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받으면 국부 유출되나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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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회사들 '큰 건' 독식해 논란…
"돈만 날린다" "선진 경영 배운다" 양론


컨설팅을 둘러싸고 '국부 유출'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이 굵직한 프로젝트를 독식하는 데 대한 불만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별로 효과도 없는 컨설팅을 받기 위해 혈세가 새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만큼 적극적으로 선진 경영기법을 익혀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반론도 거세다.




컨설팅 고객과 업체는 흔히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비유된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것처럼 기업의 건강 정도를 따져보고 부실한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컨설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기업은 물론 대학과 교회도 컨설팅을 받을 정도로 컨설팅 산업은 IMF 체제가 들어선 1998년 이후, 연 20∼30%씩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 1998년 산업연구원은 우리나라 경영 컨설팅 산업의 수요를 전망하며 2000년에는 대략 1조원의 시장 규모를 갖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IMF 체제 이전 5천억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3년 사이에 두 배나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컨설팅 시장의 규모가 이미 수조원을 넘어섰다고 진단한다.


100여 외국 컨설팅 회사, 한 해 매출 수천억원


한국에 컨설팅이 도입된 것은 한국생산성본부가 생긴 1957년. 그러나 본격적인 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IMF 체제 이후인 1998년부터라는 것이 중론이다. IMF 체제는 기업들이 기업주의 황제 경영에서 벗어나 수익성·안전성 위주의 경영을 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상황을 만들었다. 자연히 컨설팅이 중시되었고, 때마침 풍부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대형 외국계 업체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컨설팅 산업은 발아기를 맞이했다.


정부가 미국 매킨지 사에 '한국의 장기발전 계획'에 대한 컨설팅을 맡기고, 산업자원부가 보스턴컨설팅 사에 국가정책 컨설팅을 맡기는 등 공공기관에 컨설팅 개념이 도입된 것도 이때였다. 매킨지·아더 앤더슨·베인·PWC·라자드 등 세계 유명 컨설팅 회사가 한국의 대기업과 공공기관, 금융권 등 굵직한 고객들을 상대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외국 컨설팅 회사, 비용 비싸다" 100%

























단위 : % 국내 진출 해외 법인 국내 법인
너무 비싸다 18.8 10.5
비싸다 81.3 57.9
적당하다 0.0 26.3
저렴하다 0.0 5.3

자료 : 전경련 '한국기업의 컨설팅 현황 조사' 결과(2001.5.18)


현재 1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국내 진출 외국계 컨설팅 회사가 어느 회사를, 얼마를 받고 컨설팅했는지는 베일에 가려 있다. 양측이 비밀로 하고 있는 데다 감독 당국도 '대략 파악하고 있지만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컨설팅협회의 한 관계자는 어림잡아도 외국계 회사들은 한 해 수천억원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굵직한 고객들은 왜 외국계 회사에 컨설팅을 맡기는 것일까. 우선 외국계 회사들은 전문성과 풍부한 컨설팅 경험을 가지고 있다. PWC 같은 경우 한국에만 컨설턴트가 6백여 명 있고 전세계적으로는 15만명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규모가 큰 회사조차도 컨설턴트를 2백여 명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5천여 명이 활동할 뿐이다.


또 국내 컨설팅 업체들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3천여 개에 달하는 국내 컨설팅 회사 가운데 50%가 컨설턴트가 5명 이하인 영세한 업체들이다. 부족한 컨설팅 경험, 선진화하지 못한 컨설팅 기법도 큰 고객들로부터 외면 받는 이유이다. IMF 체제 이후 사회가 이른바 '국제 기준'에 맞추어 가는 것도 외국계 회사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5월15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인 1백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기업의 컨설팅 현황 조사'에 따르면, 컨설팅을 받은 기업은 외국 업체(26.1%)보다 국내 컨설팅 사(73.9%)를 많이 이용했으나 앞으로는 외국 업체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이 50%에 달했다. 비용 절감 컨설팅 사업을 하는 노보스의 정지택 사장(두산 전략기획본부 사장 겸임·82쪽 인터뷰 참조)은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고객들이 이왕 컨설팅을 받을 바에는 돈을 들이더라도 화끈하게 하자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전경련 한선옥 선임조사역은 "외국계 컨설팅 사는 짧은 기간에 많은 인력을 투입해 높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조사되었다"라고 말했다. 외국계 회사들은 1건당 평균 16명과 4억4천만원을 투입하는 데 비해 국내 회사가 투입하는 인력과 비용은 그 절반이라는 것이다. 반면 컨설팅에 소요된 기간은 외국계 회사가 평균 5.9개월인 반면 국내 회사는 평균 7.4개월로 나타났다.





한국 컨설팅 회사, 외국에 많이 뒤졌다
(선진 외국과의 컨설팅 수준 격차)














5년 10년 15년 20년 25년 이상
15.7% 59.9% 11.6% 9.3% 3.5%

자료 :한국컨설팅협회 '한국 컨설팅 산업의 현실과 발전 방안'


IMF 이후 현대·대우·한빛은행·제일은행 등은 작게는 수억원에서 크게는 수십억원을 주고 외국계 회사들로부터 컨설팅을 받았다. 두산 같은 경우는 벌써 5년 이상 매킨지로부터 경영 컨설팅을 받고 있다. 이처럼 굵직한 프로젝트를 외국계가 독식하다 보니 말도 많다. 한 컨설턴트는 외국계 컨설팅 사들이 때로 횡포에 가까울 만큼 많은 금액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기업 매각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경련 조사에서도 '너무 비싸다'(18.8%) '비싸다'(81.3%) 등 모든 응답자가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의 컨설팅 비용이 비싸다고 답했다. 반면 국내 업체에 대해서는 68.4%가 비싸다고 대답했다.


"컨설팅 비용으로 천억원 이상 쓴 은행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별 효과를 거두지도 못하면서 컨설팅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데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 가운데는 IMF 체제 이후 컨설팅 비용으로만 천억원 이상을 지출한 곳도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 돈의 대부분은 외국계 컨설팅 사에 흘러갔다. 대우자동차의 경우도 라자드·국제통상학회·아더 앤더슨 등 많은 곳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았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또 다른 대기업은 컨설팅을 받고 통신업에 진출했으나 돈만 날렸다는 소문이 재계에 돌고 있다.


국부 유출에는 돈뿐만 아니라 정보도 포함된다. 경영기술컨설턴트협회의 한 관계자는 컨설팅 과정에서 우리나라 주요 대기업의 정보는 외국, 특히 미국에 다 새나갔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도 '컨설팅 과정을 통해 국내 기업의 주요 정보가 무방비 상태로 외국에 유출되어 예상치 못한 산업적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건의 컨설팅에 참여한 한 경제계 인사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국부 유출이 많지는 않다. 또 신뢰가 생명인 컨설팅 사가 정보를 외부에 유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컨설팅 산업의 급성장이 계속되고 외국계 업체들에 컨설팅을 맡기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한 국부 유출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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