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 털어내고 떠오르자”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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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 구조 조정에 더욱 박차…‘알토란 사업’ 매각·종합 레저업에 운명 걸어
비장하지 않은 장례식이 없지만, 7월17일에 있었던 금호그룹 박정구 회장 장례식은 유독 비장했다. 맏형 박성용 명예회장의 얼굴에도, 그룹 총수 자리에 곧 오를 박삼구 부회장의 표정에도 그늘이 짙었다. 고인은 떠났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회사를 살려야 하는 무거운 짐이 남아 있기 때문인 듯했다.





금호는 고 박인천 창업 회장이 1946년 광주택시를 설립하며 운송업에 뛰어든 이래 2002년 현재 자산 규모 10조2천억원, 총매출액 6조원에 이르는 재계 순위 9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내실보다는 성장에 주력했던 탓에 IMF를 겪으며 유동성 위기에 시달려야 했고, 아직도 살아 남기 위한 혈전을 치르는 중이다.


한 회계 전문가는 “지난해 말 기준 연결재무제표만 놓고 봐도 금호그룹은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 올해 안에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말에는 부채가 10조4천억원이어서 부채 비율이 800%를 넘었다. 그룹의 지난해 성적표를 보아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6조5천7백억원 매출에 11억원이나 적자를 냈다. 지난해 말 내내 ‘금호가 넘어간다’는 유언비어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취약한 재무 구조 때문이었다.


숨이 넘어갈 듯했던 금호그룹은 올해 들어 유동성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항간에서는 DJ정권이 호남 그룹이어서 구해 주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금호 관계자는 “말도 안된다. 호남 기업이라는 색채 때문에 오히려 역차별을 당했다”라고 펄쩍 뛰었다. 온갖 정권 비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금호만큼은 거론도 되지 않은 것이 자신들의 결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금호는 서울 양재동 공장 부지를 비롯한 불필요한 부동산과 인천공항외항사터미널을 팔았고,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이 미래에 발생할 채권을 담보로 담보부 채권(ABS)를 발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대부분 계열사가 적자를 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1/4분기에는 모든 계열사가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만성 적자로 금호그룹 위기를 부른 애물이었던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들어 월드컵 특수와 환차손 덕분에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성적으로 금호가 유동성 위기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현대증권 지헌석 애널리스트 말대로 아시아나를 포함한 금호그룹은 차입금 규모가 워낙 커서 구조 조정을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더욱이 훨훨 비상하려면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부채가 여전히 8조원이 넘는 데다 부채 비율도 355%에 이른다(2002년 1/4분기 기준). 지난해보다는 크게 낮추었지만, 10대 그룹 가운데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문제점을 잘 아는 금호그룹은 몇 년째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하고 있다. 그룹 자금줄인 금호타이어 지분과 아시아나항공 자회사들을 해외에 매각하려는 것이다. 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과 협상 중인 금호타이어 매각은 현재 실사 중이며, 9월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말이다. 매각 대금은 최소 1조5천억원 가량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업만 계획대로 마무리되면 금호그룹은 확실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매각 대금으로 급한 채무들을 막고, 다른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자금까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공항서비스도 이미 외자유치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이다.


그룹 키울 확실한 돈벌이 사업 없어


문제는 알토란 같은 타이어사업부를 매각한 뒤에 그룹을 키울 확실한 돈벌이 기업이 없다는 데에 있다. 금호그룹은 네 아들이 주식 15%를 가진 금호석유화학을 통해 금호산업에 출자하고,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생명 등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위 표 참조). 결국 항공과 화학산업이 주력 업종인 셈인데, 이 두 업종은 성장 산업이 아닌 데다 다른 경쟁 기업에 비해 썩 우월한 처지도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항공 시장의 30%도 채 점유하지 못한 상태이다. 금호는 화학산업을 토대로 생명공학 등 고부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지만, 생명공학 분야에서 후발 주자인 금호가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금호생명 역시 안정적이지 않다. 돈을 벌고 있기는 하지만,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험 시장이 메이저 중심으로 재편될 조짐이어서 중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금호생명으로서는 언제 어느 때 시장에서 퇴출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털어낼 수 없다.


금호가 올해 안에 시장의 불신을 잠재우고,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느냐는 금호의 새 ‘선장’이 될 박삼구 부회장에게 달려 있다. 박부회장이 진행 중인 그룹 구조 조정을 얼마나 더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새로운 경영 비전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금호그룹의 운명이 갈리는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박부회장에 대한 안팎의 평가가 긍정적이라는 점이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레저산업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그는 앞으로 금호가 나아가야 할 방향 가운데 하나로 금호고속과 렌탈, 아시아나항공 등을 연계한 종합 레저업을 생각하고 있다고 그룹 관계자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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