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97년 남미 경제, 먹구름
  • 하주현 (베네수엘라 거주·자유 기고가) ()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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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에서는 원주민 8천만명이 아직 굶주리고 있으며 빈곤층도 1억 8천만명에 이른다.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 불균형한 성장은 오히려 발전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라틴 아메리카는 금년에도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적 모순에 사로잡힐 것 같다. 새로운 투자 시장으로 떠오르면서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 그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여전히 기세를 부리고 있는 게릴라와 마약 밀매는 이 대륙을 불안하게 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이들 조직이 정부보다 더 강력한 권력 집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페루 주재 일본대사관 인질극이나 계속되는 멕시코 게릴라전만 보아도, 정정 안정은 거리가 먼 일임을 알 수 있다. 작년 12월 말 과테말라 정부와 게릴라 간에 평화협정을 맺어 40년에 가까운 내전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 협정이 최종적이고 안정된 평화를 보장하리라고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다.

‘꿈의 나라’ 미국에 대한 환상 만연

또 한 가지, 미국에 대한 동경이 중남미 전체에 만연해 있으며, 금년에도 환상과 두려움의 존재인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매년 연말 연시가 되면 이 ‘꿈의 나라’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으려는 여행객으로 공항이 대만원을 이룬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남아메리카 최북단에 있어 미국의 영향이 일상 생활에서까지 느껴지는 나라이다.

미국 유학 열기도 대단하다. 석사 학위는 되도록 미국에서 받으려고 유명 대학에 입학신청서를 내느라 정신이 없다. 이들에게 유럽은 멀고 구태의연한 대륙으로만 느껴지고 있으며, 나머지 국가에 대해서는 지리 시간에 대강 들어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정도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외화(外貨) 하면 당연히 달러를 뜻한다.경제 전망 또한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5%로 예상되고 있으나, 이는 인구 증가율보다 약간 높은 수치여서 실질적으로는 미미한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에서는 시장 경제와 민간 기업을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신자유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찬반이 엇갈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 별로 보면, 아직까지도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내에서 미국이나 캐나다를 상대해 당당하게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10년 가까이 7% 이상 고속 성장을 계속해온 칠레조차 작년부터 주춤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내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선진국 진입은 아직 시기 상조로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신경제 정책의 대부인 도밍고 카바요 경제장관을 해임하고 난 뒤 뚜렷한 경제 노선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브라질은 방대한 국토로 인해 지역간 불균형이 심각하다.

중남미 생산 체제의 문제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거의 모든 국가가 원자재 중심의 일부 제품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금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는 석유(베네수엘라·에콰도르), 구리(칠레), 주석(볼리비아), 커피(콜롬비아·브라질), 설탕(쿠바를 비롯한 카리브 해 국가들) 등이며, 이에 반해 제조업은 중간재와 의류를 중심으로 해 일부 가전제품과 기본적인 최종재를 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 게다가 최종재 생산 설비와 기술은 외부 의존도가 높아 자체적인 기술집약 산업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남미에는 8천만명에 이르는 원주민이 아직도 먹을 것을 제대로 못 구하고 있으며, 1억8천만명이 넘는 빈곤층은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빈곤을 퇴치하지 못한 불균형한 발전은 치안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국민 복지 향상에 영원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희망적으로 보이는 경제 지수들조차 피부에 와닿지 않는 장식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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