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 날개 달고 '떴다 정균환'
  • 이숙이 기자 (sookyi@e-sisa.co.kr)
  • 승인 2001.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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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후보 경선에서 'DJ 친위부대' 노릇 할 '중도개혁포럼' 주도


8월10∼11일 강원도 원주의 한 리조트에서는 민주당 초·재선 의원 20여 명이 참석한 단합대회가 열렸다. 1박2일 동안 골프도 치고 토론도 하는 자유로운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각 계파에서는 한바탕 '첩보전'이 벌어졌다. 누가 참석하는지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촉각을 곤두세운 것이다. 순전히 정균환 총재특보단장이 주최자라는 이유에서다.




여권에서는 요즘 여느 대권 주자 못지 않게 정단장의 행보가 큰 관심거리다. 정단장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그가 9월1일 출범을 목표로 '중도개혁포럼(중·개·포)'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이런 '정균환 증후군'을 지켜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동교동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던 정단장의 화려한 변신이 놀라워서다.


'왕따'에서 '주류'로 떠오른
우직한 돌쇠


실제로 13대 때 국회에 진출한 정단장이 정권 교체 전까지 맡은 당직은 '지방자치위원장' 정도가 고작이었다. '비주류'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었다. 당료 출신으로 전북 고창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된 그는 바로 옆 선거구인 정읍 출신 김원기 최고위원과 가까웠다. DJ가 정계에서 은퇴하고 민주당에서 본격적인 계보 정치 시대가 펼쳐졌던 14대 국회 때는 각종 특위에서 '김원기 대리인'으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그는 동교동 눈 밖에 났다.


정단장은 DJ가 정계에 복귀하자 민주당에 잔류한 김원기 계보를 떠나 국민회의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는 '줄 잘못 선' 전력 때문에 15대 총선에서 공천 탈락 일보 직전까지 갔다. 민주당의 한 고위 인사는 "당시 정단장의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교동에 충성 맹세를 하고서야 구사일생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왕따' 계열이던 정단장이 주류로 급속히 떠오른 것은 DJ 정권의 초대 사무총장에 발탁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여권에서는 조각에서 제외된 전북 의원들을 중심으로 '전북 홀대론'이 팽배해 있었고, 이를 달래기 위해 DJ는 전북도지부장이던 그를 사무총장 자리에 앉혔다. 집권 여당의 사무총장은 돈과 조직을 관리하는 핵심 요직이다. 그런 자리에 비동교동계가 앉자 단박에 최단명 총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1998년 6·4 지방 선거를 비롯해 여러 재·보선을 진두 지휘하고, 국민신당과의 통합, 야당 의원 영입 등 굵직굵직한 일을 잡음 없이 성사시키면서 1년4개월이나 장수했다. 그 사이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파동으로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이 경질되는 등 대형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는 두 번이나 DJ로부터 재신임을 받았다.


그 후 정단장에게는 당직 릴레이가 이어졌다. 총재특보단장·신당 영입 창구·16대 총선 공천팀장·원내총무 그리고 중앙당 후원회장까지, 요직이란 요직은 다 거쳤다. DJ의 한 핵심 측근은 특히 특보단장을 두 번씩이나 맡기고 후원회장을 겸임시킨 것은 이례적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면 정단장의 어떤 점이 DJ로부터 전폭적인 신임을 이끌어낸 것일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정직성과 성실성을 1순위로 꼽는다. 잔꾀 안 부리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우직한 돌쇠' 스타일이 DJ 맘에 쏙 들었으리라는 얘기다. 후원회 일로 그를 만난 한 경제인은 "정단장이 하도 솔직하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 '정치권에 저런 사람도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정풍 파동 과정에서 정단장과 갈등을 빚었던 정동영 최고위원도 그의 인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영입 대상자를 함께 설득하러 다닌 적이 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대통령을 파는 일이 없더라.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는 것이 정위원의 평이다.


비교적 사심이 없다는 점도 득점 요인으로 꼽힌다. 16대 공천 창구였던 '마포팀'의 한 관계자는 "3선 의원쯤 되면 자기 계보를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가질 법도 한데 정단장은 달랐다. 영입 인사들에게는 '이제 DJ 계보가 되셨습니다'라는 인사말을 건넬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거짓말 안하고, 일 잘하고, 대인 관계 좋고, 다른 욕심 안 부리고…. DJ가 좋아할 만한 요소는 다 갖춘 셈이다. 그런 정단장이 갑자기 사람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으니 '중·개·포'에 세간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단장은 "정권 재창출과 김대중 대통령의 개혁 계승, 당의 단결을 위해서이다"라고 포럼을 추진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DJ는 1947년 미 군정이 '중도 중의 중도'로 분류한 민주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후 50년 넘게 중도 개혁 노선을 걸어왔다. 'DJ주의'의 알파요 오메가인 중도개혁주의를 뒷받침해 재집권 기반을 굳건히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라는 주장이다. 포럼의 실무 중추 역을 맡고 있는 김민석 의원은 좀더 전략적인 논리를 폈다.


"내년 대선의 승패는 여야 어느 쪽이 중도 민심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 토니 블레어와 클린턴이 중도 노선을 택해 집권에 성공했고, DJP 연대도 DJ가 반 발짝 오른쪽으로, JP가 반 발짝 왼쪽으로 움직여 중도 세력을 잡았다. 반면,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고어는 좌파 쪽으로 좀더 기울었다가 '따뜻한 보수'를 내세운 부시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를 거울 삼아 당이 보수·개혁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잡아 가는 것이 중도개혁포럼의 역할이다."


권노갑-한광옥이 중·개·포의 '숨은 손?'


'중·개·포'에는 현재 현역 의원 36명과 원외 위원장 40여 명 등 80명 정도가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정단장은 "내년 대선에서 어느 후보에게도 줄을 서지 않고, 당내 통합의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주동자들의 면면으로 보아 '중·개·포'가 내년 경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김심(金心)'을 담아 내리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실적으로 동교동계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운 DJ가 정단장을 앞세워 'DJ 친위부대'를 만들고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모임 결성을 DJ가 직접 챙기고 지시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권노갑-한광옥 라인이 '중·개·포'의 '숨은 손'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당정 쇄신의 표적으로 몰렸던 동교동 구파 처지에서 보면 '중·개·포'는 재집권 기반도 다지고 당내 최대 주주로 떠오른 한화갑 최고위원이나 정풍파를 견제하는 양수겸장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동교동 구파의 견제를 의식한 듯 한화갑 위원과 가까운 설 훈·조성준 의원이나 당정 쇄신을 주장했던 소장파도 여러 명 '중·개·포'에 가입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중·개·포'가 '제2의 정발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때 이른 관측이 나온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 당시 민주계 후보를 옹립하려다 실패한 '정치발전협의회'처럼 '중 ·개·포'가 후보 옹립을 놓고 자중지란에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전략가는 "YS의 의중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정발협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결국 '중·개·포'의 미래는 정단장이 김심의 통로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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