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과반수 확보 위해 물불 안가려
  • 崔 進 기자 ()
  • 승인 199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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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수 확보 위해 물불 안가려…1·2차 선거 사정도 여대야소용 의혹
“약한 자가 보호받고 강한 자가 정의를 실천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그 임무를 국가에 위임하셨고, 그 책임은 대통령인 제가 맡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지난 4월30일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한 말이다. 김대통령은 정치권의 ‘강한 자’를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다수당으로 설정한 것 같다. 요즘 청와대나 신한국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오는 영입 당선자들로 잔칫집 분위기다.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6명이 입당했다. 1백45석이다. 앞으로 5명만 더 들어오면 과반수 고개를 넘는다.

신한국당 입당설이 나도는 당선자는 자민련에서 이재창씨(경기 파주) 등 2~3명, 민주당에서 이규택(경기 여주) 최욱철(강원 강릉 을) 황규선(경기 이천) 씨 등 3~4명이다. 여권의 주요 표적인 무소속 당선자는 남은 15명 가운데 임진출 (경북 경주 을) 김영준(충북 제천 단양) 김용갑(경남 밀양) 서 훈(대구 동 을) 씨가 곧 입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민주당의 세 의원은 이미 탈당을 감행했다.

과반수 넘기기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의지는 거의 필사적이다. 청와대나 신한국당 고위 인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6월5일 국회 개원 전까지 1백50석 이상 과반수를 넘겨야 하며, 또 그렇게 될 테니 두고 보라고 장담한다. 이러한 정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검찰의 선거 사정이다. 야당은 최근 검찰이 주도하는 선거 사정을 당선자를 빼내가기 위한 협박 수단으로 본다. 사정 과정에서 약점이 잡힌 당선자를 여권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DJ와 JP가 5월4일 단독 회담에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현안 가운데 하나도 여권의 거여(巨與) 만들기에 대한 공동 대응 전략이다.
사실 검찰이 두팔 걷어붙이고 나선 선거 사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석연찮은 구석이 발견된다. 우선 여야를 놓고 법의 잣대가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현재 언론에 이름과 구체적인 혐의 내용이 공개된 당선자 37명 가운데 신한국당이 20명으로 가장 많고, 자민련 11명, 국민회의 3명, 무소속 2명 민주당 1명 순이다(표 참조). 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언론에는 똑같이 오르내리지만, 최종 처리 단계에서는 주로 야당에 철퇴가 가해진다. 15대 당선자 구속 1호를 기록한 자민련 김화남씨는 ‘표적 수사’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가 구속된 것은 신한국당 김석원 당선자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와 대조를 이룬다.

청문회 요구·탄핵 발의 원천봉쇄 전략

공교롭게 검찰의 ‘블랙 리스트’에 올라 있는 당선자 가운데 야당 당선자가 문제되는 지역구는 대개 신한국당 후보가 아깝게 2등한 지역이고, 여당 당선자가 문제되는 지역은 보궐선거를 해도 여당이 끄떡 없는 곳이 많다. 이를 두고 야권은 보궐선거에 대비한 포석이라고 주장한다.

여권이 당선자를 끌어들이는 데는 선거 사정이라는 채찍만을 쓰지는 않는다. 보통 ‘당근 작전’을 병행한다. 입당하는 대가로 굵직굵직한 지역구 개발 공약을 들어주기로 했다는 얘기는 이미 당사자들의 입당의 변을 통해 드러났으며, 수억원대 뒷돈이 오갔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사실 무소속 당선자는 허허벌판 위의 병사만큼 ‘생포’하기가 쉽다. 검찰이 불공정한 사정의 칼을 들이대더라도 엄호해줄 방패막이가 없는 것이 무소속의 처지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는 당근이나 채찍에 쉽게 넘어가기 마련이다.
여권이 온갖 비난과 무리수를 무릅쓰면서 과반수 확보에 매달리는 데는 여권 나름의 몇 가지 논리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YS의 뇌리에는 여소야대 정국의 경험이 깊이 박혀 있다. 당시 야당 총재이던 YS는 여소야대 정국의 덕을 톡톡히 보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야대 정국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이다.

과반수를 확보하자마자 여당이 당장 먹을 수 있는 잔칫상은 국회 직이다. 야당몫 국회 부의장과 몇몇 비인기 상임위원장 직을 제외하고 나머지 알짜 자리를 몽땅 차지하고 싶은 여당으로서는 과반수 의석을 넘겨야 국회 직 배분 때 큰소리를 칠 수 있다. 여당은 또 과반수가 확보되지 않으면 본회의 표결 때마다 가슴을 조여야 한다. 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안을 포함해 거의 모든 법안이 과반수 표결 사안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입법부나 행정부의 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퇴짜를 맞을 경우 집권 여당이 입게 될 정치적 타격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거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많은 것처럼 야대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이유도 많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손잡고 청문회 개최를 밀어붙일 수 있다.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는 것도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하다. 탄핵안이 통과되려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얻어야 하는 만큼 탄핵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발의 자체가 대통령에게는 치명타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않으면 야당은 걸핏하면 청문회를 요구하거나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나설 것이다”라면서, 단 1석이라도 과반수를 넘겨야 한다고 말한다.

대외 이미지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흔히 선진국에서는 다른 나라 대통령의 국정 능력을 평가할 때 집권 여당이 다수당인지 소수당인지를 묻는다. 따라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제적인 이미지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여온 김대통령으로서는 소수당 출신 대통령이라는 점이 대단히 자존심 상할 것이다.

그렇다면 집권 여당의 최대 과제인 과반수 의석은 언제쯤 달성될 것인가. 선관위는 5월11일부터 국세청 직원 3백2명을 포함한 대규모 사정반을 동원해 선거 기간에 후보들이 사용한 검은돈의 내력을 추적한다. 검찰 수사에 이은 제2의 사정인 셈이다. 여권 핵심부는 내심 이 기간을 과반수 확보 전략의 마무리 단계로 여기고 있다.
‘개혁 정당’이 5공 핵심에까지 손 뻗쳐

여권의 무리한 과반수 확보 전략을 바라보는 여론의 눈초리는 매우 따갑다. 법적인 하자는 없다 하더라도 정치 도의 측면에서 비난 받을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말이 많다. 민정계의 한 당선자는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쫓기듯이 영입을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라고 푸념한다.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손학규 대변인은 논평까지 내고 “숫자에 얽매여 원칙 없는 영입은 하지 않겠다”라고 장담했지만, 5공 핵심인 김용갑·권정달 씨에게까지 손길을 뻗치는 것을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머리 수 채우기에 혈안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선진국에서는 과반수 의석 확보를 위해 사람을 빼오거나 당선자가 당을 함부로 바꾸는 일이 극히 드물다. 영국의 경우 79년 노동당 정권이 원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소수파로 몇년을 지냈지만, 의석을 늘리기 위해 어떤 처방을 썼다는 얘기는 없다. 우리 선거법은 영국법을 본따서 만들었지만, 그 정신까지 모태로 삼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일이 필요할 것 같다. ‘강한 자만이 정의를 실천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김대통령이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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