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벨리 '혹독한 보릿고개'
  • 신호철 기자 (eco@e-sisa.co.kr)
  • 승인 2001.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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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돈 가뭄·닷컴 몰락으로 풍경 변해···
"봄에 다시 오시죠.”


테헤란밸리가 끝나는 곳.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7층 기술신용보증기금 상담실에서 벤처 기업 사장 이성우씨(33)는 심사관으로부터 넉 달 뒤에나 와보라는 답을 들었다. 그는 투자를 유치하려고 캐피탈 회사와 투자 회사를 전전하고 있었다. 그는 두 달 전에도 이 곳을 찾았으나 심사에 떨어졌다. 그 사이 실적이 늘어서 이번에는 심사에 통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번 떨어진 사람은 6개월이 지나야 재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뒤늦게 알았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는 그는 초조하기 짝이 없다.

이성우씨는 자신을 ‘이 시대에 가장 표준적인 벤처인’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한때 유명 잡지사 기자로 일했다. 벤처 바람이 불던 1999년 한국투자신탁·한국통신과 몇몇 엔젤 투자가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모바일 벤처를 시작했다. 뜻만 있으면 억대 자금을 모으는 일쯤은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다. 오래 연구한 끝에 제품을 개발해 상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내놓으려니 세상이 바뀌어 버렸다. 광고와 대량 생산에 필요한 돈줄이 막혀버린 것이다. 이씨는 하루에 투자자를 다섯 사람 넘게 만나고 있다.



지금은 벤처인들의 보릿고개다. 벤처 투자 붐이 일던 2년 전 ‘황금 시대’에 투자 받은 자금이 바닥 나는 시점이다. 2001년 겨울, 한국 벤처의 요람이라는 테헤란밸리 풍경은 2년 전 겨울과는 사뭇 달랐다.


2년 전만 해도 역삼역에서 선릉역 사이 거리에는 ‘com’ ‘co.kr’이라는 도메인 간판이 많았다. 지금은 여느 서울 도심 풍경과 다를 바 없다. 도메인 간판이 줄어드는 이유는 홈페이지만으로 먹고 사는 닷컴 기업이 연이어 몰락했기 때문이다. 테헤란밸리에서 헤드헌팅(인력 스카우트)를 하는 ‘브레인서치’ 이시은씨는 “벤처 가운데도 도메인 이름 하나로 사업하려던 사람들이 가장 크게 망했다”라고 말했다. 대로변 풍경만 보면 오히려 은행이 밀집해 있는 ‘강남 금융 지구’에 가깝다.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어 모델하우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테헤란밸리를 실감할 수 있는 것은 가로등마다 나부끼고 있는 태극기뿐이었다. 이 태극기들은 3년 전부터 강남구청이 설치해 24시간 게양되어 있다.



호텔에서 열던 연회와 설명회도 크게 줄어들었다. 2년 전 창업 설명회가 많이 열렸던 연회장에서는 지금 제품 설명회가 간간이 열리고 있다. 인터콘티넨탈호텔 홍보실장 한태숙씨는 “올해 벤처와 관련한 행사는 지난해보다 30% 이상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인력 중개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수씨(가명)는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다 2000년 여름 벤처 기업에 뛰어들었다. 2001년 10월 팀원 5명이 구조 조정되면서 팀장인 그도 물러났다. 중개 사무실 직원은 “쏟아져 나온다고 할 정도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테헤란밸리에 있어야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말도 옛말이다. 상징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팀 인터페이스’ 이성혜 사장은 “우리가 테헤란로에 남은 이유는 주요 고객들이 기업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를 상대하는 벤처라면 테헤란밸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벤처 메카 상징 효과 떨어져…2001년 ‘엑소더스’


실제로 테헤란로를 떠나는 회사도 많다. 1999년이 테헤란로를 향한 골드러시 시대였다면, 2001년은 7호선 라인과 양재동, 구로디지털단지 등으로 ‘엑소더스’하는 시대였다. 벤처가 빠진 자리에는 중견 기업이나 다국적 기업 지사가 들어왔다. 예전 안철수연구소가 있던 삼성동 삼화빌딩에는 오라클이 입주해 있다.


