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지도자의 위기 관리 리더십 입체 비교
  • 김종민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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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케네디, '실패자' 카터/판단력·결단력·설득력이 '좌우'
위기는 영웅을 낳는다. 건국 이후 최악의 외침(外侵)으로 세계 최강국 미국이 잔뜩 긴장해 있다. 취임한 지 1년도 안된 부시 대통령의 위기 관리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부시는 이번 위기 관리에 성공하느냐 여부에 따라 영웅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귀족 출신의 어설픈 카우보이로 전락할 수도 있다.




위기는 '명암'을 낳는다 : 루스벨트(위 왼쪽)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위기를, 케네디(위 오른쪽)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해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카터(아래 왼쪽)는 오일 쇼크와 이란 인질 사태 때의 실책으로, 부시(아래 오른쪽)는 걸프전 이후 경제 관리 소홀로 재선에 실패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모두 위기 국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현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인물은 미국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1933년에 미국 사회는 4년째 계속되는 대공황에 빠져 암담한 상황이었다. 실업·파산과 농업 파탄으로 국민은 두려움에 떨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통제 불능 수준이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루스벨트는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라는 유명한 취임 연설을 신호탄으로 하여 미국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는 취임 첫날 의회에 법안을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100일 동안 수많은 법안을 통과시키며 이른바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비록 그 경제적 효과는 나중에 나타났지만 루스벨트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루스벨트의 탁월했던 측면은 놀랄 만한 설득 노력이다. 그는 1945년 사망할 때까지 12년 간 재임하면서 매주 2회씩 모두 천 번이 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자신의 정책과 소신을 설명하고 기자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는 비전과 소신, 국민 설득이라는 세 가지 무기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헤쳐 나갔다.


흔히 국가 위기 상황은 전쟁·내분·지도자 유고·경제 위기·천재지변 등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위기 관리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위기의 본질과 해결책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35대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위기 관리 능력이 돋보인다. 44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한 그에 대해 일부에서는 안정감이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보여준 그의 위기 관리 능력은 그러한 우려를 깨끗이 날려 버렸다. 미국 정부는 소련이 쿠바에 핵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국방부·국무부·중앙정보국(CIA)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아 혼란에 빠졌다. 공습하자는 주장도 강했고, 서로 자기들이 폭격을 맡겠다는 다툼까지 벌어졌다.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케네디는 위기 관리의 목표가 미사일 기지 철거라는 사실을 분명히하고 공습 대신 해안 봉쇄라는 강력하면서도 절제된 카드를 선택했다. 소련의 군함이 시시각각 쿠바 해안으로 접근해 오는 와중에도 케네디가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며 단호한 의지를 보이자 소련 군함은 방향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무모한 선택이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케네디는 상대인 흐루시초프 정권이 핵전쟁을 감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벼랑끝 전술을 밀어붙인 것이다.


인권·평화 외교에서 업적을 남긴 지미 카터 대통령은 판단력과 결단력에서 약점을 드러내 위기 관리에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그는 재임 때 터진 오일 쇼크를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의회의 협조를 신속하게 얻어내지 못했고, 수요· 공급 조절에도 실패했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문제의 근본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일 쇼크의 뿌리인 중동 사태를 빨리 해결하는 데 힘을 집중했어야 할 시기에 백악관의 에너지 절약을 홍보하면서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나서는 등 위기의 본질에서 비켜나 있었다. 1979년 이란 인질 사태 때는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하고 1년 넘도록 시간을 끌다가 그나마 구출 작전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그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다.


조기숙 교수(이화여대·국제대학원)는 카터의 판단력 부족이 그의 성격 탓이라고 분석했다. 자기 신념이 너무 강한 카터는 다른 사람의 비판을 참지 못하고 포용력이 부족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지 못했는데, 이것이 판단 착오를 낳았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문화 탓에 한국 대통령 '판단 착오'




우리나라의 경우 권위주의적 문화가 최고 지도자의 판단 착오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 국무부 관리를 지낸 한 인사는 "객관적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최고 통치자의 입맛에 맞게 재생산하는 관행 때문에 위기 관리 체제가 큰 결함을 안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IMF 때도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하느라 정확한 보고를 하지 않아 문제가 커졌고, 지난해 의료 대란 때도 실무 책임자들이 대통령의 의중과 취향을 감안해 보고했기 때문에 사태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루스벨트의 예에서 보듯이 위기 관리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은 내부의 지지와 외부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설득 노력이다. 1988년 취임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에서 미국 사회 내부는 물론이고 유엔과 국제 사회의 광범한 지지를 이끌어 내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전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IMF 구원 투수 역할을 맡은 김대중 대통령 역시 금모으기 운동·국민과의 대화·고통 분담 호소·노사정위원회 설치 합의 등을 통해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외국 자본의 불신을 없애 나갔다.


위기 관리 리더십에서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위기 후 상황 대처 능력이다. 조지 부시와 DJ 두 사람은 위기 관리에 성공했으면서도 위기 후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지 부시는 걸프전 승리로 국민의 지지가 90%까지 올라가자 경제를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해 결국 재선에 실패했다. DJ 역시 IMF 위기 관리에 성공했으나 너무 일찍 위기 극복을 선언하고 말았다. 그 결과 구조 조정기에 으레 나타나기 마련인 사회 각 집단의 이기주의 분출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지지도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경악과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미국은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국민의 분노를 한 곳에 결집했다. 문제는 최고 지도자 부시의 위기 관리 능력이다. 그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내외 여론을 설득하면서 절제 있게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망은 양론으로 엇갈린다. 인생에서 절박한 위기를 겪어 보지 못한 부시가 부족한 경륜 때문에 '오버'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체니와 럼스펠드처럼 경험 많은 참모들이 있기 때문에 위기 관리에 성공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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