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연구소, 대선 고지 향해 `‘시동’
  • 崔 進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한국당 여의도연구소, 정치력 강화하며 일찌감치 선거 진용 구축…대선 기획팀으로 활약할 듯
집권 여당의 외곽 지원 부대인 여의도연구소(소장 윤영오)가 재무장에 나섰다.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핵심 요직에 선거 베테랑들을 배치하는가 하면, 연구소의 역점 과제도 정치성 짙은 현안들로 바꾸고 있다. 전임 이영희 소장이 허주 퇴진 발언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정책 뱅크 차원에 머무르던 여의도연구소가 6개월 만에 정권 재창출이라는 특명을 받고 다시 정치 뱅크로 되돌아온 것이다.

여의도연구소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며 출범한 날은 김윤환 대표 체제가 등장하기 하루 전인 95년 2월6일이었다. 하루 사이를 두고 태동한 여의도연구소와 허주 진영은 줄곧 앙숙이었다. 매번 먼저 옆구리를 찌른 쪽은 연구소였다. 6·3세대로 김덕룡 정무장관 등 민주계 실세들과 가까워 개혁 강경파로 통했던 이영희 전 소장은 강연과 연구소 책자, 보고서 등을 통해 수시로 민정계의 숨통을 조였다. 그런가 하면, 95년 7월에는 YS의 통치 행태를 정면으로 비난한 보고서를 작성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결국 이소장은 허주 퇴진론을 주장하다가 물러났다. 두 사람의 모진 인연이 끝내 악연으로 끝난 셈이다.

이후 연구소는 물밑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위상 저하는 물론 그 역할이 사실상 정책 개발로 제한되었다. 심심찮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던 연구소는 정치인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지난 2월 취임한 윤소장은 자세를 낮추며 연구소의 정치 색깔을 지워 나갔다. 그가 취임 일성에서 뉴스 메이커가 아닌 정책 메이커가 되겠다고 다짐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연구소 인원·규모, 청와대 비서실 수준

그런 우여곡절을 겪은 여의도연구소가 대선을 1년 6개월여 앞두고 재무장에 나선 것이다. 신한국당은 5월15일 당 기획전문가 6명을 연구소 기획실에 고스란히 옮겨 배치했다. 중추 조직으로 정치성 짙은 기획실을 당의 실전 병력이 장악하고, 기획실장 자리에는 안재홍 전 기획조정국장이 앉았다. 당에서 잔뼈가 굵은 안실장은 이번 15대 총선을 치르면서 뛰어난 분석력과 기획력을 인정 받은 선거 베테랑이다. 전임 이영희 체제에서 소장이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섰다면, 현 윤영오 체제에서는 안실장이 총대를 멜 것으로 보인다. 당의 외곽 기구이던 연구소가 사실상 직할 기구로 바뀐 셈이다.

여의도연구소는 구성원 수준과 규모 면에서 청와대 비서실에 손색이 없을 정도다. 5백여 평이나 되는 사무실 공간은 둘째 치고라도 연구원 33명 가운데 13명이 박사 학위 소지자다. 당 사무총장이 당연직 이사장이고, 연구소 산하 3개 정책팀은 당의 제1, 2, 3 정책조정실과 대응 체제를 갖추고 있어 당과는 언제든지 직통으로 통한다. 대변인이 발표하는 논평이나 성명은 팩시밀리를 통해 곧바로 이곳으로 보내져 당의 움직임을 한눈에 알수 있다.

연구소 관계자들은 연구소가 정권 재창출팀으로 비치는 것을 한사코 꺼린다. 그러나 청와대의 일부 관계자는 여의도연구소가 과거 정책 지원이나 정세 분석 기능에서 벗어나 대선 기획팀 역할을 수행하리라는 점을 인정했다.

김대통령 직계임을 자처하는 윤소장은 정치 인식이 강한 인물이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국회 제도개선위원장을 지내며 현장 정치 경험을 쌓은 윤소장은, 92년 대선 때 당 정책 세미나에서 신한국병의 원인과 처방을 명쾌하게 제시해 김대통령의 눈에 띄었다. 그의 생각과 노선을 통해 연구소의 활동 방향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윤소장이 제시하는 차기 대통령의 자격은 개혁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과 남북문제를 해결할 지도력이다. 그는 다음 번까지는 개혁적 인물이 정권을 잡아 개혁 작업을 완결해야 하며, 개혁의 큰 틀이 잡힌 후에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5년 단임제론자인 그는 정가 일각에서 가끔 돌출하는 중임제 개헌설에 대해,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모델이라는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임기 2년만 지나면 다음 선거를 걱정하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일축했다.

윤소장은 당분간 대권 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보고서를 몇 차례 올렸다. 최근 연구소가 역점을 두고 있는 당면 과제 가운데 하나는 지구당 개편이다. 통합 선거법에 적합한 지구당 체제를 갖추기 위해 방만한 지구당 조직을 잘라낸다는 구상이다. 한산하던 연구소에는 요즘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다.

집권당의 공개적인 싱크 탱크가 다음 정권 창출에 어떤 역할을 해낼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