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본 잡아라” PCS 업계의 생존 게임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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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게, 낙오 면할 운영자금 2조원 확보 나서… 외국인 합병 · 매수 활발할 듯
개인휴대통신(PCS) 가입자 수가 업체마다 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개인휴대통신 사업자들이 3월말 정보통신부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통신프리텔은 87만, 한솔PCS는 82만, LG텔레콤은 80만명 가량 가입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각 업체가 발표한 가입자 수에는 거품이 있다. 가개통이 그것이다. 개통은 했지만 통화료를 내지 않는 가입자가 상당수 있는 것이다. 이동통신 업체의 한 관계자는 “가개통 수는 각사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략 3만~10만 명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업체들은 가개통 건을 해소하기 위해 만원 또는 무료로 한정 판매를 하기도 한다.

가입자 2백만명 되어야 손익분기점 도달

개인휴대통신 업체 3곳과 셀룰러폰 업체인 SK텔레콤 · 신세기통신이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가입자 2백만명을 확보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제한되어 있고, 경제 위기로 운영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동통신 업체들은 경쟁 업체 한두 개가 경쟁에서 떨어져 나갈 때까지 살아남는 것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이동통신 업체들은 그때까지 견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설비투자비와 영업비 명목으로 운영자금 총 2조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주주사가 추가 투자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실 경기 위기 상황에서 추가 출자금을 마련할 여유가 있는 국내 업체는 많지 않다. 그래서 이동통신 업체들은 외국 자본에 눈을 돌린다. 벌써부터 구체적인 성과를 거둔 업체가 나타났다.

첫 주자는 한솔PCS. 한솔PCS 정용문 사장과 벨캐나다 데렉 버니 회장은 4월6일 투자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벨캐나다가 한솔PCS에 1억8천만달러를 올해 6월에 투자한다고 공동 발표했다. 벨캐나다는 자산 규모가 2백80억 달러나 되는 캐나다 제1위의 통신 업체로,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 태평양 지역 무선통신사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올해 6월 한솔PCS의 증자에 참여하면서 우선주를 배정받을 벨캐나다는, 한솔PCS가 액면가 1천2백억원 규모의 증자를 실시하면 그 2배 정도 프리미엄을 주고 지분 20%를 확보할 예정이다. 그럴 경우 벨캐나다는 한솔그룹(25.4%)에 이어 한솔PCS의 2대 주주가 된다. 국내 통신 서비스 업체 가운데 외국 업체가 2대 주주가 되기는 처음이다.

한국통신프리텔은 올해 하반기에 외국 업체를 대상으로 8천만달러 규모의 증자를 실시할 계획이다. 한국통신프리텔은 이미 메릴린치를 주간사 은행으로 선정하고. 외국 통신업체와 투자기금 10여 곳과 접촉하고 있다. 한국통신프리텔 이정근 자금 팀장은, 본 계약은 3~4개월 정도, 마무리까지 합치면 6개월 가량 걸려 올해 8~9월이 되면 협상이 끝나리라고 예상했다. 증자 규모가 8천만달러이지만, 한국통신프리텔 희망대로 액면가의 4배 가량 프리미엄이 붙는다면 전체 외국 자본 도입액은 3억달러가 넘을 것이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떠오른 업체는 4대 주주인 모토롤라. 모토롤라가 증자지분을 인수한다면, 한국통신 33.3%, 대우 4.9%, 효성 3%인 한국통신프리텔의 지분 구조로 보아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이정근 자금팀장은, 모토롤라가 유력한 업체이기는 하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없지만 실무자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외국 자본 유치를 검토하고 있는 곳이 신세기통신이다. 일부 언론은 신세기통신의 지분 21%를 가지고 있는 에어터치 · SBC커뮤니케이션 · 퀄컴이 3천만달러를 신세기통신에 추가 출자하기로 결정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신세기통신 경영관리본부 박평규 차장은,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경영진 책상까지 올라가 있는 외국 자본 도입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신세기통신은 외국 자본을 유치해야 한다면 자사 외국인 주주를 통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신세기통신은 또 2대 주주인 코오롱 지분을 포철을 비롯해 나이넥스 · 에어터치 · 벨사우스 같은 외국 업체에 분배 매각하기로 해, 최대 주주인 포항제철(15%)에 이어 2대 주주로 외국 업체가 떠오를 예정이다.
이동통신의 외국인 투자 장벽 곧 무너질 듯

LG텔레콤은 외국 자본 유치에 느긋하다. 오히려 LG텔레콤 정장호 부회장은 LG텔레콤에 투자를 희망하는 업체들에 네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LG텔레콤이 입이 마를 정도로 자랑하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 필요한 파트너여야 한다. 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을 같이 발전시킬 수 있는 합작선을 찾는 것이다. 둘째, LG텔레콤의 해외 진출에 제한을 가하지 않아야 한다. LG텔레콤은 앞으로 5년 동안 1억5천만달러를 받고 베네수엘라에 코드분할다중접속 기술을 수출할 정도로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셋째, 지분 규모와 관계없이 합작선이 경영에 간섭해서는 안된다. 넷째, LG텔레콤이 가진 기술과 주식의 내재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업체여야 한다.

이 네 가지 원칙에 합의하는 합작선이라면 LG텔레콤의 지분 참여를 거절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다른 경쟁 업체들이 외국 자본 유입에 적극적인 것을 감안하면, 당분간 LG텔레콤이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 업체인 SK텔레콤은 3백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기 때문인지 외국 자본을 유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오히려 통신사업 부문 외국인 지분 한도 33%를 꽉 채운 외국인 지분이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세계 제2위의 헤지 펀드인 타이거 펀드가 가진 SK텔레콤 지분은 6%. SK텔레콤의 대주주인 SK그룹의 22%에 불과하다. 따라서 증자를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면 경영권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당분간 SK텔레콤 경영진이 자의에 의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SK텔레콤 경영진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정보통신부는 통신 시장 개방 속도를 최대한 늦추면서 국내 업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치중했지만 이제 그럴 단계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 기간산업과 심지어 방위산업체도 모두 팔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이동통신 분야의 외국인 투자 장벽도 곧 허물어질 전망이다. 또 통신 업체의 소유 구조를 엄격하게 제한해 온 현행 통신사업법을 개정해 통신사업자 사이에 합병 · 매수와 구조 조정을 촉진할 방침이다.

정보통신부 안병엽 정보통신정책실장은, 현행 통신사업자 제도는 통신 서비스의 공공성을 감안해 소유 분산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외국 자본 도입이 절실한 시점에서 통신 사업의 진입 규제 장치가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통신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이 대폭 완화되면 외국 기업에 의한 국내 통신 사업자 합병 · 매수개 활발해지리라 전망된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한국 이동통신 시장의 잠재성을 높이 평가해 앞다투어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와 합작을 통해 국내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외국 업체들은 국내 개인휴대통신 업체의 외형적인 성과에 놀라고 있다. 사업권을 얻은 후 1년 만에 전국망을 구축할 정도로 뛰어난 통신망 설계 능력과 구축 비결을 높이 평가한다. 또 상용 서비스 시작 이후 6개월 만에 백만명 가까운 가입자를 확보한 마케팅 능력에 놀란다.

앞으로 이동통신 업계의 변화 판도를 읽는 데 또 하나의 큰 변수로 외국 자본이 등장했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합병 · 매수 대상이 되는 업체가 나올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다만 들여온 외국 자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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