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왜 ‘님’을 부르는가
  • 안철흥 기자 (epigon@sisapress.com)
  • 승인 2003.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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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인사에게 공식 호칭+높임말 사용…“수평적 정치 문화 만들기 일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적 호칭을 즐겼다. 상도동계 인사들한테는 웬만하면 그냥 이름을 불렀고, 그것이 ‘신뢰’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가 빠져서인지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는 조금 달라졌다.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은 “청와대 시절까지는 ‘영춘아’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김의원’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YS는 이름 부르고, DJ는 직책 불러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철저하게 직함을 부르는 스타일이다. 동교동계 가신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권위원’으로,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한대표’ 등 직책으로 불렀다. 목포상고 후배인 민주당 이훈평 의원은 “어렸을 때 잠깐 ‘어이, 훈평이’라고 부른 적이 있지만, 당에서 국장을 맡은 다음부터는 철저하게 ‘이국장’ ‘이의원’ 등으로 불렀다”라고 말했다. DJ에게는 이런 것이 카리스마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노무현 당선자는 두 김씨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에 더 가까운 편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존칭을 쓰고, 공식 호칭을 즐긴다. 다만 측근들에게는 옛 호칭이나 사적 호칭을 가끔 쓰기도 한다. 가령 김원기 고문에게는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통추 시절 직함인데, 동지적 애정이 담긴 표현이다. 이강철 특보에게는 ‘이위원장’이라고 하는데, 민주당 위원장 시절부터 부르던 호칭이다. 염동연 특보를 ‘염총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연청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 젊은 참모들에게는 주로 ‘씨’를 붙인다. 안희정 전 정무팀장은 ‘희정씨’, 이광재 기획팀장은 ‘광재씨’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에게는 공식 호칭에 높임말을 곁들여 사용한다. 이런 말투는 후보 시절 ‘딱딱하고 무뚝뚝하다’ ‘잘 사귀지 못한다’는 오해를 낳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DJ만한 카리스마도 없고, 당내 주류도 아니면서,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도 않는 그의 처신이 계보 정치에 익숙한 의원들 눈에는 이상하게 비쳤던 셈이다. ‘친노파’에 속했던 임종석 의원도 당시 “가까워진 지 한참 지난 뒤에도 전화를 걸어 ‘임의원님, 저 노무현입니다’라는 식으로 말해 참 어려웠다”라고 말했을 정도.



주변에서는 이런 모습이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과거 정치와 달라야 한다’는 노당선자 나름의 원칙에서 말미암은 바가 크다고 말한다. 양김이 호방한 보스나 꼼꼼한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며 권위주의 정치 문화를 이끌었다면, 노당선자는 수평적인 정치 문화를 실험하는 첫 리더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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