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파 싸움’ 누가 이길까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7.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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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농그룹, 신동방그룹 합병·매수 극력 저지…인수 목적·자금 출처 베일
신동방그룹은 과연 미도파를 합병·매수할까. 신동방그룹과 그 우호 세력이 미도파 주식 37%를 매집하면서 불거진 미도파 합병·매수 파문은 현대·삼성·LG 그룹이 개입하면서 재계 전체로 파급되고 있다. 신동방그룹이 3월6일 ‘공개 매수 검토’를 선언하자, 미도파 소유사인 대농그룹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이에 맞섰다. 또 지금까지 신동방그룹 우호 세력으로 알려졌던 성원그룹이 중립을 선언하면서 미도파 파문은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도파 파문과 관련된 소용돌이가 물밑에서 조용히 일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6월. 홍콩 자본이 동방페레그린을 통해 비밀리에 미도파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미도파가 인수 대상이 된 데는 까닭이 있었다. 미도파는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데다, 대농그룹 25개 계열사의 지주 회사여서 미도파를 인수하면 대농그룹 전체를 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 자본은 올해 1월까지 미도파 지분율을 19.5%까지 끌어올리면서 대농그룹 경영권을 위협했다. 당시 대농그룹 박용학 회장 일가족이 지닌 미도파의 공식 지분은 17.9%밖에 안되었다. 경영권에 위협을 느낀 대농그룹은 급히 미도파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했다. 또 사모(私募)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해 우호 지분을 높이려 했다.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소유주가 원하면 주식이나 신주로 바꿀 수 있어 우호 지분을 늘리는 데 많이 사용된다. 대농그룹, LG종금·삼성생명 등에 SOS

홍콩 자본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솔라어프로치사를 비롯해 역외펀드 4개 사가 이의를 제기하며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이의 제기를 한 주인공은 동방페레그린이었다. 말레이시아 역외펀드 4개사는 동방페레그린과 공동 소유주인 페레그린 사가 100% 출자한 회사이다. 동방페레그린 폴 피비 고문은, 사모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하면 주가가 하락하고 의결권이 희석되어 소액 주주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법은 2월6일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금지했다. 미도파는 고등법원에 항고하면서 동시에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비밀리에 다시 발행하려 했으나 폴 피비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대농그룹은 즉시 반격에 들어갔다. 2월21일 미도파 주식 12.7%를 매입한 말레이시아 역외 펀드 4개사가 모두 동일인 소유라고 증권감독원에 진정하자 증권감독원은 즉시 조사에 들어갔다. 동일인이 특정 회사의 지분을 5% 이상 매집하면 증권감독원에 신고해야 하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증권감독원은 지금까지 외국인 자본이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투자 한도에 묶여 특정 기업 주식의 20% 이상을 매집할 수 없어 직접 국내 기업을 인수할 수는 없으나 매수할 의사를 표시한 다른 국내 업체를 지원할 수는 있다.

대농그룹은 12월까지도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미도파 고위 관계자는 사채업자 7~8명이 3~4.5%씩 매집한 것은 확인했다.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 일가 한 사람당 적게는 만주에서 많게는 3만주 정도를 가진 것도 확인했다. 따라서 혹시 동방페레그린 소유주인 신동방그룹이 아닐까 의심은 했지만, 대농그룹 박회장이 신동방그룹 신덕균 명예 회장과 동향이고 평소 친분이 있기 때문에 설마 신동방그룹이 대농그룹을 상대로 적대적인 합병·매수를 벌이지는 않으리라 판단했다.

2월1일 성원그룹이 미도파 주식을 대량 매집했다고 밝히자 사태는 돌변했다. 홍콩 자본이 가진 미도파 지분 20% 가운데 9.36%를 성원그룹 계열사가 인수한 것이다. 2월 하순 성원그룹 계열사인 성원건설이 2.88%를 추가 인수해 모두 12.24% 지분을 가지게 되었다.

