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시장에서 싸우는 ‘통 큰’ 맥주들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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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ℓ 대용량 페트병 출시…하이트·OB, ‘용기 전쟁’ 불붙어
국내 양대 맥주회사가 ‘말랑말랑한 맥주병’을 들고 전쟁을 벌인다. 지난 11월 중순, 하이트맥주와 OB맥주가 나란히 대용량 페트(PET)병 맥주를 내놓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이 제품명은 각각 ‘하이트 피처’와 ‘OB 큐팩’이다. 두 회사는 할인매장과 편의점을 중심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두 제품의 용량은 1.6ℓ. 500㎖짜리 3병을 합한 것보다 100㎖가 더 많다. 500㎖ 3병을 기준으로 할 때 가격은 3백원 가량 싸다. 무게는 1.6㎏으로 500㎖ 3병의 절반 수준.
소비자들은 처음 보는 대용량 페트병을 신기해한다. 그러나 최대 관심은 역시 ‘맛’. 혹시 콜라처럼 오래 보관하면 ‘김 빠지는’ 것이 아닐까. 맥주는 다른 청량 음료보다 민감하기 때문에 산소에 닿으면 산화해 맛이 쉽게 변하는데 두 회사는 자신만만하다. 두 회사는 “유리병 맥주와 맛은 똑같다. 90일 동안 맥주 맛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페트병 맥주가 맛을 유지할 수 있는 첫 번째 비밀은 병 뚜껑에 있다. 페트병 맥주에는 ‘스커트’가 달린 뚜껑(뚜껑에 있는 톱니 모양이 치마 주름같이 생겼다 해서 스커트라고 부르는데, 메이커에 상관없이 주름 숫자가 21개이다) 대신 스캐빈저 캡을 사용한다. 이 캡은 마시고 남은 맥주를 보관할 때, 페트병 안에 있는 산소를 흡수해 산화를 방지한다.

두 번째 비밀은 용기 재질에 있다. 기존 청량 음료 페트병은 숨을 쉬기 때문에 탄산이 유실되고, 산소가 침투해 맛을 변하게 한다. 한마디로 맥주 용기로는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페트병은 특별하다. OB맥주는 탄산 유실을 막기 위해 철·레진·나일론을 특수 처리해 만든 0.3㎜ 두께 신소재를 사용한다. 하이트맥주는 일반 페트 재질 사이에 산소와 탄산가스를 차단하는 3중막 재질을 사용했다. 둘 다 갈색이고, 일반 페트병보다 두껍다.
유럽은 플라스틱병 맥주가 이미 맥주 시장의 15∼30%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페트병 맥주가 상대적으로 늦게 출시된 데는 이유가 있다. 맛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용기 제조 기술과 페트병 맥주는 청량감이 떨어질 것이라는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 때문이었다. 여기에 음주 문화의 차이도 한몫을 했다.

유럽에서는 주로 병을 들고 마신다. 그런데 유리병을 입에 대고 마시는 것보다 페트병을 입에 대고 마시는 것이 안전하다. 그래서 버드와이저·밀러 등은 330㎖, 500㎖ 등 소용량 페트병을 생산한다. 반면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피보팩’은 대용량 페트병을 이용한다. 겨울철에 맥주병이 동파될까봐 보관용으로 대용량 페트병을 생산하는 것이다.

‘건배하고 따라주는’ 술 문화 감안

그에 비해 한국은 건배 문화이다. 젊은층은 맥주병을 들고 마시기도 하지만 30대 이상은 대부분 맥주를 잔에 따라 ‘건배하고, 따라주며’ 마신다. 이번에 두 맥주회사가 소용량말고 대용량 페트병을 먼저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음주 습관을 감안해서다.

두 회사가 페트병 맥주를 비수기인 겨울에 출시해 ‘용기 전쟁’을 치르는 것은 이례적이다. 맥주 회사들은 통상 신제품을 4월을 전후해 출시한다. 맥주 소비량이 4, 5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여름에 절정에 이르고, 가을부터 내리막을 타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11월 신상품’을 낸 것은 연말 ‘반짝 특수’를 위한 것이지만 맥주 시장 성장세와도 관련이 있다. 국내 맥주 시장은 41억병 시장(2002년 기준). 업소용이 50%, 가정용이 50%로 가정용 소비가 늘고 있다. 올해는 날씨와 불황 때문에 올해 맥주 시장이 3∼4% 마이너스 성장을 했기 때문에 송년 모임을 빌려 반전을 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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