 훈 전 국정상황실장 등이 석사 과정에 등록할 것으로 알려졌다.
1층 열람실에는 주로 책이 진열되어 있다. 지금은 김씨가 기증한 1만6천여 권이 대부분이지만, 조만간 통일과 관련된 국내외 전문 서적을 더 들여놓을 계획이다. 신동천 관장은 “김 전대통령이 내놓은 책 가운데서 그 안에 대통령의 메모가 담긴 것은 사학자들로부터 사료적인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일단 따로 빼놓았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소장 문정인 정치학과 교수)가 2층에 곧 입주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현재 서가에 꽂혀 있는 책에서도 주인의 흔적은 여기저기서 묻어났다. 무심코 집어든 이태영 박사의 자서전 <나의 만남 나의 인생> 첫 장에는 ‘김대중 이희호 선생님 내외분께, 1991년 11월 이태영 드림’이라는 헌사가 쓰여 있었다.

서가 한켠에는 채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가지 액자가 쌓여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1971년 신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의 선거 포스터. 30대 중반인 기자에게는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참겠다 갈아치자’는 표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2층에는 1970년대부터 모아 놓은 사진·연설 테이프·비디오 들이 정리되어 있다. 1973년 일본에서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직후에 한 기자회견이 녹음된 테이프도 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찍은 비디오 테이프도 수십 개나 된다.

2층 열람실 구석에는 자그만 방이 2개 있다. 하나는 컴퓨터를 통해 자료를 검색하는 방이고, 다른 하나는 <로동신문>처럼 외부로 가지고 나갈 수 없는 비인가 자료를 볼 수 있는 방이다.

그 밖에도 도서관 곳곳에는 갖가지 사연이 담긴 자료가 수두룩하다. 1978년 서울대학 병원에 감금되어 있던 김대중씨는 유일하게 면회가 허락된 이희호 여사하고도 대화를 나누기 어렵자 종이에다 못을 꾹꾹 눌러서 편지를 썼다. 이 ‘못으로 쓴 편지’는 대통령이 되어 남북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선언문에 서명할 때 사용한 펜과 함께 도서관에 전시된다. 껌 포장지 뒤에 깨알만하게 쓴 편지, 이희호 여사가 받아쓴 1992년 정계 은퇴 성명서도 눈에 띈다.
국민의정부 시절 자료는 거의 없어

‘만델라 시계’ ‘아키노 타자기’ 같이 야당 지도자 시절, 국외의 지인들로부터 받은 선물도 전시품에 들어 있다. 김 전대통령은 그 중에서도 ‘아키노 타자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말이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함께 망명 생활을 하던 아키노 씨가 김대중씨보다 먼저 귀국하면서 자기가 쓰던 타자기를 선물로 주었다. 그런데 귀국 직후 아키노 씨가 피살되는 바람에 타자기가 유품이 되고 만 것이다.

전시 자료 중에는 최근에 새로 찾아낸 것도 적지 않다. 1970년대 초에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김대중씨에게 보낸 편지는 아예 개봉도 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당시 정권의 견제를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김씨의 손에 미처 전달되지 못한 채 수많은 편지더미 속에 묻혀 있던 것이다. 카터 미국 대통령이 1985년 미국 망명을 마치고 귀국하는 김대중씨에게 보낸 격려 엽서도 닳아빠진 여행용 가방 안에 파묻혀 있다가 이번에 빛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국민의정부 시절 자료는 대부분 정부기록보존소로 보내 많지 않은 편이다. 국민의정부 때 국가 기록물 관리를 철저히 한다면서 관련 법을 강화했는데, 그 법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격이 된 셈이다. 김한정 비서관은 “미국의 경우 전직 대통령 기념관에 재임 시절의 기록들이 분산되어 보관된다”라면서, 우리도 기밀 자료가 아닌 한 해당 대통령 연구소가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DJ에 관해서라면 ‘김대중 도서관’에 가면 다 있다는 얘기를 듣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임중 자료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김 전 대통령의 친필 메모다. 원래 꼼꼼하기로 유명한 그는 재임 중에 그날의 점검 사항, 국정 단상, 회의 요지 등을 거의 매일 기록했는데, 이것이 대학 노트 26권 분량으로 남아 있다. 이를테면, 2000년 5월10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여 앞둔 각계 원로와의 대화 모임에서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가 메모되어 있고, 그 뒷장에는 참석자들의 발언이 한두 줄씩 요약되어 있다. 군데군데 신문이나 보고서를 스크랩한 통계 자료도 붙어 있어, 노트만 보아도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대학 노트 26권 분량 친필 메모는 당분간 미공개

하지만 이 자료는 당분간 금고 신세를 질 모양이다. 아직은 공개하기 민감한 것들이어서 일단 회고록 집필에 참고한 뒤 공개는 천천히 검토하겠다는 것이 김대중도서관의 판단이다. 개각 구상이나 정보 보고 등을 따로 적은 개인 수첩도 여러 권 있지만, 이는 더더욱 공개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김대중도서관이 정식 개관함에 따라 세간의 관심은 이제 김 전대통령이 얼마나 활동 반경을 넓힐 것인가로 쏠리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 그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관측과 함께, 정치권의 ‘김대중 모시기’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대표연설에서 ‘햇볕정책 계승’을 강조하자, 민주당이 발끈하며 ‘햇볕정책은 우리가 계승합니다’라고 쓴 플래카드까지 내걸 정도로 양당의 신경전은 점입가경이다. 이에 대해 김 전대통령측은 ‘부질없다’는 반응이다. 김씨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오해를 경계한 듯 김씨측은 11월3일 개관식 행사에도 정치인은 최대한 배제키로 했다. 김씨측이 4백명, 연세대가 5백명 등 모두 9백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정치권에서는 전·현직 대통령과 4당 대표,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만이 초청 대상에 포함되었다.

이 날 행사에는 주한 외교사절단과 레이니· 그레그 전 미국대사가 참석할 예정이고,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 등이 이미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 전 대통령이 앞으로 자신의 행보를 국내 정치보다 ‘한반도+α’ 에 맞추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날 동교동은 ‘초대받지 못한 정치인’들로 북적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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