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풍언씨, 무기 거래로 ‘떼돈’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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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흥물산 ‘계약 실적 명세’ 단독 입수/미국 ITT사 ‘대리인’ 맡은 뒤 판매 급증



"조풍언씨가 다수의 군납을 성사시키게 된 경위와 과정을 밝혀라.” 재미사업가 조풍언씨(62)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은 2월19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조씨의 배후에 대통령의 아들들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전날 같은 당 홍준표 의원이 “법무부장관은 삼일빌딩 특혜 매각 비리, 조풍언-김홍걸 커넥션을 수사할 용의가 없느냐”라고 물은 데 뒤이은 의혹 제기였다. 한나라당 이재오 총무는 조씨와 관련한 여러 의혹을 추적하고 있다고 언급해 올 한 해는 조씨에게 험난한 해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주류 도매상으로 부를 쌓아 로스앤젤레스에서 가든스위트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조씨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99년. 조씨가 그 해 7월 경기도 일산에 있는 김대통령의 사저를 6억7천만원에 사들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전남 목포 출신인 조씨는 어릴 때 김대통령 이웃집에 살았으며, 김대통령은 젊은 시절 조씨의 부친이 운영했던 선박 회사에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은 조씨가 주목되는 이유를 한마디로 돈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김대통령과 남다른 관계인 조씨가 무기 거래 등을 통해 거액의 정치 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린다 김 “정권 바뀐 뒤 조씨가 나를 배신했다”


조씨와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는 무기 수입 업체는 기흥물산이다. 조씨는 1973년 레이더와 통신장비를 수입해 국방부에 납품하는 이 회사를 설립해 1975∼1989년 대표이사를 지냈다. 조씨는 그 이후 자신은 이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국회 국방위 관계자들은 이 회사의 사실상 소유주를 조씨로 보고 있다. 미국의 레이더 통신장비 업체인 ITT 길피란(Gilfillan)사 대리인으로 활동했던 조씨는 1997년 7월12일 이 회사와 계약을 맺을 때 계약서에 자기 직책을 ‘기흥물산 회장’이라고 적었다. 조씨와 기흥물산의 남다른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97년 ITT사와 2년 계약을 맺은 조씨는 한번 더 계약을 연장해 2001년 6월30일까지 대리인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흥물산이 폐업 신고를 한 날짜가 2001년 6월29일.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조씨의 대리인 자격 만료와 폐업 시기가 겹친다. 국방부에 따르면 기흥물산은 2000∼2001년 2년 동안 무기 구매를 하는 무역대리점 가운데 제이엔에스 엔터프라이즈와 씨스텍코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계약액을 올렸다.





주목되는 점은 조씨가 ITT사의 대리인이 되고 난 뒤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무역대리점 계약 실적 명세(업체별)’(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ITT사가 기흥물산을 통해 한국에 무기를 판 금액은 1998년 12월 이후 2000년 12월까지 2년간 1천6백22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32쪽 표참조).

기흥물산은 조씨가 ITT사의 대리인이 되기 전인 1996년과 1997년 상반기에는 ITT사의 무기를 단 한 건밖에 팔지 못했다. 그런데 조씨가 대리인이 된 뒤에는 판매 건수가 7건으로 늘어났고 금액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조씨는 ITT사로부터 한국에 무기를 팔 경우 그 대가로 커미션을 받기로 했는데, 5천만 달러를 초과해 팔면 판매액의 4%를 커미션으로 받기로 했다고 한다. 이 계약대로라면 ITT사의 무기를 한국에 1백30억 달러 이상 판매한 조씨는 70억여 원을 커미션으로 챙겼을 것으로 보인다.


이신범 전 의원은 1999년 5월 국회 국방위에서 “린다 김의 활동이 부자연스럽게 된 시점에 조풍언씨가 무기 구매 사업의 일부를 인수하기 시작한 정황이 있다. 조씨는 현정권 출범 후 무기 거래 쪽에서 크게 성장했다”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무기 로비스트로 유명한 린다 김씨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때 내 밑에서 에이전트 일을 하며 내 덕을 봤던 조씨가 정권이 바뀐 뒤 나를 배신했다”라며 이씨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조씨, ‘축구 복표 사업’ 진출도 노려





물론 민주당에서는 이런 주장을 극력 반박하고 있다. 김현미 부대변인은 조씨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터무니없다는 성명을 냈다. 동교동계 한 핵심 인사도 조씨가 현정권 들어 처신에 상당히 조심했다며 조씨를 옹호했다.
하지만 조씨는 무기 거래말고도 돈이 되는 여러 사업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축구 복표 사업(이른바 스포츠토토 사업)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1999년 조씨가 축구 복표 사업을 추진했던 한 업체의 고위 인사와 몇 차례 만나 협상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조씨가 2백억원을 투자할 테니 25% 지분과 서울 등 일부 지역본부의 운영권을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이 사업에 여러 사람이 투자하겠다고 뛰어들던 때여서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조씨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제기된 의혹은 삼일빌딩·대우정보시스템 매각과 관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삼일빌딩은 건물 임대 보증금만 7백61억원인데 조씨에게 5백2억원에 판 것은 헐값에 판 것이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측은 변호사와 인수 협상을 해서 실질 인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두 차례나 매각 협상이 유찰되는 바람에 감정가보다 낮게 수의 계약으로 팔렸다고 해명했다.


조씨는 또 대우그룹 부도 직전인 1999년 6월, 홍콩에 있는 투자회사인 홍콩KMC를 내세워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식 71%를 2백50억원에 사들였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해 대우그룹이 부도를 막기 위해 조씨를 내세워 현정권 핵심부와 접촉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씨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위기에 몰리자 매물을 사라고 적극 권유했다며 오히려 대우측을 도와주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렇듯 조씨와 관련해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지는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계산을 하고 있는 흐름도 눈에 띈다. 이미 군의 정서가 한나라당 쪽으로 돌아서 있는 만큼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조씨와 관련한 한나라당의 전략은 ‘계속 의혹을 제기해 김대통령을 압박하되 군을 시끄럽게 하는 일은 피하자’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조씨는 지난 1월6일 김홍일 의원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이 불거진 1999년 말 이후부터 미국 전화 번호를 수시로 바꾸며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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