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대신 파리 날리네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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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위기’ 지방 공항, 탑승객 없어 개점 휴업…고속철 개통되면 적자 ‘눈덩이’
퀴즈 하나. 경북 예천에는 민간 공항이 있을까 없을까. ‘있다’고 대답해도 맞고, ‘없다’고 해도 맞다. 예천공항은 지난 9월14일 예천-제주간 비행기를 띄우고 나서 민간 항공기를 단 한 편도 운항하지 않았다. 공항 기능을 상실한 공항. 그래서 예천공항은 공항인데, 공항이 아니다.

지난 11월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예천공항까지 자동차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30분. 도심을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을 빼면 3시간이면 가능하다. 예천공항 앞 주차장(2백80대 수용)은 텅 비어 있었다. 하늘에는 전투기가 오갔다. 예천공항은 군 비행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공항 내부 시설은 현대식이었다. 1997년부터 계류장·청사·주차장을 짓기 시작했고, 지난해 12월 완공했다. 총공사비는 3백86억원. 완공 9개월 만에 운항이 잠정 중단된 예천공항은 썰렁했다. 공항에는 유지·보수에 필요한 최소 인력만 상주해 있었다. 인터넷룸·유아 휴게실·특산품 판매점은 불이 꺼진 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1층 로비 안내 데스크에는 ‘아름다운 문경 음식 관광 길잡이’ ‘관광 안동’ ‘예천 농·특산물 안내’ ‘제주 관광 가이드’ 등 여행 안내서가 차곡차곡 놓여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이 예천-제주 노선을 잠정 중단한 이유는 간단하다. 탑승자가 없기 때문이다. 1997년에는 하루 여섯 번까지 항공편이 운항되었으나 2001년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항공 수요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항공 이용객이 줄자 항공사들이 노선을 폐지하기 시작했다. 2002년 8월부터 예천-제주 비행기가 하루 한 편 운행되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좌석 이용률은 45.6%. 1백48인승 비행기가 절반이 빈 채 예천과 제주를 오갔다. 애초 항공사가 취항할 때 좌석 이용률이 70%를 밑돌 경우, 지자체가 손실금을 일정 부분 보전하기로 기본 협정을 맺었다. 손실금은 대략 1년에 10억원 미만. 그런데 경북도의회가 손실금 지원을 부결했다. 마지막까지 예천-제주 구간을 운항했던 아시아나항공은 2004년 5월13일까지 노선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전기 요금조차 못내는 지방 공항 많아

예천공항은 수익성 위기에 처한 지방 공항의 현주소를 잘 드러낸다. 현재 15개 지방 공항은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0월 한국공항공사가 임인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5개 지방 공항은 200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3년6개월 동안 1천6백60여억원 적자를 냈다. 올해 상반기 양양국제공항은 월 6천3백만원씩 영업수익을 벌어들였다. 월 평균 전기요금이 3천5백만원이니까, 두 달치 전기요금도 내기 힘든 액수이다.

지방 공항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당국의 판단 착오에 있다. 공항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건설교통부가 1999년 12월 마련한 공항 개발 중장기 기본 계획을 들여다보자. 건교부는 예천·강릉·속초 등 10개 지방 공항 시설이 한계 용량에 도달했고, 특히 예천공항은 항공 수요가 1999년 17만명, 2005년 59만명, 2010년 94만명, 2020년에는 1백31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난 9개월간 예천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1만8천명에 불과했다.

공항 개발 계획의 대실패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강릉공항을 보자. 이 계획에 따르면, 강릉공항은 영동권 남부 지역의 지방 공항으로서 양양공항과 상호 보완 체제를 구성하도록 육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강릉공항은 불과 3년 뒤인 2002년에 폐쇄되었다. 건설교통부의 항공 수요 예측은 너무나 빗나갔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한국공항공사를 담당했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솔직히 정부의 항공 수요 판단은 믿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합리적인 수요 예측에 따라 공항 개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가 작용해 과잉 투자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실패한 공항 개발의 대명사’ 예천공항은 1989년 처음 민항 시설이 설치될 때 지역 국회의원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가로 건설되고 있는 울진공항·무안공항·김제공항은 모두 대통령 후보의 공약 사항이었다. 이들 공항 건설에는 막대한 예산이 책정되었다. 울진공항에 1천2백57억원, 무안공항에 2천8백7억원, 김제공항에 1천4백74억원씩 각각 책정되었지만, 이들 공항이 제구실을 할지는 알 수 없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지금 있는 공항도 파리를 날리는데, 새로 건설되는 공항에 얼마나 운항이 이루어질지 부정적이다”라고 말했다. 2004년 4월 고속철도 시대가 열리면 지방 공항에는 더더욱 먹구름이 낄 전망이다. 외국에서도 고속철이 개통되자 항공기 뜨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프랑스와 일본은 고속철이 개통하고 나서 항공 점유율이 50% 이상 감소했다. 파리에서 런던까지 고속철이 도입된 이후 1993년에서 1998년 동안 항공 수요는 약 75% 감소했다.

