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 <한국 경제 전망서>입수·공개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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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 <한국 경제 전망서> 분석/통화·정치 불안 등 숙제 산적… 2000년에 회복
데비 오로라 씨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산하 경제 예측 기관인 데이터리소시스 인스티튜트(DRI)에 근무하는 한국 경제 전문가이다. 한국 경제 흐름에 대한 그의 시각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신용 등급 결정에 그대로 반영된다. <시사저널>은 오로라 씨가 최근 정리한 한국 경제 중기(中期) 전망서를 입수했다. 그는 국내 경제 흐름을 결정하는 변수 열두 가지를 위험 수위 다섯 단계로 나누어 평가했다. <편집자>


DRI는 한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렵지만 위험한 상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의 위기 정도를 표현한 ‘보통(moderate)’이라는 단어는 두 번째로 위험도가 낮은 단계를 일컫는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넘어야 할 난관은 많지만 심각한 위기에 처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경제 개혁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개혁을 방해하는 변수가 도처에 깔려 있다. 재벌들은 비효율적으로 덩지만 크다. 또 경쟁력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추는 데 필요한 살빼기를 주저한다. 김대통령은 5대 재벌에게 주요 업종을 맞바꾸는‘빅딜’을 단행하라고 재촉했다. 재벌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9월 초부터 구체화하고 있는 산업 구조 조정 내용을 살펴보면, 대규모 업종 교환보다는 합작 법인 설립과 지역내 중복되는 산업단지를 통합해 공동 운영하는 데 그치고 있다.

자본 잠식이 심한 은행 부문을 정상화하는 데 대략 5백억 달러가 들 전망이다. 금융감독위원회 조사 이후 은행 5개가 퇴출되었고, 7개는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조건으로 정상 판정을 받았다. 부실 은행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은 7월 말 자발적으로 합병을 선언했다.

올해 상반기 산업 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6% 떨어졌다. 내수는 6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3%가 주저앉았고, 실업률은 7월에 7.7%까지 올랐다. 수입은 크게 줄어 올해 상반기 무역 흑자가 2백억 달러나 되었다. 상반기 수출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 늘었으나 금액 기준으로는 13.6%나 줄었다. 지난 13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요즘 강세를 보이는 한국 원화는 수출을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통화 강세는 몇달 안에 수그러들 전망이다.

노조 활동은 왕성하다. 현대자동차는 힘겹게 파국을 막았으나 만도기계 사업장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노사 관계는 상당 기간 긴장 상태를 유지할 전망이다.

국내 정치

1년간 노사 분규 빈번


DRI는 국내 정치 혼란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높다고 평가했다. DRI는 연립 여당이 국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 못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이 국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경제 흐름에 따라 정책 결정이 빠르고 단호해야 할 김대통령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국민신당이 국민회의에 흡수되었고 한나라당 의원들이 잇달아 탈당해 연립 여당에 합류해 정치 불안은 다소 해소될 듯하다.

문제는 사회 불안이다. 노사 분규가 심해지고 시민 폭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90년대 초와 달리 노동 분규가 크게 줄었지만, 96년 12월 노동법 개정이 전국 파업으로 파급되기도 했다. DRI는 기업들이 고용 인원을 줄임에 따라 앞으로 1년 동안 노사 분규가 빈번해지리라고 전망했다.

국외 정치

북한 침략·통일 가능성 높아


북한이 침략하거나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요즘 북한 사정은 악화일로이다. 북한 경제는 8년 동안 후퇴했고, 기근은 줄어들 기미가 안보인다. 절망적인 경제 사정은 북한이 선택할 여지를 줄여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올해 여름 북한 공작원의 남한 침투 실패는 남북한 관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남북한·미국·중국 사이에 진행된 4자 회담도 교착 상태여서 남북한이 교전 상태에 들어가거나, 북한에 폭동이 일어나 붕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면 이미 큰 타격을 입은 한국 경제는 완전 파괴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북한 경제 사정을 개선시키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기를 망설이고 있다. 한국 경제 자체가 어려워 북한 경제 사정을 돌볼 여유가 없다.

거시 경제 정책

재정 수지 적자로 전환


지난 몇년 동안 흑자를 유지한 재정 수지가 올해 경제 침체로 적자로 돌아선다. 재정 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을 4% 이상 늘리리라 예상된다. 조세 기반이 무너지고 금융 구조 조정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가계 지출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 시행되고,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신용 보증에 자금이 추가로 지출되고 있어 비용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영 기업 40개를 매각하고 6개를 합병하는 과감한 민영화 조처를 단행할 계획이다. 성공한다면 재정 적자를 줄일 수 있다.