3월4일 드디어 잠복했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려산업이 미도파 주식 1백31만주(지분 8.9%)를 평균 단가 3만원에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배합사료업체인 고려산업은 신동방그룹 신명수 회장의 동생인 신성수씨가 소유한 회사이다. 고려산업은 신동방그룹과 독립된 법인이지만, 신동방그룹 신덕균 명예 회장 일가가 41%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신동방그룹 계열사나 다름없다. 이로써 신동방그룹이 지닌 미도파 지분은 모두 13.24%가 되었다. 이어 1월9일 ‘당사의 미도파 인수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증권거래소에 공시했던 신동방그룹은 3월6일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서까지 ‘미도파 합병·매수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수정 공시했다.

곤경에 처한 대농그룹에 백기사(우호 세력)가 나타났다. 대농그룹이 3월6일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극비 작전 끝에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 5백억원어치를 LG종금·삼성생명과 현대그룹 계열사인 한국생명이 매입했다. 신주인수권부사채가 신주로 교환되면 1백67만 주에 이르기 때문에 대농그룹의 공식 지분은 38.57%로 높아진다. 다만 신주인수권을 7월1일 이후에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이로써 대농그룹은 8월 주주 총회에서 미도파 경영권을 신동방그룹에게 빼앗긴다 해도 후에 다시 찾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4월에 판가름 날 듯

하지만 대농그룹이 안심할 형편은 못된다. 대유증권 김경신 실장은, 신동방그룹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미 50% 이상 지분을 확보해 미도파 인수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방그룹과 우호 세력이 가진 미도파 지분을 모두 합치면 36%가 넘는데다, 동방페레그린이 가진 상품 주식과 차명으로 매입했다고 추정되는 미도파 주식을 합치면 50%가 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급등하던 미도파 주가가 7일 하한가를 기록한 것도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만일 신동방그룹이 미도파를 인수하려면 장외에서 미도파 주식을 공개 매수해야 한다. 신동방그룹이 공개 매수를 선언하면 지난 몇 달 동안의 주가 가운데 가장 높은 액수로 미도파 주식을 사야 한다. 만일 신동방그룹이 절반 이상 확보하고 있다면 공개 매수 예정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도파 주식을 가진 투자자가 앞다투어 팔자 주문을 낼 것이 파악된다.

신동방그룹은 왜 미도파를 인수하려는 걸까. 증권회사 투자 분석가들은 신동방그룹이 미도파를 인수하려는 의도와 자금 출처에 많은 의문을 제기한다. 대농그룹의 업종 구성이 유망한 것이 없는데다,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미도파를 인수해 보았자 별 소득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투자 분석가는 출처를 밝힐 수 없는 국내 자본이 홍콩으로 건너가 홍콩 자본으로 얼굴을 바꾸고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노태우씨의 비자금이 미도파를 인수함으로써, 유통업 진출은 물론 괴자금의 합법화를 꾀한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실제로 노태우 전 대통령 장남이자 신동방그룹 신회장 사위인 노재헌씨가 미도파 주식 만여 주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농그룹 종합조정실 전병삼 부장은 홍콩 자본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벌이는 농간에 성원과 신동방그룹이 물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합병·매수 대상 기업의 주가는 급등하게 되는데, 이때 시세 차익을 얻고 빠지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점에 착안하여 성원그룹과 신동방그룹이 미도파 주식을 매집했으나, 규모가 너무 커져 팔 곳이 없어져 아예 합병·매수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판단이다.

파문은 4월 개정 증권거래법이 발효되기 전에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반 투자자가 빠져나가 이제 신동방그룹과 대농그룹 간의 머니게임으로 압축되었다. 지금까지 양쪽이 쏟아부은 돈은 모두 2천2백억원에 이른다. 천억원 이상을 투입한 신동방그룹은 여론이 불리해질까 봐 신경쓰고 있다. 게다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대농그룹의 우호 세력으로 나섰다. 가뜩이나 자금이 달리는 대농그룹은 운영 자금 대부분을 주식을 매집하는 데 사용했다. 대농그룹이 승리해도 그 후유증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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