철도청에 따르면, 경부고속철이 1단계로 개통(대구∼부산 및 일부 구간은 기존선 활용)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은 2시간 40분으로 줄어든다. 철도청은 ‘2010년 전구간이 완공되면 7개 중간역에서 모두 정차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30분대에 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교통개발연구원의 한 자료에 따르면, 고속철이 개통되면 고속철 주변 공항이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항은 대구공항. 대구공항은 내년부터 항공 수요가 6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부산공항은 2011년까지 45%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항공사의 항공 수요 감소는 승객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대한항공이 외국 사례를 근거로 예상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구 노선은 80% 이상, 서울-부산 노선은 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대한항공은 고속철이 개통될 경우, 해당 노선 구조 조정(서울-대구 운항편수 80% 감축, 서울-부산 40∼50% 감축, 간접 영향권 공항 20%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아시아나항공도 감축을 고려하고 있다.

고속철 개통이라는 악재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한국공항공사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실성을 결여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측은 1999년 12월 건설교통부가 마련한 제2차 공항개발 중장기 기본 계획을 근거로 고속철도 개통 후에도 전국의 항공 수요가 상당 기간 2001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한국공항공사는 국제선을 유치하고, 국내선 수요가 감소하면서 생기는 여유 시설을 활용한다는 지방 공항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 공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한시적으로 국고에 귀속되던 국내선 이용료(7백억원 가량)가 2004년부터 공항공사로 들어오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적자 폭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서상 계획’에 전문가들은 냉담한 반응이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국제선을 유치한다지만 적자를 감수하면서 지방 공항에 국제선을 배정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김포공항처럼 주변 교통이 발달한 곳이라면 쇼핑몰·영화관·컨벤션센터를 유치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지방 공항의 위치는 외지고 교통이 불편해 이마저도 쉽지 않다(박스 기사 참조). 아시아나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해당 지자체나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불한다면 항공사도 지방 공항을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본의 중소 공항처럼 국제선을 유치해 탑승률이 저조할 경우, 해당 지자체가 항공사의 손실금을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보조금 제도도 논란 소지 커

지난 11월 중순 강원도와 양양·속초 등은 양양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해 여객 탑승률이 70% 미만일 경우, 항공사측에 손실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원주공항도 지자체에서 손실금을 보전해준다. 그러나 보조금 제도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당장 지자체에서 ‘왜 우리가 손실금을 보전해야 하느냐’고 반발할 경우에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교통 전문가 가운데는 ‘저비용 소형기종 도입’을 주장하기도 한다. 수용 인원이 100명 이내인 소형 비행기를 도입해 지방 공항을 활성화하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항공사는 소형 기종 도입에 부정적이다. 9·11 테러와 사스 등으로 인해 신규 투자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는 “지금 상태에서 소형 기종을 도입할 경우 신규 투자뿐만 아니라 기존 대형 비행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까지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관계자는 “국내선은 제주 노선을 포함해서 전노선이 적자다. 국내선 전용 소형 비행기를 검토하기는 했으나 추가 비용(도입·정비 등)으로 인해 보류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지방 공항 건설은 지역민의 숙원 사업이었다. 정치인들은 ‘균형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에 ‘공항’을 선물했다. 공항 개발 계획이 나올 때마다 ‘지역 차별’ 논란이 뒤따랐다. 하지만 고속철 개통을 앞두고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의 지방 공항은 ‘선물’에서 ‘애물’로 둔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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