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름만 빼고 다 바꿔!"
  • 안철흥 기자 (epigon@e-sisa.co.kr)
  • 승인 2001.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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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선제 도입 등 특대위 안 확정 '초읽기'…
한화갑 반발 불구, 공감대 확산
당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특대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여. 민주당은 현재 '혁명' 중이다. 상향식 공천, 집단지도체제, 당·정 분리, 국민 경선제 등이 연달아 합의되고 있다. 이것들은 아직 특대위 내부 합의일 뿐이지만, 당무회의 통과만을 남겨 놓아 사실상 '준 확정안'이나 마찬가지다.




특대위 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의원 수를 대폭 늘리고, 일반 국민도 포함한 '국민 선거인단'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뽑는다는 이른바 국민경선제 도입이다. 인구 천명 당 1명꼴로 전체 5만명 정도 선거인단을 구성하되, 그 중 30%를 일반 국민으로 채우겠다는 것이 국민경선제의 뼈대. 당심(黨心)뿐 아니라 민심에 따라 후보를 뽑겠다는 뜻이다. 특대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민석 의원은 12월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보 경선은 내년 봄 제주에서 시작될 것이다. 민주당 대의원과 일반 당원 및 국민으로 구성된 '제주도 선거인단' 5백여 명이 민주당 대권 주자를 대상으로 투표한 뒤, 결과도 그 자리에서 공개될 것이다. 후보 경선은 이런 방식으로 울산 광주 대전 충북 강원 충남 전북 전남 대구 인천 경북 경남 부산 경기 등 인구가 적은 시·도부터 1주일에 2∼3회씩 한달 반 동안 실시될 것이다. 경선이 엎치락뒤치락 진행되면서, 민주당 후보 경선은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당·정 분리, 상향식 공천, 총재직 폐지…


그리고 마침내 3월이나 4월 어느 날, 서울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한달 반에 걸친 예비 경선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후보를 결정하는 현장이 되리라는 것이다.

특대위는 또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 직후 당의 조직·재정 지휘권을 당에 반납하고 국정에만 전념하도록 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런 당·정 분리 원칙은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하고 이를 통해 국회 운영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쳐온 현재의 정치 구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당도 완전히 탈바꿈한다. 지구당 당원이나 대의원이 선출직 후보를 뽑는 상향식 공천이 도입된다. 지금까지 보스의 권한은 인사권(공천권)에서 나왔는데, 이것을 제한한다는 뜻이다. "나중에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이 안 나설 수도 있는데, 정말 그렇게 된다면 성공인 셈이다. 그만큼 권력을 분할하겠다는 뜻이다." 김민석 의원의 말이다.


또한 총재 직이 폐지되고, 대의원 투표를 통해 선출된 최고위원회는 합의제 의결 기구로 바뀌게 된다.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은 당연직으로 최고위원을 맡게 되며, 정책과 원내 중심의 정당 구조가 정착된다.




이런 특대위 안이 실현될 경우, 그 파급 효과는 민주당을 넘어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당장 보스와 지역 중심의 정당 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뿐 아니라 동교동계도 민주당 장악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동교동계 등 주류측은 기득권이 무너진다는 면에서 특대위 안이 흔쾌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쇄신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내놓고 불평할 수도 없어,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반면 같은 주류인 중도개혁포럼(중개포) 쪽은 상황을 나쁘지 않게 보는 편이다. 중개포 소속 한 의원은 '당의 근본을 다시 세워 분열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특대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잠정 합의된 민주당 특대위 안






















내용 의미와 장 · 단점
상향식 공천 당원이 후보를 직접 선출하고 중앙당은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재선정 요구 정당 민주화에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으나, 당원의 수준과 자격이 논란거리
집단지도체제 총재직 폐지하고, 최고위원회의를 합의제 의결 기구로 한 집단지도체제 1인 보스 체제 타파할 수 있으나, 지도력 부재로 인한 혼란 가능성
당 · 정 분리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를 분리 국회의 독립성 신장시키는 방안이나, '피선거권 제한'이 논란거리
국민경선제 대의원 · 당원 ·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후보 선출 당 지도부와 지구당위원장의 영향력 줄이고 국민 참여 폭 넓히는 안. 국민들의 참여율 저조 · 위장 당원 양산 등 우려


개혁파 모임, 별도 쇄신안 제출


특대위 안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현재 정치권 전반에 퍼져 있는 '이회창 대세론'은 반DJ 정서에 힘입은 것이 사실. 민주당이 쇄신에 성공할 경우에도 이회창 총재가 지지율에서 압도적 1위를 고수할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쇄신에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민주당 특대위는 빠른 시일 안에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 시기를 잠정 결정한 뒤, 그 동안 논의해온 결과를 정리해 12월18일 전후에 열리는 임시 당무회의에 상정할 계획이다. 여기를 통과하면 특대위 안은 현실로 확정되며, 당은 전당대회 준비 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물론 한화갑·김근태·정동영 상임고문 등 일부 대선 주자와 쇄신연대 소속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1월 전당대회를 주장하고 있어, 막판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화갑 고문측의 입장이 완강하다.


한고문측은 대선 후보와 당 지도부 경선에 중복으로 출마하는 것을 금한 특대위 안이 '공민권 제한'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당헌대로 내년 1월에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쇄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이들은 1월 전당대회를 위한 서명운동이나 당무회의에서의 표 대결 불사 방침도 밝히고 있다.


김근태 상임고문이 '30%로 제한된 일반 국민들의 선거인단 참여 폭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이해 관계에 따른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선거인단 구성과 투표 방법이 너무 복잡해 시행 과정에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진단도 있다.


개혁파 모임인 쇄신연대가 특대위 안과 별도로 쇄신안을 제출하기로 한 것도 변수다. 쇄신연대 안은 총재직·최고위원제·당무회의를 폐지하고, 조직·재정·선거 대책은 중앙집행위원회가, 정책·이념·노선은 의원총회가 최고결정권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특대위 안을 따라야만 민주당이 살 수 있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고 있어 대세를 바꾸지는 못하리라는 것이 민주당 안팎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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