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경선도 '돈 먹는 하마'
  • 안철흥 기자 (eqigon@e-sisa.co.kr)
  • 승인 2001.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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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돈 선거' 시비 벌써 활활…
예비 주자들, 한 달 1억∼3억 원 지출
사례 하나. "한 달 밥값만 3천만원씩 들었다." 1997년 신한국당 '9룡' 경선 때 한 대선 주자의 측근으로 일했던 인사의 말이다. 이 주자는 경선 초반 불의의 사고로 중도 포기했는데, 그 때까지 조직 관리비와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매달 2억원 가량을 썼다.


사례 둘. 당시 승리자였던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경선 직후 약속대로 경선 비용을 공개했다. 그가 공개한 액수는 1억5천만원. 그러나 이 액수는 이총재가 경선 캠프로 썼던 사무실의 한달 전화 사용료만 3천9백여만원에 달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오히려 불신만 조장했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는 '신한국당 다른 후보들이 이대표가 사용했다고 주장한 비용만 합해도 최소 11억9천만원이 된다'며 정치 공세에 나섰다.


사례 셋. 1997년 7월 말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방에서 10만원권 자기앞 수표 100장이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이 '눈 먼 돈'의 임자는 신한국당 서 아무개 의원. 그는 당시 한 당내 경선 주자의 선거운동본부를 이끌던 인물이었다. 선거운동본부 운영비·식사비 등 경선 비용에 보태고자 했던 돈이라는 것이 그가 밝힌 돈의 용도였다.




민주당 쇄신·발전 특별대책위원회가 3월 경선을 결정함에 따라, 민주당도 본격적인 경선 분위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경선은 여당이 된 뒤 처음 치르는 것이자, 'DJ 없는' 최초의 경선. 따라서 어느 경선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다. '돈 선거' 시비가 벌써부터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 과연 민주당 대권 주자들이 치러야 할 '경선 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대규모 후원회이다. 김중권 상임고문은 11월15일 대구에서 1만5천여명이 참석한 후원회를 열고, 경선 참여를 선언했다. 노무현 상임고문도 부산·광주·대구를 거쳐 12월11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전국 투어 후원회의 대미를 장식했다. 김근태·정동영 고문도 최근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한화갑 상임고문은 후원회 규모를 한 단계 높였다. 11월5일 부산에 이어, 11월20일 서울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두 번째 후원회를 열었는데, 서울 행사는 민주당 전당대회보다 더 큰 규모였다. 한고문측은, 전국에서 1만6천여명이 버스 4백대에 나누어 타고 상경했으며, 개별 참석자를 합치면 2만명이 훨씬 넘었다고 밝혔다.


최근은 아니지만, 대규모 행사의 '효시'는 이인제 상임고문. 이고문은 지난 4월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행사장에서 1만5천여명을 끌어모아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 후원회를 열었다.


이런 행사는 후원금 모금보다 세를 과시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에서 당원들을 동원하는 것은 기본. 버스 한 대당 1백20만원 정도가 든다. 4백대를 동원할 경우 '동원비'만 5억원 가까이 소요된다. 4월에 후원회를 연 이인제 고문은 후원회를 통해 5억5천31만원을 모금했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액수로만 따지면 모금액보다 지출액이 큰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사무실 확장도 최근 추세다. 여의도 ㅈ빌딩에 개인 사무실을 두고 있는 이인제 고문은 최근 조직과 공보팀이 입주할 새 사무실을 물색 중이다. 이고문은 이 두 곳의 '직할 캠프' 외에도, 박범진 전 의원이 운영하는 '마포사무실'과 21세기산악회 사무실을 사실상의 캠프로 활용하고 있다. 한화갑 고문도 한미포럼 사무실을 경선 캠프로 사용하다가 최근 여의도 ㄷ빌딩에 새 사무실을 마련했다. 노무현 고문은 지방자치연구원에 둥지를 틀고 있고, 김근태 고문은 한반도재단 사무실을 공식 캠프로 쓰고 있다. 김중권 고문도 서대문 변호사 사무실 외에 여의도에 새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본격 경선 채비를 갖추었다.


이들 사무실에는 10∼30명에 이르는 보좌진이 상주하고 있다. 1997년 신한국당의 한 주자 캠프에 참여했던 ㅇ씨는 당시 상근자들이 2백만∼3백만 원씩을 월급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민주당 주자들은 '월급 상근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한화갑(1백50여만원)·김근태(100여만원) 캠프 정도만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을 뿐,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부분 활동비나 신용 카드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 활동에는 지장이 없는 편. 사무실 한 곳을 운영하는 데 최소 5천만∼1억 원 정도 든다는 것이 정설이다.


요즘 하루 평균 2∼3개씩 열리는 의원 후원회도 대선 주자들에게는 '돈 쓰는 곳'으로 통한다. 당원과 대의원이 수백 명씩 모여 있어 눈 도장 찍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얼마 전 후원회를 열었는데 ㄱ 주자가 3백만원, ㄴ·ㄷ 주자는 100만원씩 보내왔다고 밝혔다. 의원 끌어들이기, 혹은 계보 만들기에도 불꽃 튀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대변인을 지낸 한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한 유력 주자가 만나자고 해서 가보니 도와 달라며 봉투를 내미는데, 생각보다 동그라미가 하나 더 있더라"고 경험담을 말하기도 했다. 대중 강연이나 지구당 행사도 무시할 수 없는 항목. "지방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천만원이 넘게 든다." 한 대권 주자 측근의 하소연이다.


경선 본격화하면 매달 20억∼30억 지출 예상




그러나 이것은 새 발의 피라는 것이 경험자들의 말이다. 한 대권 주자 측근은 지난해 8·30 전당대회를 상기시키면서 "행사비나 사무실 운영비는 경선 비용의 30% 정도일 뿐 '돈 먹는 하마'는 조직 관리비라고 불리는 지구당 관리비용이다"라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조직 관리비를 정기적으로 지출하는 캠프는 아직 별로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화갑 고문이 16개 광역 시·도 별로 조직책을 두고 있으며, 이인제 고문 정도가 비슷하게 조직 가동을 하고 있을 뿐, 대다수는 지역 조직을 꾸릴 여력이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개혁 그룹에 속하는 한 주자의 측근은, 최소한으로 아껴서 지출하는데도 한 달에 1억원 가까이 나간다고 말했다. 한 달 평균 3억원 이상을 쓰는 후보도 있다고 한다. 민주당 주변에는 '경선이 본격화하면 매달 20억∼30억씩, 모두 100억원 가까이 쓰는 후보도 나올 것'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대선 주자들은 경선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까. 최근 증권가에는 10·25 보궐 선거 이후 ㅅ그룹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줄을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업에 자금줄을 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민주당 주자는 이인제·한화갑 고문 정도. 물론 소문만 떠돌 뿐 속 시원히 내막이 밝혀진 적이 없다. 평소에는 3억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6억원까지 정치 자금을 모금할 수 있지만, 이 액수만으로는 경선을 치를 수 없는 것이 현실. 탈법은 기본이고, 따라서 '돈의 출처'는 보좌진도 모르는 1급 비밀이 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몇몇 주자는 법을 고쳐서라도 돈 선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상천 고문은 "대선 주자들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라며 선거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김근태 고문도 100만원이 넘는 정치 자금은 수표로 받도록 하고, 경선 관리를 중앙선관위에 위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돈 선거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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