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의 쓴맛을 보여주마"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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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 방문' 등 파상 공세로 성명파 의원 압박…
'충성 아니면 배신' 이분법 적용


최근 민주당 동교동계 인사들의 행보를 쫓다 보면 이런 말이 떠오른다. '조직의 쓴맛을 보여주마.'


의원 워크숍 직후 만족감을 드러내던 동교동계는 성명파 의원 12명의 6월5일 모임을 계기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국정 쇄신을 약속했는데도 기다리지 않고 또 나서는 것은 항명'(김옥두 의원)이라는 것이 동교동계의 정서다.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사정권에 들었을 때 조심스럽게 대처하던 동교동 직계들도 이제는 'DJ에 대한 항명'을 이유로 공개적인 비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카드가 마련된 셈이다.




선봉은 권노갑 전 위원. 동남아 물류센터를 시찰하기 위해 6월17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출국하려던 그가 돌연 이를 그만두었다. 권씨는 또한 7월 초로 예정했던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방문도 취소했다. 굴복하는 듯한 모습조차 보이지 않겠다는 자세다.


권씨가 출국을 취소한 이후, 동교동계의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행동대장' 격인 김옥두 의원은 정동영-정균환 의원 간에 벌어졌던 거짓말 공방을 상기시킨 뒤, "(성명파 의원들에 관한) 다른 진실도 언젠가 공개하겠다"라며 도덕성 시비에 가세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공방이 재연되었다. 범동교동계인 안동선 최고위원은 동석한 정동영 최고위원을 직접 겨냥해 "모임을 계속할 경우 더 이상 참지 않겠다"라고 쏘아붙였다.


단순한 위협만이 아니었다. 평민당 때부터 당료 생활을 해온 부위원장 60여 명은 구당파를 자임하며 '맛뵈기' 실력 행사에 나섰다. 이들은 성명 발표 뒤, 지도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명파 의원 사무실을 항의 방문했다.


"심지가 굳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다." 한 성명파 의원 측근의 말은 체감 압박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6개월 사이에 두 번씩이나 동교동계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정동영 최고위원은 특히 더하다. 지난해 '권노갑 퇴진' 발언 직후 '배신자' '인간도 아니다'는 비난에 시달렸고, 이번에는 거짓말 공방에 휩싸여 이미지에 상처를 입었다. 동교동계 한 중진은 정위원을 지칭하며 "이 정권에서 무엇을 이룰 생각은 아예 말라"고까지 했다. 부위원장 여럿이 사무실에 찾아가 대여섯 시간 죽치고 있은 적도 있었다. 그는 "정치가 무섭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비리를 폭로하겠다' '지역에서 왕따시키겠다'는 말도 동교동계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권노갑 전 위원의 직계인 김태랑 전 의원이 "지난해 전당대회 때 최고위원 출마자 거의 모두가 권고문을 찾아와 상의했으며, 권고문은 조언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마음'까지 썼다"라고 언급한 대목은 암시적이다. 사실상 '협박'에 가깝다는 것이 민주당 안의 반응이다.


물론 동교동계가 공멸의 길인 '폭로 카드'를 던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총선이나 최고위원 경선 때 권씨가 베푼 구체적인 지원 내역을 밝힐 경우 소장파뿐 아니라 권씨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보복 카드는 얼마든지 있다. 전국 대의원 9천여 명 중 동교동계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사람만 6천명이 넘는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또한 성명파 의원 대부분이 당내 뿌리가 약한 영입파이고, 지구당을 아직 장악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동교동계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동교동계에 밉보였다가 고초를 겪은 정치인은 상당수에 이른다. 김상현·정대철·김원기·이해찬·김근태 씨가 대표적이다.


김상현 민국당 고문은 1950년대부터 DJ와 정치 역정을 함께한 동지다.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 망명하고 있던 시절, 그는 국내에서 DJ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DJ와 대립했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정치 방학을 강요당했고, 지난 총선 때는 공천에 탈락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한때 떠오르는 차세대 주자로 손꼽혔던 정대철 민주당 최고위원. 그는 1991년 당내 정풍운동 진원지였던 정치발전연구회의 간사장을 지내면서 동교동계와 소원해졌고,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집중 견제를 당했다. 이후 지금껏 그는 비주류로 맴돌고 있다.


김원기 최고위원은 1995년 DJ가 정치에 복귀했을 때 합류하지 않고 '꼬마 민주당'을 지켰다는 이유로 표적 대상이 된 경우다. 그는 15대 총선 때 동교동계의 집중 공격을 받아 낙선했고, 4년 동안 '자숙'한 후에야 복권되었다.


성명파 의원들 "당하지만은 않겠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지난 대선 때 국민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자고 주장했다가 동교동계 일부 인사들에게 밉보였다. 당내 재야 영입파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으면서도 당직 한 번 맡지 못한 배경에는 동교동계의 견제가 작용했다는 평이다.


이들이 견제당했던 이유는 반민주 행위 때문도, 해당 행위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DJ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DJ를 비판하는 것은 곧 배신이라는 것이 동교동계의 일반적인 정서라고 전했다. 이런 동교동 정서는 탄압 받는 야당 정치인이었던 DJ와 정치 역정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배신한 측근이 여럿 있었고, 이런 경험이 동교동계 인사들에게 '충성 아니면 배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심어 주었다는 것이다.


권노갑씨는 자서전에서 '충성 그 하나로 대통령을 모신다는 각오로 오늘까지 왔다'고 썼다. 그에 따르면,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야말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고난의 세월'을 이겨낸 힘이었다. 그러나 '주군-가신' 관계라는 내부 질서를 당 전반에 적용하려고 하면서부터 갈등은 불가피했다. 성명파의 행동 또한 동교동계의 이런 정서와 충돌한 것이다.


그러나 성명파 의원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다음 공천에서 동교동계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들의 결기를 북돋우는 힘이다. 한 의원은 "우리가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투쟁할 때 너희는 뭐 했느냐는 말을 들으면 거부감부터 앞선다"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키워준 은혜를 모른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영입한 것 아니냐"라며 불쾌해 했다.


물론 동교동계가 현정권을 떠받치는 주춧돌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DJ에 대한 충성심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태도는 정치 발전을 위해서나, 당 지지율 회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소장파 의원들의 주장이다. 한 의원은 당을 위하고 궁극적으로 DJ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동교동계는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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