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사보타지 공화국’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7.03.2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失政에 레임 덕 겹쳐 국정 운영·경제 엉망 …가라앉은 공직 사회 분위기 띄울 비전 절실
‘개혁’과 ‘사정’을 기치로 건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도(지지율)는 집권 초기 90%대에 이를 만큼 높았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목으로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책임을 물어 전직 대통령을 구속할 때까지만 해도 높은 수준이던 인기도는, 노동법 날치기 통과와 한보철강 부정 대출 사건을 거치면서 순식간에 10% 밑으로 떨어졌다.

한 정치인은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할 무렵의 인기도(지지율)도 15%대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현재 인기도는 너무 낮은 것 같다”라며 걱정했다.

김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은 아직은 면책 특권이 보장된 국회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차남 현철씨에 대해서는 꺼릴 것이 없는 듯 모든 언론이 융단 폭격을 퍼붓고 있다.

레임 덕은 대통령 임기 말에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레임 덕을 넘어 국정 운영 자체가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다. 이미 정부 부처의 고위 관료들은 과거에 한 말과 지금 하는 말이 완전히 달라서 영(令)이 서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고 있다.

대통령에게 절대 충성해야 하는 청와대 비서실과 안기부·군·검찰의 고위 간부들마저도 사석에서 국가 조직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사보타지 공화국이라는 데 동의한다. 왜 영이 서지 않는 사보타지 공화국이 되었는가. 이를 돌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헌법에 규정되어 있듯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가의 독립과 영토를 보존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남북한 문제를 중추로 한 안보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 4년간 안보 분야에서 투영된 문민 정부 정책을 추적해 보면 왜 사보타지 상황이 연출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문민 정부 출범 초기 북한은 ‘서울 불바다’ 어쩌고 하며 한국을 볼모 삼아 미국에 핵 위협 외교를 펼쳤다.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이념보다는 민족이 우선이라는 차원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등 유화 전략을 구사했다.

몇몇 북한 전문가가 이념보다 민족이 우선이라는 데 대해 소극적으로 저항했으나, 다수 국민은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이 될 뻔한 남북 정상회담은 그러나 개최 보름여를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함으로써 무산되고 말았다.

남북 정상회담 문제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정치 지도자들은 통일의 물꼬를 튼 사람으로 기록되기 위해 자꾸 서두르는데, 통일이 깜짝쇼를 통해 쉽게 이뤄지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들은 통일이란 독일처럼 경제 교류와 상호 군비 축소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팽팽했던 균형이 무너지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정치 지도자들끼리의 협상에 의한 통일은 예멘처럼 다시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95년 6월 북한에 대한 쌀 지원도 유화 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청진항에 입항한 씨아펙스호에 강제로 인공기를 게양했다. 그 직후 쌀 지원을 서두른 데 대해 비난이 쏟아지고 여당은 6·27 지방 선거에서 참패했다. 북한 전문가들도 외면한 대북 정책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으로서는 씨아펙스호가 태극기를 게양하고 입항하는 것은 절대로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내부 단속을 위해서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 북한은 자기 사정에 따라 남북 문제에 대처하지, 한국내 여론을 의식해 행동하지는 않는다. 식량을 지원하면 단기간에 북한이 내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믿은 것은 너무 순진했다”라고 말했다.

쌀 15만t 지원 이후 문민 정부의 대북 정책은 강경 노선으로 변해갔다. 15대 총선을 앞둔 96년 4월 여당은 ‘장풍’이라고 불린 장학로 부정 사건으로 구석에 몰려 있었다. 그런데 총선을 불과 엿새 앞두고 북한이 중대 규모 병력을 판문점 내로 진입시켜 고의로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이른바 ‘북풍’ 사건을 일으켰다. 북풍이 장풍을 눌렀는지 총선 결과 여당은 예상을 깨고 과반수에 육박한 1백39석을 획득하는 대약진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이 문민 정부를 돕고 싶어 북풍을 일으켰겠는가. 북한은 식량 부족 등으로 인한 내부 불만을 무마해야 하는 사정 때문에 도발한 것이다. 미제와 남조선이 도발을 획책했다고 거짓 선전함으로써 위기감을 조성해 내부 불만이 나오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여당을 도왔다. 물론 지속적으로 유화 정책을 펼친다면 북한도 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김정일이 정권 유지에 자신있다고 판단할 때만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96년 8월 연세대에서 일어난 한총련 사건과 그 해 9월의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을 거치며 김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해졌다. 한 북한 전문가는 김대통령의 대북관이 재임 4년 동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급선회했다며, 이를 간파한 북한이 김대통령에게는 남북 관계에서 업적을 쌓을 기회를 주지 않기로 내부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의 북한 전문가들도 김대통령 재임 중에는 현상 유지만 하겠다는 일종의 태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들, 땅에 몸 딱 붙인 ‘身土不二’ 상태

