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입당파, 실속 못챙긴다
  • 崔 進 기자 ()
  • 승인 1996.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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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국당 입당파 “지역 숙원 사업 확답 얻었다”… 여권 핵심 “순진한 사람들”
물불 가리지 않고 밀어붙인 여권의 과반수 넘기기가 마침내 성공했다. 무소속 임진출 당선자가 5월20일 여당행을 택함으로써 신한국당은 고대하던 과반수 의석 1백50석을 넘겼다. 이제 여당은 입당을 못해 안달이 난 무소속 김용갑 당선자를 멀찌감치서 지켜볼 만큼 여유마저 생겼다.

여권 수뇌부는 지금의 여유를 찾기까지 애를 많이 먹었다. 영입 대상자의 성향과 주변 정황에 따라 ‘채찍과 당근 전략’을 구사하랴, 사적·공적 채널을 비밀리에 풀가동하랴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야권은 여당이 공권력을 동원해 당선자들을 낚아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사자가 양심 선언을 하지 않는 한 사실을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당선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청와대와 여당 핵심부가 ‘지역 숙원 사업 해결’이라는 달콤한 당근을 미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희망사항 부풀린 명분 과시용이다”

임진출 당선자(경북 경주 을)가 밝힌 입당 과정을 그대로 옮겨본다. 당선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여당 사람들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추파가 왔다. 그런 차에 제자리(여당)로 돌아가 못다 한 지역 사업을 마무리해 달라는 지역 유지들의 건의문도 들어왔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인 5월13일 강삼재 총장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다. 지역 현안 사업을 충분히 들어주겠으니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었다. 공천에 탈락시킨 것은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사과성 발언도 보태졌다. 이때부터 임당선자는 후원회를 동원해 입당 여론 수렴 작업에 들어갔고, 그후 1주일 만에 여의도 신한국당에 나타나 입당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기에서 임당선자를 포섭하기 위해 여권의 여러 채널이 동원되고, 여권 고위층이 먼저 지역 사업이라는 미끼를 던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른 입당자들에게서도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수순이다.

여권은 이번 당선자 영입 작전에 공적 사적 인맥을 총동원했다. 원유철 당선자(경기 평택 갑)를 끌어들이는 데는 청와대 이원종 정무수석과 강삼재 사무총장에 이인제 경기지사까지 가세했다. 자치단체장까지 나서 집권당의 영입 작전을 거든 것은 지역 개발에 대한 확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음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김일윤 당선자(경북 경주 갑)의 입당은 김광일 청와대 비서실장이 발벗고 나서 개가를 올린 경우다. 대통령을 24시간 보좌하기에도 빠듯한 비서실장이 직접 나선 모습을 보고 김당선자가 감복했을 법도 하다. 이규택 당선자(경기 여주)의 입당 막후에 민주계 실세인 김덕룡 정무장관이 있었다는 얘기는 정가에 파다하다.

이들 영입 작전 지휘관들이 입당자들에게 가장 자신있게 내민 것 역시 지역 개발이라는 당근이었다. 입당자들 또한 한결같이 지역개발론을 입당 명분으로 내걸었다. 지역 개발을 둘러싼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고 지역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 여당행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청와대·당·정부의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자신들이 제시한 지역 공약을 최대한 반영해 주겠다는 확답을 얻어냈다고 자랑스럽게 공개한다.

여권 고위층으로부터 가장 풍성한 선물을 받고 입당한 사람은 원유철 당선자다. 그가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로 약속 받았다는 선물은, 수원-천안간 전철 복복선화, 관광특구 지정, 송탄 인터체인지 건설, 송탄 출장소 승격 등 4개 사업이다. 원당선자는 “책임 있는 당정 고위층으로부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언약이나 다짐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줄 어떤 문건도, 그런 약속을 했다고 시인하는 책임질 만한 고위층도 없다. 건설교통부의 한 예산 담당 고위 관계자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할 정부가 어떻게 그런 약속을 섣불리 할 수 있겠는가. 입당자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정부의 또 다른 고위 인사는 원씨를 가리켜 ‘순진한 사람’이라며 웃었다.

