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 ‘극과 극’ 날 세웠다
  •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2.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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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유승민, 이회창 재벌 정책 놓고 치열한 논전…장교수는 노무현·정몽준도 공격
고려대 장하성 교수(경영학)는 11월15일에서야 한나라당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이 11월13일자 〈조선일보〉에 쓴 2차 반박문을 접했다. 장교수는 인도 문바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최한‘아시아 국가의 기업지배구조’에 관한 원탁회의에 참석한 후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출자총액제한제에 관한 입장 변화에서 논쟁의 효과를 일부 확인했지만, 끝내 유소장의 글에는 이회창 후보의 재벌 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장교수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가혹한 정책 검증을 시도한다며, 10월21일 첫 포문을 열었다. 장교수의 공격에 한나라당·국민통합21·민주당은 신속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재벌 정책에 관심을 보여온 참여연대와 학계 그리고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계도 장교수가 촉발한 논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매한가지였다.



특히 장교수와 유소장의 논쟁은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장·유 논전’을 중계한 것은 〈조선일보〉. 장교수는 이 신문 10월21일자에서 ‘이후보의 재벌 편향’이라는 글로 첫 공개 질의를 감행했다. 그는 이후보가 투명 경제를 경제 운용의 3대 원칙으로 내세우고도 10대 실천 과제에는 재벌 정책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과, 재벌들의 주장과 대체로 일치하는 원칙론만 나열한 채 실천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응전에 나선 이는 14년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있다가 2000년 9월 이후보의 핵심 브레인으로 변신한 유소장. <조선일보> 10월23일자 ‘누가 재벌 대통령인가’라는 기고에서 유소장은 우선 김대중 정부에서 국민이 본 것은 현대·대우라는 부실 재벌과의 정경 유착과 빅딜과 같은 엉터리 정책뿐이었다고 날을 세웠다. 유소장은 장교수가 거론한 구체적 재벌 개혁 수단을 각각 낮은 단계의 대증요법(출자총액제한제), 무리한 것(집단소송제, 상속·증여 과세의 포괄주의), 정말 중요한 것(재벌의 은행 지배 방지) 등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정작 장교수가 요구한 이후보의 구체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았다. 5대 원칙에 충실한 간단하고 강력한 정책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따라서 2라운드 논쟁이 촉발될 여지가 충분했다. 장교수는 11월11일자 기고에서 2차 문제 제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 “국민들이 궁금해 할 이후보의 재벌 개혁 방안을 물었는데 유소장은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라고 밝혔다. 이 글에서 장교수는 이후보가 계속 자기의 재벌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누가 재벌 대통령인가’에 대한 답은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라 이후보 자신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유소장이 재반박에 나섰음은 물론이다.‘이후보 재벌 정책 다시 말한다’라는 13일자 글은 1차 반박문보다는 구체성을 띠었다.



장교수가 이후보에게만 공격의 화살을 쏜 것은 아니다. 그는 이후보에 이어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정책 검증도 시도했다. 이번에는 〈한국일보〉 지면을 빌렸다. 10월24일자 ‘정후보가 밝혀야 할 것’이라는 시론에서 장교수는 창당 자금을 포함한 정치 자금의 실체, 재산 형성 과정, 재벌 정책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국민통합21 박진원 대선기획단장은 다음날인 10월25일 조목조목 반박에 나섰다. 박단장은 사실 위주로 이른바 ‘쿨하게’ 잘 대응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바로 그날 오후 정후보가 질시·시기·증오 따위 원색적 어휘를 동원해 장교수를 비난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



장교수는 11월4일자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노후보의 개혁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대선 후보 세 사람 가운데 가장 개혁적으로 보이지만, 노후보가 중대한 현안에 관해 침묵하고 있어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도 가만 있을 리 없다. 김재성 정책특보는 노후보가 현대상선 4천억원 대출 건에 대해 계좌 추적을 강도 높게 요구하는 등 주요 현안에 대해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며, 장교수가 노후보 정책을 충분히 섭렵하지 않고 글을 썼다고 반박했다.





관전자들 “장교수 실제 표적은 이후보”



어쨌든 장교수는 재벌 정책 검증 차원에서 주요 후보 모두를 공격했다. 문제는 많은 관전자들이 장교수의 표적이 이후보라고 본다는 사실이다. 장교수 자신은 부인하지만, 장교수는 세 후보 가운데 인맥이나 정책 측면에서 노후보 진영과 매우 가깝다는 평을 듣고 있다. 참여연대 사람들이 장교수를 뜯어말렸던 것도 장교수의 글을 참여연대, 더 나아가 민주당의 주장이라고 볼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심지어 한나라당 인사들은 공정하게 비판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두 후보를 끌어냈지만 사실상 들러리 아니었느냐는 시각까지 보인다.



유소장은 1차 반박문에서 장교수를 DJ 정부의 재벌 정책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로 적시해 인신 공격이라는 비난을 불러들였다. 그의 글이 매우 정치적이라는 점도 걸고 넘어졌다. 유소장은 이런 시비를 건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한나라당에 속한 몸인 유승민과 달리 대학 교수 장하성은 일반 국민들에게 객관적인 처지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장교수가 김대중 정부의 재벌 정책 성안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장교수가 민주당과 가까운 것도 사실 아니냐.”



장·유 두 사람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 전문가로 꼽힌다. 하지만 재벌 개혁에 대한 시각은 너무 달라 대척점에 서 있다고 평가될 정도다. 이런 평가는 1997년 경제 위기의 주범이 재벌이냐 아니냐는 논쟁에서 확연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 연구위원 시절인 2000년 7월 펴낸 <재벌, 과연 위기의 주범인가>라는 저서에서 유소장은 경제 위기의 주범은 정부였고 재벌은 공범 내지 종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교수는 재벌책임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이다.



1990년대 초반 진보 진영의 한 학자는 한국 지식인 그룹을 네 갈래로 분류했던 적이 있다. 이 분류에 따르면, 1그룹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자. 이 그룹은 국가를 위해 개인은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곧잘 국가 발전에 기여도가 큰 재벌 우위 견해를 보인다.



장교수는 합리적 자유주의자로 불리는 2그룹에 속한다. 선진국의 자본주의 질서, 특히 미국식 시장 질서를 한국에서 건설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한 경제학자는 유소장의 이념적 지향성에 대해 “KDI 시절의 유소장은 2그룹에 속했으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후의 그는 1그룹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개혁적 케인즈언으로 불리는 3그룹은 국가(정부)를 통해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이다. 유럽식 사민주의가 현실적 대안이라고 보기도 한다. 급진 개혁 세력 혹은 극좌로 표현되는 4그룹 진영 사람들이 보기에 3그룹 사람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변절한 좌파일 수밖에 없다. 현재 시민운동이나 학계의 진보 진영을 이끌고 있는 3그룹 사람들이 보기에 장교수는 우파에 가까운 사람인 셈이다.
장교수는 논전 제3 라운드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선까지 물밑 신경전은 대단하리라는 것이 주변의 관전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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