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눈덩이 이자' 굴러온다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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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매년 4∼8조원씩 45조원 갚아야…
"방치하면 국가 위기 부를 수도"


올1분기 영업 상황을 분석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제조업체 열 곳 가운데 네 곳은 영업 이익보다 금융 비용 지출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업체의 38.2%가 '뼈빠지게 벌어 이자 갚기에도 급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자를 못 갚아 허덕이고 있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금융권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올 4월 말까지 1백37조원이 지원된 공적자금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회수된 공적자금은 33조1천억원으로 투입액의 24.1%에 불과한 실정이다. 당장 내년부터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을 길이 막막하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꺼린다. 말문을 여는 순간 자신이 책임을 뒤집어쓸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는 사이 국민들의 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한나라당 김부겸 의원은 지난 6월11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공적자금에 대해서는 원금에 대한 논란이 주된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적자금의 이자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김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공적자금의 이자를 어떻게 갚을 것이냐' 하는 문제는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도대체 공적자금에 대한 이자가 얼마나 되기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일까. 최근 공적자금용 채권 발행 기관인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는 변동금리 채권의 이율을 8%로 가정하고 공적자금에 대한 이자를 산출해 국회에 보고했다. 계산대로라면 내년에는 이자를 3조9천8백3억원 갚아야 한다. 수십 조 단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큰 액수로 들리지 않겠지만 전국민이 1인당 약 9만원씩 내야 갚을 수 있는 큰 금액이다. 2003년에는 5조5천7백14억원, 2004년에는 6조5천9백90억원 등 앞으로 갚아야 할 이자만 대략 45조원이 넘는다. 갓난아기에서 노인까지 온 국민이 1인당 100만원 정도의 돈을 내야 공적자금의 이자를 모두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채권 발행·은행보험요율 인상, 모두 국민 부담





공적자금 이자, 얼마나 갚아야 하나 (단위 : 억원)





































예금보험공사
총381,666
자산관리공사
총70,613
합계
총452,279
2002 26,254 13,549 39,803
2003 39,533 16,181 55,714
2004 53,816 12,174 65,990
2005 65,860 11,857 16,852
2006년 이후 196,203 16,852 213,055

자료 :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그러나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의 현재 능력으로는 갚을 방법이 없다. 예금보험공사가 갖고 있는 최대 재산은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액면가(5천원)에 산 30조원 가량의 주식이다. 그러나 현재 이 주식들의 가격은 액면가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2천∼3천원대에 머물러 있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우리가 주식을 갖고 있는 은행들의 상태가 좋아지면 주가가 1만∼2만 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갚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경제를 감안할 때 너무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김부겸 의원은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공적자금 이자를 갚기 위해 또 공적자금을 조성해야 할 판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정부의 도덕적 해이이고 직무유기다"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이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예금보험공사의 한 관계자는, 집으로 치면 예금보험공사는 1층 정부는 2층이라며 "정부가 금융을 안정시키는 임무를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수행하고 있기에 결국 정부가 지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 방법과 관련해 가장 손쉬운 방안은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은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이므로 공채 성격을 띠지만, 공사가 상환 능력을 잃게 되면 정부가 원리금을 상환하게 되므로 내용은 국채나 다름없다. 정부가 보증하니 자금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고 시장에서도 인기가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결국 세금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을 늘리기 십상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권이 이 방식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는 예금보험요율(은행들이 부실해질 경우에 대비해 예금보험공사에 예금액의 일정 부분을 보험료로 적립하는 비율)을 인상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8월 한 차례 인상해 현재 0.15%인 보험요율은 연 8천2백50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법을 고치지 않고 3배까지 올릴 수 있어 0.45%까지는 인상이 가능하다. 한국개발원 강동수 박사는 "원금과 이자를 어떻게 갚을 것인지가 공론화하면 당연히 예금보험요율 인상 문제가 나올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강박사는 예금보험요율을 0.45%로 인상하더라도 외국에 비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도 들어오는 수입은 2조4천여억원에 불과하다.


"자료 공개하고 국민 이해 구해야 할 시점"


이처럼 어느 한 가지 방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두 가지 방안을 다 동원해 이자와 원금을 갚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1980년대에 저축대부조합의 부실로 인해 공적자금을 조성했던 미국은 국민(세금 인상)과 금융기관이 각각 반반씩 부실 비용을 떠안아 10년 이상 걸려 문제를 해결했다. 멕시코는 원금 상환보다는 이자가 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원금의 반도 갚지 못하고 있다.


어느 방안에 더 비중을 둘 것이냐는 정책 결정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부실 원인이 모든 국민에게 있다고 판단한다면 채권 발행·세금 인상 등에, 부실 당사자인 금융기관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면 예금보험요율 인상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비중을 두든 국민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명확히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막연하게 잘 될 것이라며 상황을 자꾸 회피하려 하지 말고, 관련 자료를 소상히 공개해 국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센터 박승록 소장은 "지금은 여야가 내 탓 네 탓 싸움을 하며 정치적인 이해 관계로 다툴 때가 아니다. 이대로 가면 정권이 아니라 국가적인 위기가 올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언제 얼마를 어떤 방법으로 갚을 것인지, 시기를 연장하겠다면 얼마나 연장할 것인지, 그때는 상환 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대책을 세울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외환 위기를 맞은 지금 세대가 모든 부담을 질 것인지, 아니면 길게 보아서 여러 세대에 걸쳐 부담을 나누어 질 것인지를 국가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왜 이런 절박한 목소리가 나오는지는 앞으로 우리가 갚아야 할 금액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원금까지 합할 경우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는 2003년 이후 해마다 최소 20조원 이상을 갚아야 한다. 인천공항을 3개쯤 건설할 수 있는 이 금액을 해마다 어떻게 갚을 것인지 어디에도 청사진이 없다. 관료들과 정치권 인사들은 자신들의 책임 문제와 정치적 이해 관계에 얽혀 이런 주장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김경호 사무국장은 "당장 닥치는 문제가 아니고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는데 몇 달 더 연구해 봐야겠다"라고 말했다. 대책을 마련할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절박성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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