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인가, 정략인가
  • 이숙이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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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범주류, 조직책 선정 ‘쓴맛’…“동교동계의 멀리 보기 작전”

"은평 갑 원천 무효!"


1월23일 아침. 하얀색 머리띠를 두른 남녀 2백여명이 순식간에 민주당
당무회의장을 점거했다. 동교동계 조재환 의원(전국구)이 은평 갑 조직책
선정에서 떨어진 것을 항의하러 온 조의원 지지자들이었다. 이들은 ‘재심을
통해 결정을 번복하지 하지 않을 경우 지구당 개편대회를 거부하겠다’며
5시간 넘게 농성을 벌였다. 이런 장면은 여의도 정가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소동의 주역이 ‘비주류’가 아닌 ‘주류’였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이다.



민주당 조직강화특위는 지난 1월22일 38개 사고 지구당에 대한 조직책을
선정했다. 올해 6월과 12월 치러지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최전방 사령탑을
정비하자는 취지였다. 각 계파와 대선 주자 진영은 자기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심으려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정가에서는 조직강화특위 위원
9명 가운데 동교동계 구파이거나 이인제 고문과 가까운 범주류가 5명이나
되어 대부분 이들의 뜻이 관철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변이 속출했다. 특히 경합이 치열했던
은평 갑과 마포 을에서는 쇄신파인 이미경 의원과 유용화 국회 정책연구위원이
동교동계인 조재환 의원과 김방림 의원을 꺾는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새로운 권력 질서 형성 과정” 시각도


이미경 의원이야 의정 활동이 돋보이는 재선 의원인 데다, 한나라당에서
입당했고 여성이라는 점이 가산점을 얻었다고 해도, 무명의 중앙당 국장
출신이 두 현역 의원을 제치고 서울에 입성한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마포 을에는 김방림 의원과, 한화갑 고문과 가까운 김화중 의원, 노무현
고문 캠프에 몸 담고 있는 남영진 전 기자협회장과 유종필 공보특보,
이인제 고문과 가까운 모 대학 총장 등 11명이 등록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노동자 신문 기자, 광고기획사 대표 등을 하다 1998년   3월 정당에
들어온 유씨는 중앙당 당직자 2백명의 지지 선언을 배경 삼아 도전장을
냈다. 예심 통과자 5명을 대상으로 한 1차 투표 결과는 김방림 3, 유용화
3, 김화중 2, 남영진 1. 결선 투표에서는 유씨가 5 대 4로 김의원을
이겼다.



이인제 고문 진영의 김윤수 언론특보가 경기도 파주에서 탈락한 것도
의외로 꼽힌다. 김씨는 16대 총선 당시 자민련 후보로 이 지역에서 출마한
경력이 있는 데다, 이고문이 상당히 세게 민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파주는 광명과 함께 위원장 직무대행이 선정되었는데, 이는 이재달 보훈처장과
남궁진 문화관광부장관이 복귀하는 데 대비한 것이라는 후문이다.


야당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담당했던 마포경찰서장 출신 김원석씨도
경기도 분당 갑에 신청했다가 탈락했다. 조직강화특위는 적임자가 없다며
유일하게 분당 갑만 조직책 선정을 보류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변을 두고 민주당에 새로운 권력 질서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 직에서 사퇴한 후
범주류의 결속력이 약해진 반면, 서로 이해 관계가 다른 다양한 세력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진공 상태를 메워 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동교동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어중간하게 밀어붙였다가 역풍을 맞기보다, 진짜 힘쓸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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