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누가 가르치나
  • 소종섭 기자 (kumkang@e-sisa.co.kr)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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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용·최도석·진대제·황영기 '전담 교사'…
손정의·잭 웰치에 '과외'


'재용이는 올해부터 현장에서 경영 수업을 하고 있지만 제가 특별히 해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껏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자식을 키워 왔기 때문에 스스로 잘 해내리라고 봅니다. 또한 주변에 훌륭한 스승이 많이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건희 회장은 최근 보도된 〈신동아〉(7월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회장의 말은 아들 재용씨가 정식으로 경영 수업을 한 지 100일이 지난 시점(6월20일)과 맞물려 관심을 끌었다. 지난 3월10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 총회에서 경영전략 담당 상무보로 선임된 재용씨는 그동안 각 계열사의 올해 사업 방향을 보고받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무보의 경영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그를 지도하는 '훌륭한 스승들'은 누구일까.


이건희 회장, 전경련 회의에서 '지도 편달' 부탁


삼성그룹 홍보팀 관계자는, 지금은 언론에 드러나지 않고 열심히 일을 배울 때라는 것이 이상무보의 생각이라며 그의 활동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용씨와 관련한 부분은 그룹 차원의 1급 비밀 사항이어서 삼성그룹 본관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그는 상무보로 취임하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친한 몇몇 기자들과 사적인 자리를 갖기도 했으나, 지금은 언론과의 접촉을 거의 끊었다. 한 관계자는 인터뷰 요청서가 한 묶음 쌓여 있으나 당분간은 언론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상무보는 대외 활동을 활발히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말에는 신임 임원 부부 동반 오찬에 부인 임세령씨와 함께 참석했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빈소에 조문하기도 했다. 4월 말에는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내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을 찾아가 얘기도 나누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씨가 드러내지 않고 삼성전자 사업장을 찾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전했다.


이상무보는 또 부서 회식이 열릴 때면 이른바 '5분 스피치'를 주도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 한 소식통의 전언이다. 회식하기 전에 회사 일이건 가정 일이건 각자 5분간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황태자'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5분 스피치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무보는 내용적으로는 이미 상무보의 위치를 한참 넘어서 있다. 각 계열사 경영 전략과 관련한 브리핑을 받았고, 삼성그룹의 중·장기 전략 계획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올 들어 구조조정본부는 이건희 회장에게 올리는 그룹 동향 보고서를 이상무보에게도 올리고 있다. 특히 재계 2·3세들과 벤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정보는 따로 보고되고 있다.




재용씨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전방위적인 지원도 눈길을 끈다. "본인이 경영에 자질이 있는 것 같고, 훌륭한 분들을 열심히 찾아 다니면서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배우려고 한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회장은 4월14일과 5월10일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에 참석해서도 재용씨를 지도 편달해 달라고 재계 지도자들에게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회장이 무난히 경영권을 이양하기 위해 안팎의 환경을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전했다. 올 들어 그룹 구조조정본부에 홍보 담당 임원이 1명 늘어난 것 등을 이와 연관해 보는 시각도 있다. 이상무보의 모친인 홍라희 여사도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등에게 재용씨가 빨리 안착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무보의 사무실은 삼성 본관 25층에 있다. 25층에는 이상무보 외에도 각종 외국 잡지들이 '아시아 최고의 경영인'으로 꼽은 윤종용 삼성전자 대표이사 총괄 부회장과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지원팀장(사장급)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사람이 이상무보의 경영 수업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삼성그룹 안팎의 시각이다. 윤부회장은 재용씨의 경영 수업을 지원하고, 최사장은 이상무보를 밀착 수행하며 경영 현황을 브리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제일모직 경리과장 출신으로 삼성전자의 자금 흐름에 가장 정통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또 40대인 진대제 삼성전자 디지털 미디어 총괄 사장과 삼성그룹 최고의 국제금융 전문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이상무보의 경영 수업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황사장은 최근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주식 전망이나 외국인 투자 동향 등에 대한 이상무보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정도라고 자신의 역할을 밝힌 바 있다.


이밖에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장충기 구조조정본부 기획팀장(전무)·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전무)·신응환 상무도 그룹의 중·장기 전략과 관련해 재용씨와 자주 머리를 맞대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재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 인터넷 사업에 관심이 많은 재용씨는 박현주 미래에셋 사장·김동진 씽크풀 대표·박창기 팍스넷 대표 등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또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잭 웰치 회장과도 만나 경영을 자문했다. 지난 3월22일에는 이건희 회장과 함께 일본 도시바 그룹 니시무로 다이조 회장을 한남동 승지원에서 만난 적도 있다. 재계의 한 인사는, 드러나지 않은 자문 인사도 상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회장이 인터뷰에서 말한 '스승'의 의미는 특정인이 아니라 그룹 내 최고경영자들을 뜻하는 일반적인 개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재용의 최고 스승은 이병철·이건희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이상무보의 최고 스승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과 할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라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라는 경영 원칙을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재용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라고 말해 왔다. 이건희 회장은 이상무보가 경복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수시로 제일제당·삼성 반도체 공장 등을 방문하게 하는 등 현장 중심으로 경영을 지도해 왔다.


이상무보는 그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곱지 않게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오래 전부터 '재벌의 아들이니까' 하는 부정적인 인식을 떨쳐내고 싶었다. 언제나 나 자신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해 왔다.


이제 그는 자신의 말대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그러나 '아직 (이상무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한 삼성 직원의 말처럼, 그의 앞길은 안개 속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이회장이 건강을 회복하면서 이상무보의 경영 수업 기간이 애초 예상되었던 5년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그에게는 다행스런 일일는지 모른다. 카리스마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 법이며, 주변에 있는 뛰어난 스승들도 당사자를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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