벤처 기업과 함께 대기업들의 탈출도 테헤란밸리를 썰렁하게 만들고 있다. 르네상스호텔 앞 사거리에 우뚝 서서 테헤란밸리를 대표했던 삼성SDS. 이 회사는 건물 5층에 있는 연구소를 2002년 3월 분당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인근에 있는 한솔빌딩·월드타워·한원빌딩 등 강남에 흩어져 있는 삼성SDS 사무실 세 곳도 같은 시기 분당으로 옮겨간다. 서울에 있던 삼성SDS 전체 직원의 절반 가량인 1천5백명이 테헤란밸리를 떠나는 것이다. 삼성SDS는 임차료가 비싸 본사까지 분당으로 옮길 것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도 2002년 1월부터 분당으로 이전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역삼동에 있는 아남타워와 해태빌딩을 모두 비운다. 테헤란로에는 이처럼 빈 사무실이 늘어가고 있다(54쪽 상자 기사 참조).


벤처 기업 40여 개가 몰려 있는 서울벤처타운을 밤 10시에 찾아가 보았다. 불이 켜진 곳은 세 곳 중 한 곳 정도. 주변 대기업 빌딩보다는 야근이 많은 편이었으나 ‘창문 10개 중 6개는 불이 켜져 있다’던 2년 전 신문 보도와는 달랐다. 무작위로 사무실을 방문해 말을 건네 보았다. 결제 시스템 운영 업체인 퓨처테크 김진효씨는 업무 특성상 격일제로 24시간씩 근무하고 있다. 요즘 벤처 분위기에 대해 “우선 술자리가 2년 전보다 절반 정도 줄었다”라고 표현했다. 위층에서 일하는 ‘웹투어’ 이학수 차장은 “작년 송년회 때는 전직원이 모여 회식했는데 올해는 그냥 팀 별로 알아서 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송년회 분위기가 사그라들면서 테헤란로 사람들은 ‘테헤란의 겨울’을 피부로 느낀다. 2000년에 잠실 롯데호텔에서 송년회를 했던 제일컴텍은 2001년에는 장소를 공제회관으로 옮겼다. 한 중견 IT업체는 2000년 송년회를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과 코미디언을 불러 거창하게 열었지만, 2001년은 아예 송년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유흥업소 사람들도 추위를 느낀다. 오전 1시 충현교회 앞 역삼1 파출소. 호객 행위를 하던 종업원들이 순경에게 잡혀왔다. 그는 “대목인데도 손님이 없어 좀 설쳤다”라고 말했다.


벤처 기업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지면서 벤처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아졌다. 한때 경제를 살리는 영웅이었던 벤처가 의혹과 비리의 온상으로 취급받게 된 것이다. 벤처 기업 컨설팅 회사의 한 임원은 “나는 투자자들에게 정치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방에 걸어 놓은 대표이사와는 일하지 말라고 권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테헤란밸리에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벤처인들은 상당수가 이 겨울만 끝나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국벤처거래소 김태훈 사장은 “테헤란밸리는 어쨌든 한국 IT 산업의 메카이다. 실리콘밸리처럼 탄탄한 산업 기지가 되려면 좀더 혹독한 시련을 겪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쭉정이를 더 솎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진연 강남지점장은 “예전에는 허무맹랑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승부하려는 젊은이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준비된 벤처인’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는 하루 20명 정도가 꾸준히 상담하러 찾아온다고 한다.


벤처기업협회 오완진씨는 “벤처 기업들의 해외 수출량이 늘어나고 있다. 희망적 징후다”라고 말했다. 2002년에 열리는 월드컵과 대통령 선거, 그리고 미국 경제 회복 전망이 이 겨울을 나게 하는 힘이다.


지난 12월20일 삼성1동 삼겹살집에서는 한 벤처 기업이 송년회를 하고 있었다. 건배를 권하던 이 회사 사장 구자준씨(41)는 이번이 두 번째 벤처 경영이다. 그는 벤처 사업을 하다 2001년 3월 부도를 맞았다. 집은 압류당했고 한 달 동안 목욕탕을 떠도는 노숙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8월 그는 다시 DOD그룹이라는 새 벤처 회사를 세웠다. 2001년은 패배의 해이기도 했으나 재기의 해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테헤란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오디오 회사 글리프 사장 김민수씨(35)는 2001년을 ‘가장 끔찍한 한 해’로 기억한다. “아이를 출산할 때도 나는 구매자들에게 제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나자고 말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그는 2002년은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교대 전철역 앞 호프집에서 신용보증기금 투자 심사를 받던 이성우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처음 만난 젊은이들과 동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게임 아이템으로 막 테헤란로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앳된 얼굴의 벤처 지망생들이었다. <리니지>를 앞지르는 게임을 만들어 성공하고 싶다고 포부를 펼쳤다. 테헤란밸리의 도전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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