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스미토모 구리 추문'' 갈수록 태단
  • 김방희기자 ()
  • 승인 1996.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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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시장 거래 손실액 최고 기록을 경신한 구리 부정 거래 사건이 회사 경영층으로 비화하고 있지만, 스미토모상사 여전히 굳건하다.
 
어떤 의미에서건 일본 스미토모상사 추문은 속편에 불과하다. 구리 부정 거래를 통해 18억달러(약 1조5천억원)를 날린 이 사건은, 94년 베어링증권사 싱가포르지사와 지난해 다이와은행 뉴욕지점에서 일어난 대형 금융 사고와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거래인(트레이더)과 이들에 대한 감사를 소홀히 한 회사. 부정한 거래가 몇 년간 계속되고, 나중에는 손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만큼 불어났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원작만한 속편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지만, 스미토모상사 사건이 전작보다 훨씬 흥미로워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여가 흐른 지금, 초점은 사건 당사자인 하마나카 야스오 전 비철금속부장(위 사진)의 부정 거래를 회사 상층부가 사전에 알고 승인해 주었는지 여부이다. 베어링증권사와 다이와은행의 경우에도 이런 의혹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이번 경우는 의혹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이 다르다.
구리 비밀 거래, 회사 경영진이 묵인한 듯


스미토모상사의 구리 거래에 간여했던 윈체스터상품 그룹의 증언이 그 신호탄이었다. 이 상품 거래 회사의 창업주인 찰스 빈센트와 애실리 러벳은 최근, 하마나카가 구리 가격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는 계기가 된 93년의 구리 매입 거래가 하마나카 부장의 상급자로부터 공식 승인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스미토모상사의 파트너로 미국의 상품 거래 회사인 국제광물금속사(GM&M) 역시 하마나카의 비밀 계좌가 회사 경영진의 묵계 아래 조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마나카의 직속 상관이었던 이마무라 아키오 이사도 스미토모상사가 자신들의 실책을 발표한 6월14일 이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비록 그는 언론 보도가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기는 했으나, 자신을 포함한 회사의 경영진이 하마나카의 거래를 승인한 사실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전작 두 편에 비해 훨씬 더 흥미로운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주역이 그 중 하나. 전세계 구리 거래량의 5%를 보유하고 있었던 스미토모상사 내에서 하마나카 부장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하마나카가 簿外 거래(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거래)를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였다. 몇몇 거래에서 손실을 기록한 93년 이후 규모가 급격히 늘기 시작해, 부외 거래 금액은 공식 거래의 세 배에 달하기도 했다.

손실액이 커지자 그는 더 대담하게 가격을 조작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지난 12월 께에는 거래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거래 물량이 너무 큰 것이 영·미 양국 감독기관에 포착되었다. 영국 증권투자위원회(SIB)와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스미토모상사에 ‘거래량이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이 지적 후에 하마나카는 공식 거래량을 줄이면서도 부외 거래를 줄이지는 않았다. 그의 이중 거래를 어렴풋이 눈치챈 회사가 하마나카에 대한 감사에 나선 것은 지난 5월 초.

하마나카가 부외 거래를 10여 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보통 거래 관련 서류는 모두 회사 내의 재무부에 보고되지만, 부외 거래에 이용하는 외국 은행 서류는 그가 직접 받아 보았기 때문이다. 회사가 결정적인 단서를 잡은 것은, 그에게 전달되어야 할 서류가 우연히 재무부로 잘못 전달되면서부터였다. 회사는 비로소 거래 내역이 회사 장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가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사실을 알았다.

영국판(베어링 사건)과 달리, 이번 속편은 훨씬 덜 비극적이다. 다이와은행 사건 때 그랬던 것처럼, 금융 시장 거래 손실액 최고치를 경신한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세계 최대 회사 가운데 하나인 스미토모그룹이 위태로울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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