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중권 "한국의 링컨은 나야 나"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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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생·변호사 출신 '닮은꼴'…

지역 화합 앞세우며 '최고의 대통령' 이미지 마케팅


정치권에 난데없이 '링컨 바람'이 불고 있다. 민주당 김중권 대표는 며칠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한 대기업 회장을 만났더니 나를 보면 링컨 대통령이 생각난다고 하더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변호사가 되었고, 지역 화합에 노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얘기였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노무현 고문은 요즘 '링컨으로부터 배우는 열 가지 교훈'이라는 주제로 참모들과 자주 토론한다. 남북전쟁 당시 링컨이 처했던 상황이 현재 한국 처지와 비슷하다고 전제하고 링컨의 위기 관리 방식을 배우자는 취지에서다.


맥락은 좀 다르지만, 지난 정풍 파동 과정에서는 동교동계 최재승 의원이 김민석 의원의 발언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비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권 주자, 특히 영남 출신인 김대표와 노고문이 유독 '링컨'에게 관심을 쏟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남 주자들의 최대 무기인 동서 화합을 내세우는 데 남북전쟁을 치른 링컨만큼 딱 떨어지는 교본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링컨과 두 사람의 행적이 여러 측면에서 '닮은꼴'이다.


링컨은 켄터키 주의 한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독학해 변호사가 되었고, 주 의원과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노예제 폐지를 놓고 남북전쟁을 치렀고, 재임 기간 내내 미국 연방의 화합을 위해 고민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변호사 출신' '지역 화합의 전도사'라는 몇 가지 코드에서 링컨과 두 사람이 닮은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두 사람이 아직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는 것과, 영호남 갈등이 전쟁으로 치달을 정도는 아니라는 점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살아온 길이 비슷하다는 것말고 링컨에게는 두 사람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더 큰 매력이 있다. 바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라이딩스-매기버 대통령 여론조사팀은 미국과 캐나다 전문가 7백19명과 전세계 역사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미국 역대 대통령 41명에 대한 성적을 매겼다. 업적과 위기 관리 능력·지도력·정치력·인사·성격과 도덕성 다섯 분야로 나눈 평가에서 링컨은 종합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케이블TV C-SPAN이 미국 역사학자 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통령 평가에서도 역시 링컨이 1위를 차지했다.


김중권 '5·6공 인물, DJ 시다바리' 이미지 털기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미국인이 도덕적 귀감으로 여기는 그는 유머 감각에서도 탁월성을 드러냈다. 이를테면 어떻게든 연방 정부에 자리를 얻고자 했던 한 사람이 "관세청장이 임기 중에 사망했으니 후임자로 제가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하자 "난 상관없네, 장의사만 괜찮다면 말야"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라는 책을 낸 보브 돌 상원의원은 링컨이 역대 최고의 개그맨이라며, 유머가 뛰어난 대통령은 직무 수행에도 탁월하다고 치켜세웠다.


결단력·비전·인간미에다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까지, 링컨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을 두루 갖춘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링컨을 닮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김중권 대표의 한 측근은 김대표가 '링컨' 얘기를 듣고 와서 무척 좋아했다고 전했다. 사실 김대표 처지에서는 대표를 맡고 난 뒤에도 잘 오르지 않는 인지도 때문에 고민하던 차였다. 게다가 그를 아는 사람들도 대개 5·6공 인물이라거나 'DJ의 시다바리'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곤 했다. 때문에 이미지를 확 바꿀 만한 상징이 필요했던 터였다. 이 측근은 "김대표가 강조하는 이미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열심히 노력해 차근차근 성공을 이루어 간다는 자수성가형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망국적인 지역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통합형 이미지다"라면서, 링컨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링컨은 노무현 고문이 '선점'한 인물이다. 동서 화합의 선봉장 격인 노고문은 유세 때 자주 링컨을 인용했다. 어찌 보면 링컨이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도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학력 공세'에 시달리는 노고문이 더 닮고 싶은 인물일 법도 하다.


그런 노고문이 링컨을 차기 대선에서 벤치마킹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 4·13 총선 직후다. 부산 선거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날 저녁 참모들이 노고문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링컨의 두 번째 취임사를 읽고 있었다.


'누구에게도 원한 갖지 말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께서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지금 우리에게 안겨진 일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우리들 사이의,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위해 다 함께 매진합시다.'


노무현측 "김대표가 링컨 이미지 도용 못할 것"


재선에 성공한 링컨이 1865년 3월4일 취임식에서 한 이 연설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이 핵심이었다. 남북전쟁 승리를 자축하기보다는, 내전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지역 갈등으로 낙선한 바로 그 날 링컨의 취임사를 읽고 있는 노고문의 모습은 보좌진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때 한 참모가 '링컨과 노고문을 일체화하자'고 제안했고, 이 때부터 노고문의 링컨 연구가 본격화한 것이다. 그의 한 참모는 말 한마디로 링컨을 도용해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김대표측을 경계했다.


두 사람뿐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도 링컨에게 관심이 많다. 평소 동서 화합을 강조할 때 링컨을 자주 언급해온 김대통령은 1999년 추석 휴가 때는 아예 링컨 전기를 지참했다. 취임 직후에는 대통령 자식들이 자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링컨이 위대했지만, 아들이 부패해 고민이 많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회창 총재는 자기 인터넷 홈페이지에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원문으로 소개하고 해설을 곁들인 적이 있다.


이런 이미지 빌려오기는 정치권에서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이미지를 더 빠르고 쉽게 알리기 위해 유명 인사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일종의 마케팅 기법인 셈이다.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 닮기를 시도했던 것이나, 최근 이한동 총리가 왕건론을 내세우는 것이 대표 사례다.


하지만 닮으려고 했던 인물의 이미지에 흠집이 생기면 그 이미지를 활용하려는 사람도 상처를 받게 마련이다. 그런 맥락에서 링컨론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에게는 올 가을이 고비가 될 법하다.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링컨을 노예제 찬성론자로 묘사한 영화를 선보이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링컨론자들이 졸지에 낭패를 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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