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김근태가 '돈 키호테' 된 까닭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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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로 거듭나기 '마지막 승부수'…
동교동계 낙점 사실상 포기
"어제 오늘 소장파 의원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9월7일)


"근래에 나타나고 있는 인사의 흐름에 대해서 결정권자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9월8일)


"개혁을 추진하려면 도덕적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 신뢰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 있나."(9월9일)


"(한광옥 대표 인준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근본적으로 승복하지 않는다.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당내 개혁의 필요성을) 당원과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9월10일)


"지금까지는 특정 계보 해체라고 했지만, 오늘부터는 동교동 계보를 해체해야 한다고 얘기하겠다."(9월11일)




김근태 민주당 최고위원이 말문을 텄다. 그는 한광옥 대표 인준을 전후해서 닷새 연속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처음에는 선문답처럼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동교동계 해체하라'는 극한 발언까지 쏟아냈다. 표현 수위로만 본다면, 지난해 12월 정동영 최고위원이 '권노갑 퇴진'을 주장한 것보다 훨씬 더 높았다.


김위원의 평소 별명은 햄릿이다. 생각이 많아 과감해야 할 때 그렇지 못한 적이 많아서다. 그래서 손해도 많이 보았다. 지난해 정풍운동도 그 중 하나다. 애초 당·정 쇄신이라는 군불을 끊임없이 지펴 온 것은 그였다. 그러나 막상 정풍운동이 화두로 올랐을 때, 그는 미적거렸고 정동영 최고위원은 과감했다. 결국 정풍운동의 과실은 그를 비켜 갔다.


이번에도 그랬다. '새벽21' 소속 초선 의원들이 탈당 불사를 외칠 때 그는 '탈당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바른정치모임 소속 재선 의원들이 대책회의를 가질 시간에도 그는 '국정 쇄신이 필요하고, 여기에는 인사 쇄신이 포함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문제 제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가 막상 팔을 걷어붙인 것은 초·재선 의원들의 기세가 꺾인 뒤였다. 이 때문에 또 한 박자 느렸다느니, 햄릿이 돈 키호테로 변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그의 이런 '돌출'을 두고 장관에 임명되지 못한 소외감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지난번 개각 때 공개적으로 장관 직을 희망했다가 '망신'을 당했던 김위원 자신은 이번에는 전혀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측근들은 이번에도 내심 장관 직을 기대했다.


자기 목소리 찾았지만 '자력 갱생' 부담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노무현 상임고문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그가 명실상부한 대선 주자로 거듭나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걸었다는 분석도 있다. 동교동 구파의 '낙점'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독자 행보나 자력 갱생을 위해 시동을 건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김위원측은 김위원의 진심을 훼손하려는 사람들의 논리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한 측근은, 김위원이 지난 5월에도 할 말을 참다가 한동안 앓았다면서, 순수한 충정이 발언의 계기였다고 주장했다. 김위원도 9월11일 기자간담회에 앞서 "가슴에 불이 활활 타올라서 토해내야 안정이 될 것 같다"라며 상기된 표정을 풀지 않았다. 국민정치연구회 이사장으로서 김위원과 절친한 이재정 의원은 "그의 행동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 차원에서 봐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득실을 떠나 순수하게 과거의 지사적 감성으로 돌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그의 '순수한 발언'을 '현실적으로 반박'하면서 상황은 묘하게 돌아갔다. "민주당이 곧 동교동이며, 동교동을 해체하라는 말은 당을 해체하라는 말과 같다"라는 권씨의 말은 또 다른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연쇄 테러 사건이 터지면서, 일단 휴전 상태에 접어든 김근태 위원과 동교동계의 승부에서 김근태 위원에게 돌아갈 득실은 과연 뭘까.


일단 득실 계산에 앞서 그가 모험의 길을 택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뒤집을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은 김위원으로서도 다행이다. 정치 입문 이후 거의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냈고, 앞으로 독자적인 정치 실험을 할 실마리도 잡았다. 물론 이것들은 험한 가시밭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 득점으로 간주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반면 동교동계의 지원은 사실상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를 더욱 뼈아프게 하는 것은 실질적인 독립 선언을 한 그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개혁파 초·재선 의원들과 김위원은 성장 배경도, 생각도 비슷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를 보는 소장파의 눈길은 아직 싸늘하다. 9월11일 김위원이 새벽21 소속 의원들에게 공동 기자간담회를 제안했을 때, 이들은 김위원의 요청을 뿌리쳤다.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부터 정풍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반응이 없었다"라며 아쉬워했다. 지난해 개혁파 의원들이 자금세탁법이나 부패방지법 수정안을 마련하고 서명 작업을 벌일 때 그가 서명을 거부한 것도 감정 악화에 한몫을 했다. 대신 그는 3당 정책연합 옹호자였고,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를 만나거나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와의 만남을 꾀하는 것으로 언론을 탔다.


김위원은 과격 이미지에서 벗어나 온건한 리더십을 갖추는 것을 올 상반기 목표로 삼았었다. 그런데 이 전략이 보수 끌어안기에 실패하고, 개혁파와도 소원해지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김위원은 이제 온건한 이미지 가꾸기를 미루는 대신 개혁적인 색깔 되찾기에 힘을 쏟을 작정이다. 그도 개혁파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야 대권 주자의 불씨를 살려 갈 수 있고, 독자 생존 가능성도 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겠다는 그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그에게는 정치 입문 6년 만에 다시 자유를 찾았다는 홀가분한 표정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사 파행의 책임자는 결국 DJ가 아니냐는 기자들의 추궁에 그는 끝내 "총재가 그런 판단을 하셨을 리는 만무하다"라고 비켜섰다. 과거의 민주화 투사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듯이, 어정쩡한 민주당원의 옷을 벗을 생각이 아직은 없음도 분명해 보인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희망이다. 그의 홈페이지 맨 위에는 '희망을 현실로'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쓴 책 이름도 〈희망의 근거〉다. 그가 이제 찾아 나설 '희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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