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3위만은 내줄 수 없다”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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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맹추격에 위기감…에너지·소재·정보통신·생명공학 등으로 사업 재구축
올해 들어 LG그룹은 새로운 사업 보따리를 많이 풀었다. 지난 2월에 구자경 현 명예회장(71)으로부터 경영 바통을 이어받은 구본무 회장(51)은 언론으로부터 `‘공격적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널 정도로 사업 확장에 신중하다는 그룹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은 4월에 회장 직속 기구로 `‘전략사업개발단’을 발족시켰다. 이 기구를 창구로 해 대대적인 리엔지니어링(사업 재구축)을 펼친다는 구상이다. 신규 사업 발굴·추진을 전담하는 이 기구에서 두 달여 동안 내놓은 사업 계획은 적지 않았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이 발전소 건립 구상이다. 2010년까지 총 3조원을 투자해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발전소 및 인수기지(저장 및 기화 시설)를 세우며, 장기적으로는 원전사업에 진출하며 해외 발전 플랜트 시장에도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5월 중순과 6월 초에 발표된 광주 첨단과학산업단지(1조1천억원 투자)와 부산 가덕도 신항만 개발사업(4조4천억원)도, 이 그룹의 확장 의지를 엿보게 하는 사업 계획들이다. 이밖에 인공 위성 주파수 공용 통신과 같은 정보통신 사업과 생명공학·에너지·첨단소재 산업에도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매출액이 37조5천억원으로 재벌 서열 3위인 LG그룹은 LG전자와 LG화학이 모기업이자 주력 기업이다. 계열사가 6월 말 현재 50개나 되지만 이 두 기업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이 두 기업을 정점으로 하여 관련 기업을 묶은 기업문화단위(CU)로 보면 매출액의 절반을 훨씬 웃돈다는 것이 이 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반도체(LG반도체)를 포함하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룹 전체의 70%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본무 회장 체제 출범 후 LG그룹이 내놓은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전자와 화학을 축으로 하여 관련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사업으로 보기는 어렵다. 역점 사업으로 강조하고 있는 정보 통신·멀티 미디어 사업은 전자산업과 정보통신산업의 만남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어차피 가야 할 방향이다.

한국중공업·데이콤 인수 계획도

광주 과학단지와 부산 가덕도 개발은 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역 밀착 경영을 꾀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특히 재벌들의 격전지가 될 공산이 큰 가덕도 개발은 사업성 자체도 무시할 수 없지만, 현 정부의 근거지라는 점에서 `‘정치성’도 엿보인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LG그룹의 사업 계획 가운데 새로운 것으로 볼 수 있는 발전소 건립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국내 시장은 협소한데 발전소 시공에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해외에 진출해 발전 플랜트를 짓는 구상은 국내에서 노하우를 얼마나 빠른 시일에 습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도 독일·프랑스·미국 등에 세계적인 경쟁사가 즐비한 데다 원전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와 맞물릴 것으로 예상돼 그 행로가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발전 설비 등의 기계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노리는 한국중공업 인수나, 정보통신 사업을 공략하는 데 필요한 데이콤 인수도 모두 쉽지 않을 것이다. LG그룹이 현대·삼성·대우 같은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 두 기업을 소유하려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새 사업을 다섯 개 벌인다면 두 개는 실패할 위험이 높다”며, 반도체가 호황이라 자금 동원에 곤욕은 치르지 않겠지만, 투자 순위와 일정 조정을 하는 ‘보폭 조정자’의 존재가 이 그룹에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LG그룹이 95년을 `‘제2의 경영 혁신 원년’으로 설정하는 등 사업 확장에 왕성한 의지를 보이는 이유를 단지 경영권이 이양됐다는 사실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른 이유 중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등으로 한국 시장이 완전 개방돼 경쟁이 격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개방으로 인한 경쟁 격화는 다른 재벌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재계 지형에서 현대·삼성 그룹은 멀리 달아나고 있고 대우그룹은 더욱 바짝 쫓아오고 있다. 이런 주변 여건이 LG그룹으로 하여금 뭔가 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게 하는 이유가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LG그룹은 80년대 초반만 해도 매출액 면에서 현대·삼성 그룹과 별 차이가 없었다. 현대·삼성은 똑같이 85년에 10조원 고지를 넘었고 LG그룹은 86년에 돌파했다. 대우그룹이 매출액 10조원대를 달성한 것은 90년에 이르러서였다. 작년 현대·삼성 두 그룹의 매출액은 각각 50조원이었다. 10년 만에 두 그룹은 매출액이 5배 늘었는데 LG그룹은 3.7배 느는 데 그쳤다. 두 그룹은 올해 똑같이 매출액을 60조원으로 잡고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1위군과 3위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LG그룹측은 목표치를 밝히지 않고 있다).

LG“자동차·철강·조선에는 참여 않겠다”

4위인 대우그룹의 추격도 위협적이다. 대우그룹의 올해 매출액 목표는 44조원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올해 3,4위가 뒤집힐 공산이 적지 않다고 본다.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4조∼5조원 차이는 중국에서 50억달러짜리 플랜트 하나 수주하면 일시에 만회된다”고 말한다. 대우그룹의 자신감은 그동안 세계 경영을 기치로 하여 현지법인 2백18개·지사 1백37개를 갖춘 해외망에서 매출 증가 속도가 매우 빨라지는 데 있다.

물론 매출액이 기업을 평가하는 절대치의 잣대가 될 수는 없다. 외형(매출액)보다 내실(순익)이 훨씬 중요하다는 LG그룹 관계자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기업간 경쟁에서 매출액은 무시할 수 없는 잣대다. 4대 그룹 관계자들은, 누구나 자신들의 경쟁 상대는 국내 재벌이 아닌 세계 일류 기업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룹 매출액 수치를 놓고 극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LG그룹은 석유화학을 빼고는 중후장대형 사업이 없다시피 한 것이 사업 구조에서 결정적인 약점이다. 중후장대형 사업의 대명사인 현대그룹의 경우 90년대 들어 매출액이 기하급수로 늘었다. 그룹 외형을 획기적으로 키우고 지속적인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자동차·철강·조선과 같은 중공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LG그룹은 대표적 호황 업종이며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불리는 이들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 없다. LG그룹 회장실 김영수 이사는 “구회장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사업에 진출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자동차·철강·조선에는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LG그룹이 총력을 펼칠 전략 사업으로 설정한 사업은, 에너지·소재·생명공학·정밀화학·정보통신·산업전자·환경산업·유통 등이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연구원 곽만순 연구위원은 “그룹 사업 구조를 이렇게 재구축하려는 것은 이 사업들이 부가가치가 높은 유망 사업이기 때문에 적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곽연구위원이 적절하다고 보는 것은, 중공업 진출이 경공업보다 매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LG그룹은 초우량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미래 조감도를 다시 짜기 시작했다. 미래형 업종을 발굴해 수익성·성장성·안정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쫓겠다는 복안이다.

경영 전문가들은 2000년대는 재벌간, 특히 10대 재벌 가운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 전망한다. 구본무 회장은 3세이지만 수성이 아닌 창업 의지로 LG그룹을 경영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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