“강릉 잠수함 사건 때 안기부는 북한 잠수함이 대통령을 포함한 요인을 테러하기 위한 사전 정찰 목적으로 침투한 것 같다는 보고서를 대통령께 올렸다. 그 직후 북한의 박임수 대좌가 ‘백배 천배로 보복하겠다’고 하자 김대통령은 ‘전면전 불사’로 받아치는 등 초강경으로 나왔다. 이로써 김대통령이 보수·현실 노선으로 확고히 돌아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레임 덕이 예상되는 올 1년 동안은 남북한 문제에 관해 특별한 이슈를 만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재임중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는 말은 칼국수 점심과 더불어 김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상징하는 말로 회자되었다. 잘 나가던 개혁·사정은 그러나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동시에 급격히 속도가 떨어졌다.

노씨 비자금 사건은 문민 정부 최대의 개혁으로 평가되는 금융실명제 때문에 터져 나왔다. 신한은행의 차명 계좌에 숨어 있던 노씨의 돈에 금융종합과세가 7억여 원 부과될 것으로 예상되자, 이름을 빌려준 하종욱씨(우일종합물류 대표)가 고민하다 박계동 의원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터져 나왔다.

노씨 비자금 사건은 곧 김대통령의 대선 자금 의혹으로 연결되면서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이 위기를 김대통령은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전두환씨를 구속하는 등 국면을 전환해 빠져나왔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96년 연두 회견에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았으나 개인적으로 유용한 적이 없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라고 털어놓아야만 했다. 이에 대해 전두환씨의 비서인 민정기씨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92년 말까지 김대통령이 돈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도 그 때까지 받은 것에 대해서는 벌을 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니냐”라고 비난했다.

‘언어의 유희’에 가까운 비난이 많아질 때쯤 장학로 사건과 한보 사건이 터졌다. 실세들이 문민 정부 출범 후에도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금액 단위로만 본다면 문민 정부 초기에 터진 ‘동화은행 사건’ ‘슬롯머신 사건’ ‘김종휘씨 율곡 비리 사건’의 피고들이 받은 액수보다 결코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에 대한 자금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대통령을 제외한 실세들이 전부 부패에 연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 공무원들이 일을 벌이려 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대권 후보 조기 가시화도 활력 찾는 한 방법”

김대통령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했던 한 대학 교수는 “개혁 초기에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유행하더니, 요즘은 몸을 땅에 딱 붙여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라며 공무원들의 사보타지를 질타하고, 문민 정부의 실정(失政)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문민 정부가 타인에 대한 사정에서 자신에 대한 방어로 급속히 U턴하게 됨으로써 눈치 빠른 공무원들이 각개 약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제 상황마저 최악인 지금 별다른 타개책이 있을 수 없다. 청와대 비서실의 한 인사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그러나 임기 말인 만큼 정부가 이를 주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 대학 교수는 대권 후보를 빨리 드러내는 것이 국민적 에너지를 일으키는 방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민 정부 최대의 실책은 개혁 방향이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데 있다. 이후 잦은 개각으로 개혁이 일관성을 잃었고 도덕성마저 타락해 작금의 위기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현행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예비 대권 후보를 대상으로 각 전문 단체가 토론회를 여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재향군인회가 대권 예비 후보를 불러 안보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민주노총이 노동 문제를, 전경련이 재벌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분야별 토론을 통해 예비 후보들의 생각이 드러나면 토론을 연 단체가 예비 후보들에 대한 평점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이들을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검증 작업이 활성화하면 예비 후보들은 거꾸로 자신의 정책을 수정해 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검증 작업을 통해 대권 예비 후보들이 비전을 제시한다면 국민이 자극 받아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민회의 소속인 한 국회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김영삼 대통령이 재출마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내각제는 남북 문제를 고려할 때 시기 상조라며, 임기 말의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임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비서실의 한 직원은, 각 부처 파견 공무원들로 구성된 비서실 체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지금 비서실은 또 하나의 내각이다. 그러나 실무는 하지 않고 각 부처에 지시만 하는 옥상옥이다. 이러한 비서실이라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낫다. 또 비서실이 각 부처의 파견 공무원들로 구성되는 현행 비서실 체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파견 공무원 체제가 유지되는 한 임기 말의 권력 누수를 막을 방법이 없다. 비서실 직원은 대통령 취임과 함께 들어오고 퇴임과 함께 물러가는 미국식 체제가 되어야 한다.”

문민 정부는 이제야말로 인기가 아니라 국익을 의식하고 가라앉은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해야 한다. 이것이 문민 정부를 더 이상 구석에 몰아넣지 않는 방법이라고 다수 전문가는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