입당자 가운데는 순진하다 못해 철없는 사람도 많다. 백승홍 당선자(대구 서 갑)는 위천공단 건설 문제를 의논한다며 청와대에 들어가 이원종 정무수석을 만나고 난 뒤 5월10일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지역에서 변절자라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백씨는 침체에 빠진 대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여당행을 택했다며, 청와대와 건설교통부장관으로부터 지역 현안들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대답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김일윤 당선자는 당과 청와대로부터 경부 고속전철이 반드시 경주를 통과하도록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입당 사유가 석연찮은 최욱철 당선자(강원 강릉 을)는 “지역 발전을 통해 국가에 기여할 때 존재 의미가 있다”라며 거창한 국가발전론까지 내세웠다.

그러나 여권 핵심부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영입 작전을 총지휘한 청와대 관계자들조차 입당자들의 순진함을 비웃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부 OK를 받은 사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한번 노력해 보자는 얘기가 오간 정도다. 그 많은 지역 사업을 어떻게 다 들어주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청와대 인사는 자기네들이 만들어낸 얘기에 불과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당의 정책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득 정책위 의장의 말은 더욱 확실하다. “입당자들과 아무 것도 약속한 바 없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어떤 바보가 그런 엄청난 국가적 사업들을 함부로 약속하겠는가. 설사 약속했더라도 실행이 가능하겠는가.” 정부의 관련 부처 관계자들의 대답도 거의 그런 식이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사를 청와대나 정부 고위층의 지시 한마디로 착수하거나 앞당겨 완공시키리만큼 시대 상황이 녹록치 않을 뿐더러, 지역 현안의 규모 또한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여권, 6~7명 대상 추가 입당 교섭 추진

그도 그럴 것이 입당자들이 제시한 지역 사업들은 고위층 인사의 말 한마디로 간단히 해결될 사안들이 아니다. 경부 고속전철 경주 통과 문제만 해도 사회 저명인사 77인이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선언문까지 채택하며 전철의 도심 통과를 격렬히 반대하고 있고, 문화체육부까지 반대론에 가세한 상황이다. 건교부는 5월23일 경부 고속전철 건설 자체가 상당 기간 연기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수원-천안간 복복선화도 이 지역 숙원 사업이지만, 누구도 손을 못댄 큰 사업이다. ASEM 국제회의를 경주에 유치하는 사업만 해도 5천억원이 소요되는 엄청난 사업이다. 정부의 고위 인사는 “예산 5천억원이 누구 이름인가. 이에 대해 입당자와 사전에 논의한 바도 없고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다면 여권 핵심부와 영입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했거나 과장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여권 핵심부가 과반수 넘기기에 급급해 영입자들에게 지역 사업을 지원하겠다고 거짓말을 했거나, 입당자들이 조기 입당을 위해 여권이 약속하지도 않은 지역 사업을 약속해 주었다고 허위로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권 고위 인사들은 후자 쪽이라고 주장한다. 여당에 들어가고 싶어도 적절한 명분을 찾지 못한 입당자들이 주민들에게 잘 먹히는 지역개발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도 저도 아니면, 청와대의 최고위층이 아무도 모르게 뒷거래를 약속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관계자의 말이나 관련 부처의 입장, 정부의 예산 규모 등을 감안해 볼 때 사실상 희박하다. 입당자들이 지역 개발론을 맨 먼저 들먹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가 너무나 크고, 이것이 곧 표의 향방과 직결된다는 선거 현실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총선 출마자 대다수가 인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권은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입 작전을 계속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여권 수뇌부는 지금까지와 똑같은 방법으로 당선자들을 채찍으로 꿰오거나 당근으로 유인할 것이다. 그러면 지역 개발을 들먹이며 못이기는 체 입당할 당선자가 분명히 나올 것이다. 그 후보자로는 민주당 이규정(경남 울산 남을) 권기술(울산 울주)과 무소속 이재창(경기 파주) 유종수(강원 춘천 을) 당선자를 비롯한 6~7명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역민들의 반발이 그치지 않고 있는 백승홍 당선자와 또 다른 당선자의 말은 다시 한번 음미해 볼 만하다. “이유 여하를 떠나 당초 약속을 어기고 여당행을 택한 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다음 선거에서 겸허한 심판을 받겠다.” “지역 사업만 잘 이행해 나가면 다음 선거는 문제 없다고 본다. 만사 제치고 지역 현안에 매달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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