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대로 장사하다 큰코다쳤네
  • 신호철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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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S워버그·메릴린치 증권, 정보 유출해 경고 받아…반성 태도는 극과 극



2002년은 한국인이 ‘자존심을 찾는 한 해’인 것 같다. 4년 전 금융 위기 때 콧대를 세웠던 외국 기업들이 최근 연이은 실책으로 망신을 당하는 바람에 환상이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엔론 사태는 미국 회계법인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거두게 했다. 이제는 증권사다. 그간 국내 증시를 좌지우지하던 UBS워버그와 메릴린치가 8월13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각각 문책 경고와 주의 경고를 받았다.


징계 이유도 조사 분석 자료를 대외에 공표하기 전에 유출했고, 고객의 주문 정보를 다른 고객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UBS워버그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삼성전자를 비롯한 11건의 조사 분석 자료를 지점과 계열사 영업 직원 등에게 제공했다. 메릴린치는 같은 기간 LG전자 등 2건의 조사 분석 보고서를 일반인에게 공표하기 전 특정 고객에게 전달했다.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외국계 증권사들의 보고서·매매 정보 유출은 예전부터 관행이었다”라고 말한다. 2000년 6월 금감원은 외국계 증권사 다섯 곳이 주식 매매 주문 정보를 당일 장이 열리기 전 특정인에게 유출했다며 징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감독자 6명에게 주의, 담당자 11명에게 견책 이하 조처를 내리는 데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거셌음은 물론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외국과의 시차 덕분에 장이 열리기 전 외국인들의 매매 주문 정보를 가지고 출발한다. 자연히 국내 증권사에 비해 정보 유출 유혹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이번에 금감원이 내린 징계는 개인 징계(21명)와 기관 차원 징계를 함께 한 것으로 2년 전에 비해 강해졌다. 여전히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있지만, 한 국내 기업설명 담당 임원은 “그동안 외국계 증권사들은 한국에서 너무 안이하게 굴었다. 금감원의 이번 조처는 경종을 울린 것이다”라며 환영했다.


죄질 나쁜 UBS워버그 “참회한다”


한편에서는 이번 사태를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증권사의 힘겨루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난 5월10일 UBS워버그 애널리스트 조너선 뒤통이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낮추고 투자 의견을 두 단계 내려 삼성전자 주가가 폭락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 전날 이 증권사 창구를 통해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량 매도했기 때문에 보고서 유출 의혹이 제기되었다. 삼성전자는 며칠 뒤 금감원에 공식 조사를 의뢰했다.


금감원 징계 이후 지금 외국계 애널리스트 사이에서는 이 ‘오래된 습관’에 대한 ‘복잡한 반성’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반성의 수위는 증권사마다 다르다. 특히 당사자인 두 증권사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먼저 UBS워버그 쪽은 참회 일색이다. 존 코스타스 회장은 8월1일 방한해 “금감원 검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잘못된 부분은 시정하겠다”라고 말했다. 마이클 진 서울지점장은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라고 표현했다.


8월14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금감원과 국수적인 언론 때문에 부당한 제재를 받았다’며 빈정대는 바람에 UBS워버그와 금감원 사이에 다시 긴장이 생긴 적이 있었다. 금감원은 발끈해 다음날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벨벳 요시나미 아태지역 홍보 상무는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는 우리에게도 불행한 사건이다. 우리 의도와 다르다. 그 기자는 다른 사람을 취재했을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두 증권사 중 한 곳에서 들은 말이라고 밝혔다.


메릴린치, 침묵으로 일관해


그렇다면 불만이 있는 쪽은 메릴린치였을까? UBS워버그의 ‘고개 숙이기’와 달리 메릴린치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금감원 징계 직후 ‘일단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힌 메릴린치는 8월13일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 이후에는 아예 언론과 접촉을 끊었다. 8월16일 서울 파이낸스센터빌딩에 있는 메릴린치 서울지점 전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던 한 사진기자는 엘리베이터조차 타지 못했다. 빌딩 경비원들이 메릴린치가 있는 28층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원 징계에 대한 메릴린치의 입장을 듣는 일은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메릴린치 본사에 문의하면 “홍콩 아시아 본사에 먼저 알아보라”고 넘긴다. 메릴린치 남종원 서울지점장은 “본사 차원에서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홍콩메릴린치의 로버트 쇼빈 언론담당은 “시간이 좀더 지난 뒤에 취재 협조 여부를 알려 주겠다”라고 말했다.
UBS워버그가 받은 문책 경고는 메릴린치가 받은 주의 경고보다 한 단계 높은 징계다.

금감원 이상훈 실장은 “UBS워버그의 유출 행위가 양과 질에서 더 나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징계 이후 행동은 UBS워버그 쪽이 더 겸손하다. 물론 처음부터 수용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여론이 강하게 압박하자 전략을 바꾼 듯하다. 특히 코스타스 회장 방문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UBS워버그는 이번 징계로 ‘한국에서 장사하려면 한국 법에 따라야 한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메릴린치는 아직 학습이 끝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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