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힘 빼는 이회창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5.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귀족 이미지 탈피·지도자 비전 제시 등 주력…“부산시장 선거에서 노풍 차단” 기대


"노풍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동안 여러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았는데, 노무현이 뜨니까 이회창 전 총재가 단단히 마음을 바꾸어 먹은 것 같다.”



한나라당 핵심 인사의 말이다. 확실히 이 전 총재는 변했다. 최소한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렇다.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때우며 장급 여관에서 잠을 잤고, 경선장 주변의 재래 시장 등을 꼬박꼬박 방문했다. 그가 10일 이상을 지방에 머무르며 숙식한 것은 1995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처럼 노풍이 이씨에게 준 충격은 컸다.



이회창 전 총재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면서 측근들은 그가 노풍의 충격에 더 오래 잠겨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강한 주사를 맞았는데 대선 때까지는 약효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참모는 노후보와의 격차가 좀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자 다시 일부에서 서서히 낙관론이 고개를 드는 기미가 보인다고 걱정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두 사람간 지지율 격차는 한때 28%까지 차이가 났으나, 최근에는 10% 정도로 좁혀졌다.



한나라당 전략가들은 앞으로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후보 이회창’을 부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우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기’이다. 전략 기획을 담당하는 한 당직자는 이씨가 1995년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운동권 학생들로부터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며, 당시 국민들이 그에게 바랐던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당이라는 틀에 묶여 있어서 제약이 있었던 만큼 지금부터는 일정하게 개혁적인 이미지와 깨끗한 이미지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참모들은 ‘빌라 게이트’가 터진 이후 귀족 이미지를 탈피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이씨를 압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요즘 연설 때마다 자신의 피난 시절을 얘기하며 박봉의 공무원 가정에서 자랐다고 강조하고 있고, 택시 기사들과 식사하거나 봉사 활동을 하는 등 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가 늘 일정에 들어 있다. ‘수재가 아니라 노력형’이라는 평가를 받은 중학 시절 성적표를 공개한 것도 이런 고려가 있어서였다. 윤여준 의원은 “이벤트가 아니라 그것이 이회창의 원래 모습이다”라고 말한다.



전술적으로는 대선 후보와 당의 역할을 철저히 구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박관용 총재대행이 중심이 된 당은 ‘아들 게이트’를 공격하면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검증 작업을 주도하고, 대선 후보는 비전을 제시해 믿음직한 지도자 상을 심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5월 중순으로 예정된 국가혁신위 보고서 발간을 대선 후보가 중심이 되어 국민보고대회 형식으로 치르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씨는 특히 경제·과학·청년·교육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며 혁신위 담당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거품 빠질 것” 은근한 희망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 전략가들은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최근 연달아 실책을 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를 낙점해 달라고 한 일이나, 정계 개편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든다. 국민 경선으로 뽑힌 후보가 전직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며, 나중에 책임지기 어려운 말들을 뱉어내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후보의 거품은 빠지고 이씨에 대한 지지는 높아져 5월 말∼6월 초면 두 사람에 대한 지지도가 팽팽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회창씨측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승패가 노풍의 향후 파괴력을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부산 지역 의원 17명이 모여 노후보를 규탄하는 성명을 낸 것이나, 서청원·김진재 의원과 김명윤 고문 등 ‘친 한나라당’ 민주계 인사들이 상도동을 문턱이 닳도록 찾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인사는 일부 의원이 노후보 쪽으로 이탈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염두에 두고 부산시장 선거를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