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근 "밑져야 본전, 나도 용 될래"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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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경선 출마…'중앙 정치인' 이미지 심기 전략
유종근 전라북도지사가 용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12월5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은 경제 대통령을 원하며 내가 가장 적임자이다"라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이미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또한 내년 초에 저서인 〈신국가론〉 출판기념회를 대규모로 갖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세몰이에 나설 계획이다.




유지사의 출마 선언은 지난 10월23일 도지사 3선 불출마를 선언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의 모습은 서울에서 자주 눈에 띄었다. 정부의 재벌규제 완화 정책을 비판하고, 예비 경선제를 주장하는 등 대선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현재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은 김중권 상임고문에 이어 유지사가 두 번째다. 그러나 이인제·노무현·김근태·한화갑·정동영·박상천 상임고문이 직·간접으로 출마 의사를 밝혔으므로, 8명 이상이 후보 경선에 뛰어들 참이다. 더구나 김대통령이 총재 직을 떠나, 당이나 동교동계가 후보 군을 조정할 구심력을 상실한 상태. 몇몇 후보를 뺀 나머지는 마이너 리그에서 난전을 벌일 것이 뻔하다. 본선 경쟁력도 확인되지 않았고 당내 기반도 엷은 그가 출마 선언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 뉴욕 주립대학 경제학 박사 출신인 그는 1980년대 초반 뉴저지 주의 수석경제자문관으로 일할 때 당시 미국에 머무르던 DJ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재미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미국내 친DJ 인맥으로 분류되던 그는, 1994년 귀국해 아태평화재단 초대 사무부총장을 맡았다. 그런 다음 1995년 전북도지사에 공천되어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했다. 그가 가장 능력을 많이 발휘한 것은 지난 대선 직후였다. 그는 IMF 재협상 파동 중에 조지 소로스 등 미국의 재계 거물들과 화상 회의를 주선하는 능력을 발휘했고, 경제비상대책위원회 12인 위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도지사 재선에 성공한 뒤부터는 별로 운이 따르지 않았다. 새만금 간척 사업 문제로 환경단체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고, 감사원으로부터도 '국책 사업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마이클 잭슨을 끌어들인 무주 개발 계획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특히 1999년 4월에는 절도범 김 아무개씨가 서울시 양천구 목동에 있던 전북지사 서울관사에서 현금 3천2백만원과 미화 12만 달러, 진주반지 등 귀금속 1억9천만원 상당을 훔쳤다고 주장한 사건이 터졌다. 나중에 검찰이 '12만 달러를 훔쳤다는 김씨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할 만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유지사가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은 뒤였다.


유능하지만 독선적인 인물?


그는 정치권에서 미국식 합리주의자로 통한다. 일 처리를 하는 데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다는 평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정치하는 데 이런 성격은 득보다 실이 될 때가 많은 듯하다. '너무 뻣뻣하다' '유능하지만 독선적이다'는 것이 대체적인 인물평이다.


그래서 민주당 일부에서는 어차피 도지사 3선이 어려울 것 같으니까 대선 출마 쪽으로 선회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대책 없이 경선 출마를 선택한 것 같지는 않다. 그의 나이는 57세. "정치에 뜻이 있는 이상 이제 중앙 무대로 진출할 때이고, 대선 후보 경선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 그를 잘 아는 의원의 말이다. 후보가 되는 것이 최선이지만, '중앙 정치인'으로서 연착륙에만 성공하더라도 차선은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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