통화 정책은 침체 상태에 빠진 산업에 유동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정되고 있다. 지난 상반기 동안 외국 자본이 많이 유입되어 한국 원화 환율과 이자율이 떨어지고 있다. 3년 만기 회사채는 7월 말 12.3%까지, 9월 초 콜금리는 한 자릿수까지 떨어져 외환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성장

몇년 동안 침체 못 벗어나


침체한 한국 경제는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이 잇달아 넘어지거나 사업 규모를 줄이고 있다. 개인 소비는 지난해와 비교해 10.3%, 실질 임금은 8.2%나 줄었다. 기업의 장기 투자는 23%가 줄었다. 실업률은 지난해 6월 2.3%였는데 올해 8월 8%에 육박했다. 한국 경제는 심각하게 위축되어 몇년 동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DRI는 한국의 성장률이 올해 마이너스 6.7%, 99년 1%를 기록한다고 전망했다. 2000년이 되어야 다소 회복 기미를 보일 것이다. 그전까지 한국 경제는 풀어야 할 숙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 통화 불안·금융 부문 위축·부실 기업·정치 불안과 정책 부재·북한 붕괴 가능성이 그것이다. 또 한국은 신용 등급이 낮아 자본 유출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

원화 가치 다시 떨어져 물가 압박


상반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4%나 올랐다. 도매 물가는 16.4%까지 올랐다. 지난해 7월 이후 32%나 떨어진 원화 가치가 주범이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 물가는 안정세를 찾고 있다. 서비스 가격이 떨어지고 고가 수입 상품보다는 국산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 또 국제 원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떨어져 비용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 요인이 없어졌다. 하지만 DRI는 몇달 안에 원화 가치가 다시 떨어져 물가를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세와 규제

노동·환경 관련 규제 엄격해진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은 경제 규제를 철폐하고 금융 자유화를 추진해 왔다. 정부는 노동법을 개정하고 금융산업을 개혁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조처는 원래 경제협력개발기구 규정을 맞추기 위해 시행되었다. 한국은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개혁 조처를 시행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과 환경 관련 규제는 강화할 수 있으나 다른 규제와 조세가 엄격해질 가능성은 낮다.

주식 시장

여건 나빠 전망 어두워


한국 주식 시장은 저평가되어 있으나 매우 위험하다. 투자 신뢰도는 올해 1/4분기에 잠시 올라 종합주가지수가 570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그 이후 종합주가지수는 계속 떨어져 3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상장 주식 총가치는 지난해 10월 1천 3백억 달러에서 7월 말 현재 5백10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기업 이윤이 감소하고 부채 비율이 높아가고 있다. 민영화 정책에 노동권이 적대감을 보이고 있고, 중소기업은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게다가 수출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따라서 주식 시장에 대한 전망은 어둡기 그지없다.

부동산

건설 시장 2002년까지 후퇴


얼마 전까지 한국은 세계에서 부동산이 매우 비싼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비싼 부동산 가격은 외자를 유치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되었다. 올해 1/4분기 부동산 가격은 1.3% 떨어졌다. 특히 서울과 부산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건설업체들은 지난해 3.7% 성장해 지난 10년 동안 가장 낮은 성장세를 보였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한국의 건설 시장은 2002년까지 크게 후퇴할 것이다.

금융 부문 안정성

단기적으로 은행들 위험


지난해 30대 그룹에 속한 대기업들이 잇달아 쓰러지면서 한국 금융기관이 가진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기업들이 잇달아 쓰러지자 은행들은 엄청난 부실 채권을 안게 되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두 달 동안 시중 은행의 경영 상태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은행권 1차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그 이후 줄곧 대형 시중 은행 간의 합병과 외자 유치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권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부실 대출이 배출한 해악을 없애는 데 몇달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DRI는 단기적으로 은행 부문이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외환 보유고와 외채

외환 보유고 곧 5백억 달러 돌파


한국의 총외채는 지난 7월 말 기준으로 1천5백38억 달러이다. 3백80억 달러가 단기 외채이다. 김대중 정부는 올해 1월 전체 외채의 69%에 이르던 단기 외채 비중을 크게 낮추었다. 경제 침체는 경상 수지 적자를 흑자로 반전시켜 올해 무역 흑자가 3백억∼4백억 달러에 이르리라 전망된다. 외환 보유고는 곧 5백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외국 투자 자금도 잇달아 들어오고 있다. 따라서 외채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은 거의 없다. 하지만 2차 아시아 경제 위기가 발발해 외국 자본이 앞다투어 빠져나가면 외채 상환 불능 상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통화 가치

하락세 지속… 일본·중국 경제가 변수


DRI는 올해 말 원화 가치가 달러당 1천5백57원까지 떨어지리라고 전망한다. 일본과 중국 경제가 불안하다. 일본 엔화 약세와 중국 경제 침체는 한국의 수출 잠재력을 크게 잠식했다. 중국 위안화가 평가 절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통화 불안은 한국 원화를 흔들고 있다. 또 반도체 국제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이밖에 노사 분규·정치 불안·외국 투자가의 변덕이 원화 가치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

수출

아시아 경기 침체로 크게 감소


앞으로 1년 동안 수출은 크게 줄어든다. 수출 주력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 국제 반도체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생산을 줄이고 있다. 철강·석유화학 제품도 수요를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체 수출량의 절반이 아시아 지역으로 나가는데, 위기에 빠진 아시아가 수입을 크게 줄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아시아 수요 감소분을 어느 정도 흡수하던 미국과 서유럽 경제가 주춤거려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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